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혹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만 우리가 심혈을 기울이거나 무심하거나와는 관계없이 선택의 결과는 위 두 문장처럼 가변적이다.
당첨된 신도시 아파트의 계약금이 부담되어 청약을 포기한 사회 초년생의 결정은, 갚아야 할 빚이 많았기에 그때는 맞았다. 9년 후, 분양가 대비 4배가 오른 그 아파트가 지금은 틀렸다고 말해준다. 출장을 빌미 삼아 국외로 떠돌며 호시탐탐 밖으로 나갈 기회만 엿보던, 역마살이 제대로 끼여 있는 방랑자를 가족이라는 안전망으로 들어오게 만든 이 거대한 사랑은, 지금의 나를 완전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때는, 가족이라는 덫이 자유의 몸뚱이에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닐까 걱정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다'라고 할 수 있는 성역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아내, 그 높으신 존재가 하시는 선택이다.
그녀가 사는 모든 물건은 비용의 적절성, 용처의 실효성, 품질의 내구성 따위를 논할 필요가 없이 필수불가결하다. 신혼 초, 그녀는 식기세척기, 건조기, 정수기는 각각 가사의 3 지옥, 즉 설거지, 빨래, 생수병 나르기의 고통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줄 것이며, 육아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빠른 구매를 독촉했다. 나는 물론 가사를 전담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감당할 만한 일이었고, 해당 제품들이 고가였기에 구매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없어서는 안 될, 나에게 노동력 경감과 찰나의 휴식을 제공하는 식기세척기님, 건조기님, 정수기님의 알현을 유보한 나 자신이 미울 따름이었다.
임신 초기에 있었던 일이다. 새벽에 아내가 사색이 된 채 나를 깨웠고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무슨 일인지 물었다.
"오빠, 나 하혈하는 것 같아."
그녀가 파리해진 안색으로 울먹이며 말했다.
"아침에 병원 문 여는 시간 맞춰 가보자. 별일 없을 거야."
애써 침착해하며 내가 말했다.
그렇게 찾아간 병원에서는 태아가 별 이상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안심을 주었다.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며칠간 불안에 휩싸인 나날을 보냈다. 하혈 사건이 있고 며칠 후, 아내는 나에게 니프티 검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니프티 검사라는 게 뭐야?"
내가 물었다.
"쉽게 말하면 기형아 검사야, 혈액 샘플을 홍콩의 검사지로 보내면 DNA 검사를 통해 95% 이상의 확률로 다운증후군 같은 유전적 결함을 확인할 수 있대. 국외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비용은 80만 원 정도 해. 산부인과에서는 고위험산모들에게만 권하는 검사라서 필수는 아니고 선택이라고는 하는데, 나는 받고 싶어."
그녀가 말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우리 덕복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다고 하시고, 필수도 아닌 검사를 굳이 그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서 할 필요가 있을까?"
선택적인 검사는 불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이미 육아 용품 구매로 한도가 초과된 카드값이 떠올라 피곤해진 나는 조금 뾰족하게 말을 내뱉었다.
"태아에게 문제가 없어도 염색체 이상은 정확하게 판별이 안 되기도 하고, 내가 불안하지 않으려면 검사를 받고 싶어. 오빠도 알잖아, 나는 불안해지면 생활이 안 되는 거. 돈이 얼마가 들던 엄마가 스트레스받지 않아야 뱃속에 덕복이도 건강하게 잘 자랄 거 같아. 오빠, 나 이거 오랫동안 알아보고 공부했어. 또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프기라도 하면..."
아내가 말했다.
"아니, 검사를 하는 목적이 뭐야? 만약에 결과가 기형아라고 판정이 나면 어떡할 거야? 태어나지도 않은 애를 무책임하게 세상 빛도 못 보게 할 거야?"
나는 가계는 생각도 않는 아내의 태도에 배알이 뒤틀렸는지, 아내의 말을 끊고 너무나 뾰족해서 듣는 이의 마음을 찢는 소리를 해버렸다.
"내가 필요해서 내가 하고 싶다는데, 필수이든 선택이든 산모인 내가 결정했다고 하잖아. 오빠는 왜 그렇게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꼭 그렇게 말해야겠어?"
발화자의 눈 아래에는 이미 짜디 짠 액체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협상은 결렬되었고, 그녀의 양심을 정확히 겨냥한 모진 그 말은 그녀를 우울증 환자로 변모시켰다. 서로에게는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같은 주제로 대화를 시도할 때마다 자신의 의견이 맞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목청을 높였다.
가정의 분위기는 며칠 동안 지옥이 되었다. 80만 원 아끼려던 나는 800만 원이 넘어가는 이 답도 없는 다툼을 끊어내고 싶었고, 결국 평화를 위해 백기를 들었다. 그녀의 마음을 차갑게 만드는 것이 나였다면,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는 일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카드값이랑 가계 상황만 생각하다 보니까 정작 우리 뱃속에 우리 소중한 아이 품고 건강하게 키우려 고심하는 자기를 배려하지 못했던 것 같아.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해서 미안해. 자기가 필요하다면 검사받는 걸로 하자. 다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던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항상 오빠가 옆에서 힘이 되어 줄게."
용기 낸 발화 끝에 가정에는 다시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홍콩으로부터 날아온 종이 한 장에 적힌 '정상'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불안감을 즉시 해소시켰다. 태교에 집중하며 출산 전까지 몇몇 사건 사고들을 제외하곤 가정의 평화가 지속되었으므로, 아내의 선택은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사내들이여, 가정의 평화를 주도하고 싶은가? 참일 수밖에 없는 다음 명제를, 자다가 나팔소리만 들어도 깨어나 외치는 복무신조처럼, 깊이 새기자, 마음에. 담자, 언어에. 옮기자, 행동에.
'내가 틀리고 그녀가 맞으면 그녀가 맞다.'
'내가 맞고 그녀도 맞으면 그녀가 맞다.'
'내가 맞고 그녀가 틀려도 그녀가 맞다.'
'내가 틀리고 그녀도 틀리면 내가 틀린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