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복이가 28개월이 되었다. 아내의 주 업무는 엄마에서 직장인으로 바뀌었으며, 나는 육아 휴직자가 되었다. 나는 장교출신이다. 그래서 군 복무를 남보다 좀 더 오래 했다. 그 기간이 딱 28개월, 2년 4개월이다. 강원도 화천에서도 두 시간을 들어가야 하는 지옥 같은 곳에서의 군생활이 끝났을 때 느꼈던 해방감을, 만나고 싶은 사람 하나 만나지 못하고, 가고 싶은 곳에 마음대로 가지 못하며,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 있지도 못하는 생활을 2년 4개월이나 해야 했던 아내 또한 느꼈으리라.
우리는 전환된 각자의 영역 안에서 생존을 위해 삶의 전열을 가다듬었다. 본격적인 아빠 육아가 시작된 것이다. 내 직업이 교사라고 말했던가? 나는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당시 담당 업무는 학교폭력이었다. 학교폭력 업무는 단언컨대 학교 일 중 최상의 난이도를 자랑한다. 2년째 학교폭력 업무를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가족회의 중 내무부장관이 나의 1년 육아휴직을 통보했을 때, 나는 매우 기뻤다. 또 좋은 소식은 풀타임 육아를 6개월만 하면 된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덕복이는 34개월이 되는 시점에 어린이집에 입소하기로 되어 있었고, 나머지 6개월 간의 휴직 기간에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비교적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새벽같이 출근하고 밤늦게까지 일에 찌들어 살던 때는 아침 출근길에 그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온종일 가슴이 아팠다. 저녁에 그 아이가 웃고 있으면 하루의 피로가 사라졌고. 휴직을 하고 나니 사는 게 많이 달라졌다. 좋지 않은 이야기, 불편한 사람들, 과중한 업무부담으로 둘러 싸인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나만을 바라보는 눈빛, 천사 같은 미소, 놀랍도록 빠르게 성장하는 저 존재의 경이로움을 하루 종일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기 위해 알람을 맞출 필요도 없어졌다. 아이의 생체 시계는 매우 정확해서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조막손으로 하여금 아빠의 눈꺼풀을 들어 올리게 해 주었다.
육아 루틴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아이가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 잠시 놀아준 뒤 아침밥을 먹였다. 학교 일을 나갈 때도 요리는 본인이 전담했기에 휴직 후 아이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면 간단히 양치와 세수를 시키고 외출 준비를 했다. 오전에는 집 앞 놀이터, 대형마트, 근처 카페, 키즈카페, 공동육아 나눔터 등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장소를 선정해 방문했다. 오전 놀이가 끝나면 귀가 후 낮잠을 재웠다. 우리 아이는 1 ~ 2시간 정도 낮잠을 잤는데, 내가 함께 잠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설거지, 빨래 등의 집안일을 했다. 이들 또한 일을 할 때도 했던 지라 어렵지 않았다. 오후 외출 시에는 동물원, 아쿠아리움, 체험장 등 놀이보다는 교육적 체험에 집중할 수 있는 곳들을 방문했다. 아이와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은 고된 직장생활로 인해 구멍 뚫린 내 마음을 꼼꼼하게 메워주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고부터는 정말이지 천국이었다. 눈 뜨자마자 어린이집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분주하게 준비하는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모닝커피를 마셨다. 오전 08시 50분에 등원을 마쳤고 하원은 16시까지 하면 되었다. 주어진 자유시간은 7시간. 그동안 직장생활에서 하지 못했던, 마음에만 품었던 일들을 하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오전에는 집안일을 마치고 독서와 운동을 했다. 근처 카페에서 간단하게 브런치를 먹고 오후부터는 다양한 즐거움을 휴직의 꿀 같은 삶 속으로 들였다. 바빠서 만나지 못한 친구 만나기, 가보고 싶었던 전시회 가기, 슬램덩크 만화책 몰아보기 등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항상 전자를 택했던 자신을 버리고 진정한 나의 삶을 누렸던 것 같다. 1년의 정해진 기간이 끝나고, 나는 휴직을 6개월 연장했다. 총 1년 6개월, 아빠의 육아휴직은 즐거웠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의 형식을 빌려 말하자면) 그러나 나는 독자들에게,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이 짐승과도 같은 녀석과 하루종일 둘이서만 보내는 시간은 드래곤볼 만화책에 등장하는 '정신과 시간의 방'과 같아, 하루가 1년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갈 곳도 마땅치 않고, 아이가 좋아하는 곳만 가고 싶어 해 아쿠아리움을 1년에 50번 정도 방문했다는 사실을, 집에서는 낮잠을 자지 않아 차에 태워 아파트 단지 주변을 종종 배회했다는 사실을, 밥 한 입 먹이기 위해 숟가락으로 비행기 소리를 내고, 왕처럼 모시며 매 끼니 전쟁을 치러야 했다는 사실을, 등원시간이 한참 늦었는데 깨워도 일어나지도 않고, 억지로 일으켜 씻으러 가자고 할 때마다 도망가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4885 추격하듯 아이를 쫓아다니며 하루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등원 후 밀린 설거지, 빨래, 분리수거하고 나면 게임 한 판 할 시간이고, 뭐 좀 하려다 잠시 쉬려고 소파에 누워서 휴대폰 만지고 있다 보면 하원시간이 왔다는 사실을, 16시에 하원하고 나면 키즈카페에서 아이에게 질질 끌려다녔고, 아내에게 퇴근시간 30분 전부터 '언제 와?'라고 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아빠와 둘도 없는 친구처럼 하루종일 재미있게 놀았으면서 엄마가 퇴근만 하면 없는 사람처럼 버려졌다는 사실을, 아내가 퇴근하자마자 안방 화장실로 탈주해 문을 잠그고 30분이고 1시간이고 화캉스를 즐겼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나의 육아휴직이 실제로 어땠냐고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즐거웠고, 힘들었고, 행복했고, 슬펐다. 아내 또한 그랬으리라. 우리의 육아는 내일도 즐겁고, 힘들고, 행복하고, 슬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