LP(Long Play)가 발명되기 이전에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처럼 1시간이 넘는 곡은 여러 장의 음반으로 나눠서 만들었습니다. LP는 한 면에 약 30분 정도의 분량을 저장할 수 있는 저장장치입니다. 때문에 양면을 사용하면 한 장 안에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담을 수 있습니다. 이후 CD가 등장하면서는 더 많은 음악을 더 작은 부피 안에 저장할 수 있게 되었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CD를 들고 다니는 것조차 불편해 mp3파일과 같은 디지털 파일 형식으로 스마트폰, 태블릿, 컴퓨터 등의 다양한 디지털 기기에음악을 저장해서 들었습니다. 지금은 기술이 더 발전해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면 내 기기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단 통신이 가능한 곳에서 말이죠…)
기술은 더 많은 용량을 더 작은 공간에 저장할 수 있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대중음악의 길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더 짧아지고 있습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 프레디 머큐리가 6분에 달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싱글로 발매하겠다고 하니 EMI 사장은 "누가 라디오에서 6분짜리 음악을 틀겠냐"라면서 반대하고 퀸은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대부분의 팝송은 3분 안팎으로 맞춰져 있었고, 라디오에서 쉽게 틀 수 있도록 짧은 곡을 선호했습니다. 이를 의식한 EMI 레코드사에서는 곡을 짧게 편집할 것을 제안했으나 프레디 머큐리는 곡을 절대 편집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면서 원래 길이를 고수한 거죠….
퀸의 매니저였던 켄트는 영국의 유명 라디오 DJ였던 케니 에버릿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는 처음에 공식적으로는 이 곡을 방송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이 곡을 14번이나 방송했습니다. 그가 곡의 일부만 틀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취자들은 계속해서 "전곡을 듣고 싶다"며 라디오 방송국에 요청을 넣었습니다. 이후 영국의 여러 라디오 방송국에서 곡을 방송하기 시작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고, 결국 싱글 차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예술음악 작곡가들은 보통 10분 내외의 곡을 작곡하는데 반해 대중음악 작곡가들은 보통 3분 30초 정도의 짧은 길이의 곡을 작곡합니다.
요즘은 대중들이 3분도 길다고 느껴 2분 30초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처음 발매된 1975년이라고 해도 6분짜리의 대중음악은 매우 이례적인 것입니다. 6분짜리 대중음악을 흥행시킨 퀸의 영향력이 놀랍습니다.
틱톡, 쇼츠, 릴스 등 숏폼 플랫폼의 유행으로 뉴진스, 르세라핌 등과 같은 4세대 아이돌의 음악 길이는 대체적으로 3분을 넘어가지 않습니다. 마라맛처럼 중독성 있는 후렴구가 있어야 릴스 챌린지같은 짧은 동영상 챌린지 음악으로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웹소설도 초반부터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하면 외면받기 십상입니다.
주인공들에게 아기자기한 서사를 부여해 주면서 서서히 빌드업을 해가면 독자들은 지루함을 견디다 못해 이탈합니다. 때문에 초반부터 강력한 사건을 독자들에게 던져준 다음에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역추적해 가는 방향으로 글을 써야 독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고구마 전개를 많이 깔아놓은 다음에 마지막에 가서 사이다 전개를 주면 시청륜이 뚝뚝 떨어집니다. 고구마-사이다 전개가 이야기 곳곳에 녹아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고구마를 줬으면 바로 사이다를 줘야 합니다.
<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 어크로스, 2023)은 요즘 사람들의 집중력이 짧아진 이유는 SNS의 발달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SNS의 짧은 글, 짧은 동영상을 주로 보다 보니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보상을 줄 수 있는 것만을 찾아다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욜로족도 미래의 행복보다는 지금의 행복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아이돌들이 부르는 음악의 길이는 2분도 길어 1분 30초를 바라보는 날이 곧 올 것 같습니다.
숏폼이 유행하는 한 앞으로도 "hook(후렴구)"이 강조된 음악들이 계속 나오고 빠른 전개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미니멀한 편곡이 주를 이룰 것 같습니다.
에스파의 "Next Level"을 처음 들었을 때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곡을 짧게 편집해서 억지로 붙여놓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노래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세대가 바뀌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마라맛의 강렬한 인상을 주는 창작물을 만들어야 하나, 강렬한 맛에 중독된 뇌는 순한 맛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강한 맛만 찾다 보면 강한 맛에 중독되고 건강이 나빠집니다.
좀 더 다양한 다채로운 맛을 즐기게 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음악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향유되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
홍콩 누아르 영화가 한 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콘텐츠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철 지난 소재가 된 것처럼 K-pop도 자극적이고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만 양산하다가는 홍콩 영화가 간 길을 따라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조심스럽게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