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엔딩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프롤로그

by Damon

그냥 한눈에 알았다. 이 여자가 내 여생 모든 노력을 다해 얻어야 할 최종본이요,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같은 직장에 근무하고 있었고, 나는 매일 기회가 있었기에 그녀에게 직진만 했다.

"치킨에 맥주 한 잔 할까요? “

"근처에 양꼬치 맛집이 생겼더라. 맥주 한 잔?”

사랑에 빠진 수컷 공작새가 구애춤을 추듯 나는 현란한 춤사위를 벌였고, 그 가상한 노력 덕분에 2017년 12월 9일 합법적으로 그녀의 시간과 공간을 차지할 수 있게 되었다. 8평 남짓한 좁은 자취방에서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고, 온라인 게임 따위로 시간을 태우던 놈에게, 결혼이라는 제도는, 아내와 대궐 같은 주방에서 함께 요리를 태우고,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에 나오는 특이한 출연자들 영상에 달린 댓글에 공감하며 주말을 때우도록 성은을 내려주었다. 누군가 날마다 현관 앞에 벗어 놓은 양말을 주워 빨래통에 넣는 것도, 배수구에 잔뜩 걸려있는 기다란 머리카락을 수거하는 일도 흥이 났다. 사는 게 행복했다.
일 년간의 신혼을 뒤로하고 우리는 아이를 갖기 위한 계획을 실행했다. 당시 내 정력은 어마어마했고 우리는 젊었으므로,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순간에 아기 천사가 찾아와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그렇게 쉽게 살아지던가. 원하는 것을, 원할 때, 원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란 좀처럼 오지 않는 것이 인생이지. 해가 두 번 바뀌도록 수억만 대군을 가임기마다 전장에 보냈으나 승전보는 끝내 울리지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난임 부부가 되어 있었다. 누구에게도 명확한 원인이 없었고, 임신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우리는 점점 지쳐감과 동시에 서로에게 예민해졌다.

"우리도 너희처럼 신혼 좀 가질걸, 애 생기면 죽음이야!"

"얘들아 언제 손주 보냐?"

"여자가 스트레스가 없어야 애가 생기더라"

가깝고도 먼 사람들이 무심하게 던지는 말들은 총알이 되어 심장에 푹푹 꽂혔다. 부부가 서로에게 향하는 말과 행동들이 뾰족했고,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 많아졌다. 손에 물 한 방울 묻지 않게 한다고, 나랑 함께 사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게 해 준다고,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뱉었던 다짐들을 다시 주워 삼키고 싶어졌다. 바닥에 사방으로 널려 있는 옷들이 보기 싫었고, 화장실 휴지는 쓰려고 보면 항상 휴지 심만 덩그러니 남아 어기적거리며 욕실 장을 뒤지는 것도 짜증이 났다. 위기였다.
서로가 좀처럼 곁을 주지 않고 지내던 여느 때와 다름없던 어느 저녁, 퇴근하고 씻으려는데 아내가 할 말이 있다며 와보라고 했다. 또 무슨 잔소리를 하려나 싶어 받아칠 말들로 무장한 채 거실로 나가니 식탁에 놓인 무언가가 나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작은 상자 속, 작은 물건 하나가, 그 안에 보이는 진한 한 줄과 희미한 한 줄, 도합 두 줄이 나를 인생의 다음 단계로 끌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아이가 생겼다는 감사와 앞으로 사라져 버릴 내 인생에 대한 두려움 사이를 헤매던 감정은 고스란히 표정으로 드러났고, 미리 카메라를 설치해 둔 아내는 나의 그 어정쩡한 반응을 흑역사로 박제해 주었다.

"우리, 잘 살자."

아내의 말에 사는 게 다시 행복해졌다.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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