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 그것이 곧 수중에 들어온다는 사실은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첫사랑의 편지, 대학 합격 통지서, 군시절 면회와 더불어 오는 치킨과 피자가 그러했다. 전설의 게임 스타크래프트가 한국에 출시되던 1998년, 지름이 12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는 그 작은 CD를 촌동네 어느 누구보다 빨리 받아보기 위해 시내 전자상가 앞에서 4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던, 지금의 술배는 찾아볼 수 없이 깡말랐던 중학생의 모습은 여전히 내 추억의 한편을 따뜻하게 차지한다.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할 물건이 웬만한 신혼집 살림만큼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후, 아내는 엄청난 노력을 들여 알아보았다고, 이것들만 사면 된다고 자부하는, A4 용지 5장에 달하는 구매 목록을 제출했다. 세상이 좋아져서 원하는 물건을 하루 이틀 내에 집 앞까지 받아볼 수 있었고,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현관 앞에 내놓기만 하면 반품이 되었으므로, 그녀는 무서운 속도로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고 결제창의 버튼을 눌러댔다. 택배, 그것은 우리의 기분을 정말 좋게 만들었다. 특히 그녀의 기분을.
내 아내는 (온전히 나의 주관적인 견해지만) 택배 중독자다. 신중하게 물건을 골라서, 그 물건을 특가로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구매하고, 택배물이 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포장을 뜯어 자신의 소유임을 확정 짓는, 이 모든 과정에서 나오는 도파민은 그녀에게는 끊을 수 없는 마약과도 같았다. 그녀는 때때로 (이 부분은 나의 일방적인 추측임을 먼저 밝혀두는 바이며) 도파민 분비가 주는 쾌감만을 느끼기 위해, 걸어서 1분 거리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물건조차 택배로 주문했다.
내 아내는 (이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데) 완벽한 실용주의자다. 특히 물건을 구매함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이상적인 것들만 고른다. 정말 아무거나 사도 큰 문제가 없는 물건, 예를 들어 칫솔 걸이 하나를 살 때에도 오랜 시간 검색과 연구를 거쳐, 해당 제품군 중에서 가장 품질이 좋고, 가장 가성비가 높고, 기능과 디자인이 가장 출중한 물건을 구매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남편인 나의 입장에서는 고민 없이 아무 제품이나 사용해도 무방했을 터였으나, 결과적으로 그 물건이 상당히 만족스럽게 사용되기 때문에 앞서 제출된 아내의 목록에는 구매의 당위성이 깃들어 있었다.
어느 날 그녀와 외출을 하고 돌아와 보니 중독과 실용주의로 점철된 택배박스들이 현관 공간의 대부분을 점거하고 있었다. 매일 2, 3개씩 박스와 봉투들이 쌓여 있던 익숙한 장면을 넘어서, 그날따라 수가 많았기에, 나는 들어가는 김에 일부를 현관 안으로 옮겨놓았다. 이 과정에서 기이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흥분과 기대의 광기가 어린 한 여인이 흉포한 손을 휘둘러 박스 하나를 낚아챈 다음, 그것을 잔혹하게 잡아 뜯어 내용물만 쏙 빼내며 '꺅'이라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거실로 달려가는 것 아닌가.
'저 생물, 무섭다. 그런데 택배박스가 이렇게 많은데 정리 좀 같이 하지.'
나는 생각했다.
'아니지, 이 집에 사람이 둘밖에 없는데. 아휴, 내가 해야지. 뱃속에 덕복이도 생각하자.'
나는 또 생각했다.
그날의 기이한 장면은 이내 익숙한 장면이 되었고, 나는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반자동으로 작동하며 내 키만큼 쌓이는 박스들을 하나 둘 정리해 나갔다. 택배박스들은 날이 갈수록 세포 분열하듯 늘어났고, 나의 게으름이 더해져, 그것들이 정리되는 속도보다 쌓이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그것들을 받아보길 고대하는 찬연한 마음은, 그것들과 함께 등장한 쓰레기들을 소거해야 하는 처연한 마음과 완벽한 대치를 이루며 후자에게 불만의 씨앗을 심었다.
'왜 나만 정리해야 하는 거지. 현관 입구에 이렇게 쌓여 있는 게 다니기 불편하지도 않나. 아무리 임신부여도 아직 초기라 배도 안 나왔는데 좀 움직이지.'
씨앗은 싹을 틔웠다. 나는 불만을 조금 표출해 보기로 했다.
"자기야, 저기 빈 박스들 좀 정리해 줘. 그리고 포장 뜯고 나서는 쓰레기들도 바로바로 버려줘. 여기저기 쌓이면 보기도, 지나다니기도 불편해."
"응."
그녀는 만지작거리고 있는 육아용품들에 시선을 고정한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 모습에 나는 약간 골이 났다. 대장부의 행동에 어울리지 않지만, 분리수거장으로 산보하며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특혜를 혼자서만 누리기에는 아쉬운 감정이 일었기에, 당분간 널브러진 폐기물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그녀가 치우나 안 치우나 지켜보기로 했다.
하루가 지났다. 탐욕스러운 그녀의 손이 미치는 곳은 택배 내용물의 영역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틀이 지났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박스와 포장용 비닐들이 집안 곳곳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사흘이 지났다. 쓰레기들만 기가 막히게 피해 가는 동선을 가져가는 그녀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흘 하고도 4시간 30분이 지나자 나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발에 밟히는 먼지조차 싫어하는 나는 결국 패배를 선언하고 정리를 시작했다.
불만의 싹은 쑥쑥 자라 불화라는 꽃을 피울 차례였다. 나는 이 싹을 자를 방책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느꼈다. 그때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홀린 듯 들어간 서재에서, 알랭 드 보통의 책 한 권이 빛을 내고 있었다. 삶은 가끔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표지를 제공한다. 그의 책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다루어진 현실적 부부 이야기는 불온한 정념에 사로잡힌 나를 해방시켰다.
"현대사회는 부부가 모든 면에서 평등하기를 기대한다지만, 실제로는 고통의 평등을 기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매우 공감 가는 문장이었다. 가정생활에서 종종 나만 힘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이 언어의 형태를 찾아 상대방에게 전달될 때마다 우리는 다툼 속으로 서로를 밀어 넣곤 했다. 그렇다면 부부가 가정에서 고통의 평등 바라지 않는 온전한 화합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알랭 드 보통이 주는 통찰은 단순했다.
'삶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이다. 그 기적에게 바라는 것 없이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라.'
내가 매일 마주하는 이 기적 같은 사람을 여지없이 사랑하고 있으므로, 저 흉포한 손을, 광기 어린 시선을, 너저분하게 흐트러진 박스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 택배박스의 내용물은 네가, 뽁뽁이는 내가 소유하는 걸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