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들이여, 저녁 어스름이 짙게 젖어 들어오는 1층 테라스, 진한 적갈색 마호가니류의 목재로 만들어진 테이블, 부드러운 거품과 액체가 적확한 비율로 채워진 바이킹식 맥주잔, 바삭한 튀김옷을 입고 윤기를 내뿜고 있는 닭과 고소한 내음을 품고 있는 노가리, 그리고 '이것이 우리네 인생'이라 외치며 경건하게 술잔을 비워내는 사람들, 이 모든 풍경이 즐비한 향연으로 속히 존재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음 두 전략이 도움이 될 것이다.
술자리에 빠르게 가는 방법
1. 친구의 아픔을 이용하라.
각 가정의 내무부장관들은 사내들의 술약속에 대해서는 대부분 (필자의 경우 거의 전부) 당연하게도 결재를 반려하기 때문에, 우리는 나가야만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물론 좋은 일이 많이 있겠지만, 그만큼 좋지 않은 일들도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어있다. 실연, 이별, 진급 누락, 사고, 의도치 않은 실수 등 마주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만연한가. 이것들을 십분 활용하라. 단, 친구 아버지의 할아버지 장례식과 같은 도의적으로도 어긋나고, 꾸며냄이 발각되기 쉽고, 단발성에 그치는 아마추어적인 전술을 구사해서는 되려 철퇴를 맞게 되므로, 이야기 구성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안이 단번에 해결될 수 없어 장기성을 띄며, 딱히 마땅한 정답도 없고, 사실 여부를 확인할 객관적 증거를 수집할 수 없는 동시에, 즉시적으로 우리 사내들이 그 친구의 곁을 지켜줄 수밖에 없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라. 국민 대부분이 주식 투자를 하고 있고 해당 분야는 극소수만이 성공하므로, 투자실패로 인해 우울증을 겪는 친구의 사연이 좋은 방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효과적인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아내에게 한 친구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왔음을 넌지시 알린다. 이윽고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전에 공모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오게 한다. 스피커폰으로 수신 후,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 친구는 투자 실패로 거금을 날려 매우 낙심한 상태이며, 혼자 소주를 한 병 마셨고, 이대로 있다가는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고 도움을 호소한다. 빨리 나가서 말동무가 되어주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이며, 이를 방관할 경우 평생 후회로 점철된 삶을 살지도 모른다는 말을 아내에게 건넨다. 자연스럽게 외출복으로 환복하고 지갑과 휴대전화를 분주하게 챙기며, 아내와 함께 느긋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사람 하나 살리기 위해 나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현관문 앞에서 신발을 신은 채, 강력하게 피력한다. 그리고 얻게 되는 자유.
위와 같은 시나리오는 달에 한 번 정도는 십중팔구 성공한다. 이야기가 사실이던 거짓이든 간에 아내에게 치부를 드러내는 친구의 희생으로, 우리는 인생의 또 한 순간을 손과 손에 술잔으로 아름답게 채울 수 있다. 다만 친구의 수가 적어 동일한 친구에게만 안타까운 사연을 여러 차례 적용할 경우, 우리의 여인들은 그 친구를 중증 우울증 환자로 치부하여 거리를 두라고 명령할지도 모르니 유의하자.
2. 주의를 딴 데로 돌려라.
우선 퇴근 후 집사람을 만나기 바로 직전, 예를 들면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이나 현관문 앞에서, 메시지를 보내 술약속이 있음을 통보한다. 메시지 상태창의 1이 사라지기 전, 또는 메시지를 읽었더라도 미처 답장을 할 수 없을 만큼 재빠르게 입실하여 귀가했음을 알리고 청소 복장으로 환복 한다. 이제부터는 아내가 말을 걸 틈을 주지 않는 것, 그녀가 홀로 남아 편히 시간을 보낼 이 공간을 최대한 청결하고 아늑하게 만드는 일에 초점을 둔다.
청소가 목적이 아니다. '그녀의 주의를 산만하게 함'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동이 커야 하고 가시적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우선 집 안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분주한 움직임을 동반하며 제자리에 정리한다. 아내 화장대 위의 쓰레기, 아내가 벗어놓은 양말 또는 옷가지, 아내의 눈앞에 보이는 방치물 등을 치우면 매우 효과적이다. 청소기를 돌릴 시간은 없으므로 돌돌이를 이용해 바닥에 확연히 보이는 머리카락과 먼지를 없앤다. 일반쓰레기,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 봉투를 최대한 부풀려 버리고 온다. 버릴 것이 없어도 좋다. 분리수거장에 다녀오는 행위 자체가 그녀의 시야에 긍정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녀가 누워있는 거실 소파 바로 옆에서 건조된 빨래를 개어 놓는 동안, 미리 주문해 둔 그녀의 최애 음식인 참치 초밥이 도착하게 한다.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을 신혼 때 마련해 둔 예쁜 그릇에 담아 깨끗하게 정돈된 식탁 위에 맛깔스럽게 올려놓는다. 알래스카 앞바다를 품은 참치와 구수한 장국의 향내는 이내 아내의 코를 자극할 것이고, 그 포식자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의 종류에 따라 본 전략의 성패가 결정 난다.
"오빠는?"
이는 성공을 의미한다. 주문한 참치 초밥 10피스가 1인분인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저 포식자는 자신의 음식을 공유할 생각이 일절 없음을 공고히 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또한, 포식자는 피식자의 과장된 행동에서 나오는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오빠는?'이라는 물음은 '피식자여, 네 노력이 가상해 외출을 허하노라'로 귀결된다.
"응, 나 (상당히 먼 과거에 언급했다는 듯한 뉘앙스를 취하며) 이전에 말한 그 약속 있잖아, 지금 나가봐야 해서 서 거기서 먹으면 돼. 일찍 들어올게 맛있게 먹고 쉬고 있어요." 그리고 얻게 되는 자유.
"왜 초밥이 1인분이야?"
이는 실패를 의미한다. 주문한 참치 초밥 10피스가 1인분인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저 포식자는 자신의 음식을 공유할 생각이 일절 없음을 공고히 하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또한, 포식자는 피식자의 과장된 행동에서 나오는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왜 초밥이 1인분이야?'라는 물음은 '피식자여, 헛짓거리 하지 말고 집에 있어라'로 귀결된다. 그리고 유보된 자유.
상기 언급한 전략은 약속 당일, 약속시간에 임박해서 사용해야 집안일을 하는 물리적 시간을 줄일 수 있으므로 체력 소모도 적고 효과적이다. 아무리 재빠르고 부지런하게 행동한다 하더라도 그날그날 그녀의 기분에 따라 같은 행동도 결괏값이 달라지므로, 다소 리스크가 큰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사내들이여, 비교적 자주, 가급적 오래, 그리고 자유롭게, 술자리에 존재하고 싶은가? 위 두 전략의 공통 속성을 찾아보라. 술자리란, 우리 가정 내의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점거하고 있는, 우리의 우두머리들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고는 이룰 수 없는 꿈과 같은 것이다. 그 꿈은 대책 없이 접근했다가는 사상누각이 된다. 당당하게 가슴을 펴되 자존심을 내려놓아라. 그리고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계획을 세워 치밀하게 이행하라. 그 끝에 얻어지는 따뜻한 술 한 모금은 광야에 내려온 만나와도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