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복이가 다섯 살이 되었다. 말을 어찌나 잘하는지 가끔은 우리 아이가 영재가 아닌지 감탄하게 된다. 어느 날은 아이가 말하는 게 너무 기특했다.
"아빠, 나는 마트에 가면 장난감이나 맛있는 간식이나 하나밖에 못 사잖아.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면 말이야. 사고 싶은 것 다 살 거야. 아빠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어른이 되면 다 사줄 거야! 엄마 아빠는 하나만 사주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여러 개 사주잖아!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다 사줄 거야!"
아버지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 이면에 사고 싶은 것들을 다 사고 싶은데 왜 엄마 아빠는 다 사주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을 간접적으로 제기하는 실력은 기염을 토할 정도이다.
내가 어릴 적에도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종종 우리 아이와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엄마, 아빠. 내가 크면 꼭 유명한 야구선수가 되어서 엄마 아빠 집도 사주고, 차도 멋진 걸로 사줄 거야! 그러니까 내가 성공할 때까지 조금만 고생해요!"
그럴 때면 두 분은 바르셀로나 시절 메시와 이니에스타처럼 티키타카를 하며 철없는 아이의 말에 현실적인 조언과 칭찬으로 화답해 주시곤 했다.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갈 생각 해야지! 야구선수는 무슨 야구선수야!"
"아이고, 우리 아들! 효도한다고 하니 기분이 좋구나. 커서 약속 꼭 지켜야 해?"
내가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지났다. 나는 내 아이로부터 내가 아이시절 했던 말과 비슷한 종류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좋은 집, 아버지에게는 좋은 차를 아직 사드리지 못했다. 어린 시절 담아두었던 부모님에 대한 사랑과 효심을 많이 덜어, 내 아이에게 사랑과 정성을 주느라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부모님에게 쏟을 수 있는 노력은 손녀딸, 아내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본가에 방문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는데, 최근에 복직을 하게 되면서 그마저도 지키기 어려워졌다.
'어른들에게 자주 가야 하는데..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가끔 생각할 뿐, 현실은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아직 끝내지 못한 일들과 기약 없이 쌓이는 약속들과 갚아야 할 빚에 집중되어 있었다. 피곤한 하루를 꾸역꾸역 보내고 나면, 부족한 환경에서도 예쁘게 커주는 아이와 언제나 나를 격려해 주는 아내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가는, 무난한 나날들이었다.
그런 날들이 이어지는 와중에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형, 아버지 소변이 좀 불편하신 거 있잖아. 전에 서울 병원에서 내시경 받았을 때는 그냥 방광 쪽에 염증이 있어서 불편한 거라고 했는데, 얼마 전에 아버지가 혈뇨가 나와서 오늘 병원 다시 가서 CT를 찍어보니까 방광 쪽에 큰 종양 같은 게 있대. 의사 말로는 조직검사를 해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보수적으로 봐서 방광암이고 진행 정도는 3기일 것 같다고 하더라고. 다음 주 목요일에 조직검사 하면서 1차 수술하자고 하는데 내가 오늘 근무를 빼서 다음 주는 시간이 안될 것 같아. 일단 엄마가 같이 가기로 했는데, 형이 시간 되면 같이 가봐."
동생의 목소리는 많이 불안했다. 의사는 방광암 3기를 확신하는 투로 말했고, 진단 확정 시 5년 생존율은 50%이며, 다른 기관으로 전이되는 4기일 경우 생존율이 10%에 불과하다는 내용과, 어머니는 아직 자세한 내용을 모르고 있으며, 2차 수술을 진행할 경우 방광 적출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자신이 들은 내용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무덤덤하신 건지 그런 척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는, 7분간의 통화는 종료되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방광에 염증이 있을 뿐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진단을 내렸던 똑같은 곳에서 불과 한 달 만에 방광암 3기일 수도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보다 더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은 내 머릿속에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떠도는 생각들이었다.
'다음 주 내내 급한 업무가 많이 밀려 있는데 일을 어떻게 빼지.'
'맞아. 그날 아이 등하원은 어쩌지?'
'쓰레기 같은 놈! 아버지가 암일지도 모르는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쓸데없는 사념들에 한참을 희롱당하고 나서야 세상에 가족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화살처럼 머리에 박혔다. 아내에게 통화 내용을 전달하니 역시나 당장 본가에 내려갈 준비를 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내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듯 아이 등하원은 자신이 책임질 테니 조직검사 하는 날은 연가를 써서 직접 아버님 어머님 모시고 병원에 다녀오라는 명령어도 입력해 주었다.
다음날, 오전 중으로 일을 마무리하고 길을 나섰다. 어머니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셨고, 동생은 일을 나가 아버지 혼자 집에 계셨다. 여느 때처럼 아버지는 환하게 손녀딸을 안으시며 우리를 맞아주셨고, 우리 가족은 여느 때처럼 이야기를 하고 식사를 하며 함께 시간과 공간을 채웠다. 아버지는 당신의 검사 결과를 뉴스 기사 발표하듯 무덤덤하게 알려주셨다.
마음 약한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친구들과 여행을 못 가지 않겠냐며, 그래서 비밀로 한 것이라 장난기를 가득 품고 말하시는 모습에서, 나는 여느 때와 같은 아버지를, 밤낮 가리지 않고 8시간 3교대 근무를 30년 동안 묵묵하게 해온, 당신이 중학교 시절 술 취한 당신의 아버지를 읍내에서부터 업고 집까지 한 시간을 걸어오며 당신 또한 성공해서 가족에게 효도하고 자식들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어 했을, 우리 아들이 드디어 취업을 했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셨던, 여름이면 우리 두 형제를 낡은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시원한 계곡으로 물놀이를 데리고 가셨던, 여전히 위대한, 나의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 별일 없을 거예요. 걱정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