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충격과 적응하는 방법
우리가 사는 곳은 중국에서도 동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한국인들이 많이 들었을 법 한 경제적, 문화적으로 발달된 도시는 아니지만 우리가 겪었던 일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해외이삿짐이 도착하고 필요한 것들을 사야 했던 우리는 남편이 쉬는 날을 택해서 이케아에 가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가보지 못한 이케아였기 때문에 기대감이 컸다. 택시를 잡고 남편이 미리 폰에 저장한 주소를 기사한테 보여주었다. 2015년 초반에는 택시 잡는 앱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40분을 달려서 이케아에 도착했다. 대표색상인 노란 건물이 들어왔다. 가구, 생활소품, 그릇등 없는 게 없었다. 3층으로 구성되었고 , 출입구를 통과하면 되돌아가서 나올 수가 없는 구조였다. 듣던 대로 중국은 뭐든지 규모가 컸다.
우린 2층으로 우선 올라갔다. 출입구를 통과하자 , 가구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침대, 책상의자, 식탁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가족단위가 많았지만 물건을 사러 온 것인지 쉬러 온 것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구경을 하는 우리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파는 침대에 아이를 재우는 부모도 있었다. 직원들 은 이를 아무렇지 않게 여겼다. 사람들은 구경을 하다가 쉬고 싶으면 파는 가구에 앉아 내 집인 마냥 몇십 분을 쉬었다. 아들 둘을 데리고 다니는 나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마음은 편안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라, 뛰지 마라 , 만지지 마라 는 말을 반복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구에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유로운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
규모에 압도되어서 쇼핑을 잘할 수는 없었다. 필요한 것을 찾는 것은 어려웠기에 눈에 보이는 것 위주로 담았다. 얼른 계산을 하고 이곳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계산대 앞에 서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계산대와 계산대 사이에 벽이 있었다. 아뿔싸!!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벽을 마주 보고 서 있고 옆에는 엄마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벽 쪽에 누런 것이 바닥을 타고 흘러내렸다. 순간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화장실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실내에서 노상방뇨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화충격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손을 씻기 위해서 화장실로 갔다. 그런데 또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손을 씻고 있는데 옆 세면대 위에 어린아이를 세우는 것이다.. 손을 씻기나 싶었는데 , 아이의 바지를 벗기더니 , 양손으로 양쪽 다리를 잡고 뒤에서 안는 게 아닌가 ! 누런 정체 모를 것이 흘러나왔다. 바로 뒤에 화장실칸이 있는데 말이다. 손을 씻다 말고 얼른 뛰쳐나왔다. 그런 일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모습을 보고 점차 이곳의 문화에 익숙해졌다. 중국은 아이 한 명을 낳는 문화이고 아주 귀하게 여기면서 키운다. 아이의 것은 더렵다고 여기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에는 놀랍고 , 위생적이지 않다고 여기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지만 점차 그런 장면이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소변이 마려울 때까지 참는 편이다. 급할 때 쉬쉬 그러면서 발을 동동 거린다. 중국에 살 때는 화장실을 찾아가는 게 더 어려웠다. 한 때는 밖에서 노상방뇨를 하기도 했다. 공중화장실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길을 가다 마주치는 공터나 골목에서 급하게 볼일을 보게 했다.
한 번은 싱가포르에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둘째가 6살이었다. 넓은 공원을 보더니 아이는 갑자기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적한 곳에 가서 옷을 내리고 소변을 보려고 했다. 간신히 멈추게 했지만 여행 내내 화장실을 찾아다닌다고 고생을 하긴 했었다.
2015년도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지금은 아니겠지만 , 문화적으로 성숙되었고 , 위생적으로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가 다르면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도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처음에는 문화적 충격에 위생적이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려니 , 그럴 수도 있지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하나씩 새로운 환경에 우리는 또 적응해 나갔다. 매일매일이 도전이었지만 추억해 보면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 곳이 아니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