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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은 왜 자주 우리집에 올까 ?

집주인의 본색과 보증금

by 전업맘 첫시작 Jan 05. 2025

남편은 회사 근처 오피스텔에 살다가 우리가 합류하자 심양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에 아파트로 이사했다. 처음 정착하는 곳은 한국인들의 커뮤니티가 있는 적응하기 쉽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 현지인들이 많은 사는 곳으로 정착한다고 한다. 아파트는 동수도 많았고 정원도 곳곳에 많았고 나름 놀이터도 갖춘 곳이었다. 처음 지어졌을 때는 번듯했을 텐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보수와 수리가 아쉬웠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외국의 월세제도는 한국과 달랐다. 한 달 치 월세비가 보증금이 되고 매달 월세비를 내는 식이다. 각 동의 아파트 출입문을 통과하려면 동그랗고 파란 열쇠가 있어야 하고 엘리베이터는  내가 사는 거주층만 인식된다. 외출할 때 열쇠를 챙겨가지 않을때에는  경비 아저씨게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었다. 철저하게 외부인 금지가 제한된 안전한 구조였다.


심양에 도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을 때였다. 현관문에서 들릴 듯 말듯한 벨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치 못한 방문에 우린 일제히 당황하였다.  남편은 어설픈 중국어로 누구세요라고 물었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만 들려왔다. 겁을 내면서도 살짝 현관문을 열어보니 ,  노년의 부부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게 아닌가!

남편은 그들이 집주인이라면서 얼른 문을 열어주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현관문을 열어주니 , 집주인은 자기 집처럼  자연스럽게 들어와  소파에 앉았다. 안방, 주방, 작은방 2개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는지 ,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아이들에게 뭐라 뭐라고 말을 하였다.

아이들은 낯선 중국인의 방문에 어리둥절하였고 , 나 또한 얼었던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집주인은 호탕하게 웃고 본인집 마냥 편안해 보였다. 남편의 짧은 중국어로 몇 마디를 오고 가곤 했다. 아이들의 나이, 한국인들이 집을 쓰니 깨끗하다 , 부인이 얼른 언어를 배워야겠다는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본인의 집에 살아서 마음이 놓인다는 말을 하면서 첫날의 방문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것이 시작일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느 날은 남편이 출근하고 집주인 부부가 올라왔다. 어느 때와 같이 문을 쾅쾅두렸다. 밖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이들과 같이 있었기에 문을 열어주었다. 익숙하게 들어오더니 소파에 앉았다. 한국짐이 들어온 후라 변화된 살림살이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마룻바닥에는 한국에서 챙겨 온 뽀로로 매트가 있었다. 신기한 듯 이리저리 뒤적거려 본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장난감도  , 한국 주방 살림도 관심을 보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왜 왔나요?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저 낯선 나라에서 , 우리 집에 방문할 손님이 집주인이라고 해도 반가울 상황이었다. 사람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니 올라오시는 줄 알았다. 중국나라에 잘 정착하고 사는 모습에 흐뭇한 줄 알았고 환영의 의미인 줄 알았다.


점차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집을 방문하면 , 자기들이 들여놓은 가구를 샅샅이 훑어보고 , 소파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부인이라는 사람은 내 허락도 없이 뒷 베란다 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 아이들 방에 들어가서 붙박이장을 앞뒤로 흔들어 보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환영의 뜻이 아니라 , 본인의 집을 깨끗하게 , 아무 탈 없이 사용하는지 수시로 검사를 하러 온다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 말한디도 하지 못했던 나는 한마디 정도씩을 할 수 있었고, 표정을 보고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집주인아저씨가 아이들에게 훅 던진 질문에 내가 대답을 하자 흠칫 놀라는 것을 알았다. 그 뒤부터는 내가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씩 조심하는 것을 느꼈다. 점차 올라오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문을 쾅쾅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는 것처럼 행동할 때도 있었다. 집에 있는 것이 편치만은 않았다.


남편의 회사에서 집을 옮기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10개월을 살고 이사를 해야 했다. 집주인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이사가 결정되자 , 집으로 오더니 부서진 곳이 없는지 , 흠집이 난 곳이 없는지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러던 중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쓴 것은 고작 10개월이었고 이미 세탁기의 연식은 오래되었다. 그것을 보더니 집주인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사는 단톡방에 이런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오기는 했었다. 보증금을 잘 돌려주는 주인도 있지만 이것을 악용하는 사례도 많다는 것이다. 남편은 외국인과 갈등을 일으키는 대신 좋게 넘어가는 것이 낫다면서 중재를 선택했다.   부동산 측에서도 중재를 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못 돌려준다고 하더니 보증금을 50프로 선심 쓰듯이 준다는 것이었다. 우린 그것만으로도 됐다면서 승낙을 했다. 못 돌려받은 보증금은 중고 세탁기를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해외에서 안전하게 살고 가족의 평화였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의 첫걸음은 쉽지 않다. 한국에서처럼 내가 조금만 피해를 입으면 큰일 날 것처럼 살 수는 없었다. 모르는 척 , 아닌 척 ,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외에서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조금 피해를 보더라도 지나가는 것이 현명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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