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의 무거운 어깨, 그리고 오드라덱(Odradek)

by Damon

"(그것은) 우선 납작한 별 모양의 실패처럼 보이며 실제로도 노끈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노끈이라면야 틀림없이 끊어지고 낡고 가닥가닥 잡아맨 것이겠지만 그 종류와 색깔이 지극히 다양한, 한데 얽힌 노끈들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실패일 뿐 아니라 별모양 한가운데에 조그만 수평봉이 하나 튀어나와 있고 이 작은 봉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져 다시 봉이 한 개 붙어있다. 한 편은 이 후자의 봉에 기대고 다른 한 편은 별 모양 봉의 뾰족한 끝에 의지되어 전체 모양은 두 발로 서기나 한 듯 곧추서 있을 수가 있다."

-가장의 근심, 프란츠 카프카-


덕복이(태명)가 아내의 볼록한 배를 발로 툭툭 차며 자신의 도래가 가까이 왔음을 알렸다. 무거워진 몸을 이끌며 출산 직전까지 출근해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아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짠한 마음이 일었다.

'오늘 가서 당장 휴직 쓰고 덕복이 나올 때까지 집에서 푹 쉬어.'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우리 부부는 같은 직종에 근무하고 있었고 둘의 급여를 합쳐야 대기업 직장인의 봉급 수준이었기에 다가올 덕복이를 조금이라도 풍요롭게 맞이하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더 열심히 벌어야 했다. 당시 나는 재테크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청약, 연금저축, 펀드 등 안정적인 자산에 투자하며 착실하게 빚도 갚아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나는 더 욕심이 나기 시작했고 그 당시 열풍이었던 주식에 다시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결혼 전 주식으로 어느 정도 큰 수익을 올려 현재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아파트 대금을 갚는 데 상당한 일조를 한 경험이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아내로부터 나의 주식 투자의 정당성을 획득하게 했다. 주식 관련 책도 몇 권 읽고 어느 정도 지식이 쌓였다고 생각했다. 또 소박한 금액으로 투자하는 종목마다 이따금의 큰 수익을 종종 올리고 있었다. 주식 투자로 10억이 넘는 거금의 수익을 올린 절친의 사례(왜 그것이 나의 사례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이때는 생각조차 못했다)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에 '나도 주식으로 대박 날 수 있다'라는 주문이 마법처럼 뇌리에 각인되었다.

여윳돈으로 하던 투자금은 점점 늘어났고, 물려 있는 종목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서 빚도 내었다. 몇 백만 원이던 투자금은 어느새 억대가 되어 있었고, 늘어난 투자금만큼 빚도 늘어나, 나는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지 3달 만에 뉴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빚투' 열풍의 참가자 1이 되어 있었다. 손실은 점점 더 불어나 원금을 집어삼켰으며, 대여금의 이자가 급여에 해당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말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계절이 한 번 바뀌어 있었다.

나 혼자 잘 살자고 주식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자식과 가족의 안락한 미래를 꿈꾸며 나름의 선한 마음에서 벌인 일에 대한 답이 '빚'이라는 큰 시련으로 주어졌다. 나는 죄책감이 들었다기보다는 먼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모든 손실은 시세를 조종하는 세력 탓, 갑자기 정책을 바꾼 미국 탓, 물타기를 할 투자금이 적었던 탓이라고 자위했다. 불안한 나의 표정을 쉽게 알아챈 아내에게는 원금만 찾고 그만두겠다고 안심을 시켰으나 어떻게 제자리로 돌아갈 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방도가 없었다. 나 혼자 내가 초래한 이 고통의 무게를 견뎌야 했다. 카프카의 오드라덱(Odradek)은 그즈음에 나에게도 찾아왔다.

카프카의 단편 가장의 무게에 등장하는 가족을 부양하고 가정을 지키는 가장은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삶의 대부분을 이 책임감의 무게 속에서 살아간다. 그에게 갑자기 나타난 오드라덱은 이름조차 불분명하고 의미도 모호하지만 살아 움직이는 듯한 불멸의 존재이다. 가장은 이 정체 모를 존재를 바라보며 불안에 휩싸이고, 특히 자신이 죽은 뒤에도 오드라덱이 가정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에 심각한 근심을 느낀다.

가장은 가정의 중심에서 모든 것을 떠받치지만, 동시에 자신이 떠난 이후 가정이 어떻게 유지될지, 그리고 자신이 남긴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오드라덱은 이러한 불확실성과 책임의 무게를 의인화 한 존재처럼 보인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가지만, 가장은 자신의 부재가 가져올 결과를 통제할 수 없고, 이는 끝없는 걱정과 무력감을 낳는다. 오드라덱은 어떤 해결책도, 의미도 제시하지 않으며 단지 존재하기만 한다. 이는 가장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도 그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무의미한 부담으로 느껴진다.

카프카는 오드라덱을 통해 가장의 삶이 얼마나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지를 드러낸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가장은 보람과 헌신 속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통제 불가능한 요소들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투자 실패는 가정을 이루고 난 이후의 삶에서 나에게 가장 무거운 책임과 한계였고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 얼마나 더 노력해야 이 불안감이 사라질지 모르겠다. 빚을 다 갚고 나면 사라질까?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면서도,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두렵다. 도처에 오드라덱이 나타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의 삶은 불가해하다. 완벽하게 통제되는 삶이란 없다. 카프카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불확실성을 수용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불완전한 것들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오드라덱을 통해 묵직하게 메시지를 던진다. 유한한 존재들에게 부여되는 무한한 책임은 우리를 종종 어리석은 선택과 치기 어린 행동과 후회와 좌절로 인도한다. 우리의 삶 자체는 항상 명확한 의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산재하는 오드라덱을 무심하게 응시하며, 그 무거운 짐 지고도 우리를 다시 일어서서 걷게 하는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맛있는 요리 좀 해달라고 투정하는 아내의 목소리와 그녀 뱃속의 작은 꿈틀거림 같은 것 말이다.

모든 가장들,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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