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말 한마디가 너와 나를 춤추게 한다.

by Damon

아내는 말을 잘한다. 내뱉는 말은 톤이 높고 조음이 명확하다. 그녀의 말에는 자신감과 지적 논리가 담겨 듣는 이에게 직선으로 전달된다.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며 말을 돌려 표현하는 법이 없고, 언제나 당당함을 유지한다. 같은 직장에서 근무할 때 그녀가 건물 5층에서 하는 강의 소리가 1층까지 들릴 정도이니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여하간 그런 지적이고 직선적인 화법에 매료되었기에, 나는 지금 왼쪽 약지에 반지를 낀 채 카페에서 그녀의 낭창한 목소리를 듣고 있다.

"오빠, 그 사람 진짜 웃기지 않아? 왜 그런 불합리한 업무를 오빠한테 부탁하는 거야."

부당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그녀의 목소리는 특히 고조된다.

"자기야, 목소리가 너무 커. 사람들 다 듣겠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내가 말했다.

"아, 오빠. 이거 봐. 진짜 웃기지 않아? 주말인데 단톡방에 업무 내용 왜 올리는 거야? 그리고 이 부분 자세히 보면... 꺄악, 오빠 벌, 벌!"

그것은 다른 개체들보다 조금 큰 파리였다. 아내의 비명에 귀청이 떨어져 나갈 뻔했다. 청력을 잃고 방황하는 벌레를 그녀로부터 분리시키고, 놀라서 쳐다보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낀 나는 그녀의 곤충에 대한 두려움을 보듬어 줄 수 없었다.

"아우, 고막이 남아나질 않겠다."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오빠는 내가 벌레 무서워하는 거 알면서 내 걱정은 안 해? 벌에 쏘여 죽는 줄 알았다고."

그녀가 아직도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유 벌이 네 거대한 몸짓에 더 무서움을 느꼈을 거야. 뱃속에 덕복이도 깜짝 놀랐을걸."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며 그녀에게 장난치듯 말했다.

"뭐야, 결혼하더니 달라졌어. 됐어. 나 집에 갈래."

아내가 토라져서 짐을 챙겼다. 그녀는 곤충을 혐오한다. 손톱보다 큰 벌레라도 나타나면 기겁을 하며 나에게 도움을 호소한다. 이것은 지난 몇 년간의 연애와 결혼 생활에서 터득한 그녀의 습성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녀를 걱정하는 말을 먼저 해주지 못했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그녀는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아내의 높고 큰 목소리는 그녀를 내 눈에 들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였는데, 똑같은 그 음성은 어느새 듣기 거북한 소음이 되어 있었다.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 무거운 분위기를 집 안까지 가져가고 싶지 않았기에, 그녀를 달래줄 어조를 탑재해 발성 기관으로 전달했다.

"울애기, 오늘 저녁은 뭐 만들어줄까? 오랜만에 스테이크 구울까?

"별로 식욕이 없네. 아무거나 먹을게."

'아무거나 먹는다'는 발화에는 '그래 스테이크 좋네. 맛있게 준비해 봐.'라는 간접 화행(Indirect Speech Act, 6화 '화용론의 쓸모' 참조)이 담겨 있었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실력 발휘를 할 차례다.

우선 적당한 크기의 등심을 준비한다. 중간중간에 칼집을 내고 그 위에 소금과 후추를 넉넉하게 뿌려 밑간을 한다. 앞 뒤로 올리브유를 듬뿍 발라 기름옷을 입히고 난 후, 고기를 랩으로 포장해 냉장실에서 60분간 숙성시킨다. 고기가 숙성되는 동안 브로콜리와 당근을 먹기 좋게 썰어 버터와 함께 바싹 구워낸다. 숙성이 다 된 등심을 꺼내 상온에 두고 팬에 올리브유를 고기가 반이 담기도록 두르고 예열한다. 강불에 고기를 튀기듯 구우면서 앞뒤로 뒤집어 가며 굽기를 조절한다. 고기가 중간 정도 익었을 때 주위에 양파 슬라이스를 함께 구워 향이 스며들도록 한다. 다 구워진 고기는 원목 도마 위에서 10분간 레스팅 한다. 백색 접시 가운데 먹기 좋게 잘 썰어진 스테이크를 올리고 주변에 브로콜리와 당근을 조화롭게 배치한다. 홀그레인과 소금만 내어도 충분하지만 고추냉이까지 더한다면 금상첨화이다. 2시간 정도 걸리는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위층에서 냄새 맡고 찾아와 한 입만 달라고 할 정도로 맛이 있는 스테이크가 완성된다.


"잘 먹을게, 오빠."

그녀가 짧게 감사를 표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나도 자리를 잡고 잘 구워진 스테이크를 한 입 먹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고기가 이븐 하게 잘 익어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우리 부부는 식사할 때 따로 대화를 하기보다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본다. 오래간만에 정성 들여 만든 스테이크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었지만 아내는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없이 먹기만 했다. 카페에서 아내에게 따뜻하게 말해주지 못한 나를 돌아보며 잔반 하나 남지 않고 깨끗이 비워진, 식욕이 없다던 그녀의 접시를 싱크대로 옮기며 위안을 얻었다.

식탁을 정리하고 식기세척기를 돌린 후 소파에 앉아 함께 보던 드라마를 마저 시청했다. 드라마를 볼 때면 다음 장면이나 대사를 예측하는 것이 나의 특기였는데 이번에도 나는 다음에 나올 대사를 정확하게 예측했다.

"저기 봐, 이거 다음에 분명히 이런 대사가 나올걸? 그렇게 말할 줄 알고 내가 이걸 준비했지."

내가 말을 끝내자마자 화면에서는 배우가 정확하게 '그렇게 나올 줄 알고 내가 이걸 준비했지'라는 대사를 말했다.

"와 대박. 자기야, 나 드라마 작가하면 성공할 것 같은데. 이참에 각본이나 써볼까?"

나는 내가 대사를 맞춘 사실에 흥분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진짜, 대박이네 오빠. 그런데 오빠는 드라마 대사는 기가 막히게 잘 맞추면서 특정한 순간에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잘 못하더라?"

그녀가 갑자기 치고 들어왔다. 다행히 받아치려는 감정의 충동은 이성의 지도를 받았다. 두뇌를 풀가동해 적절한 답변을 찾아야 한다. 뇌내 프로세스가 작동했다. 발화 1안이 탑재되어 소리의 형태로 드러났다.

"아까 서운했어? 내가 장난스럽게 말해서 기분 상했을 것 같아. 미안해요. 자기가 벌레 무서워하는 거 알면서도 배려하지 못한 것 같아. 앞으로는 자기가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더 예쁘게 말할게. 오빠가 우리 애기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항상 아끼고 사랑하는 거 자기도 알잖아. 앞으로도 그럴 거니까 오빠 마음 알아주면 좋겠어."

"그래. 잘하란 말이야. 그런데 오빠 이 드라마 전개가 너무 이상하지 않아? 배우들 연기는 또.."

저 멀리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던 설렘이라는 감정이 그녀에게 잠시 돌아왔음을 아내의 미묘한 표정 변화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말 몇 마디가 평화로운 저녁을 가져왔다. 다행이다, 발화 2안을 꺼내지 않아서.


- 발화 2안

"아,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정말 유별나다 유별나. 뭐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카페에서 사람을 그렇게 무안 주고, 하루종일 말도 없이 퉁명스럽게 있어야겠어? 자기 놀라서 소리 지를 때 진짜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알아? 진짜 깜짝깜짝 놀라서 심장마비 걸릴 것 같아. 고작 벌레 한 마리 그것도 벌도 아니고 좀 큰 파리 한 마리 지나간 거 가지고 그렇게 유난을 떨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그리고 내가 저녁도 2시간이나 걸려서 스테이크 해줬잖아. 맛있게 먹었잖아. 음식 담긴 그릇이 새 그릇이 되던데? 내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그러려니 하고 좀 기분 좀 풀지 왜 또 지나간 상황 꺼내서 비꼬고 그래? 너 국어 전공자 아냐? 화법 배웠을 거 아냐. 사과의 뜻도 비췄고 식사 대접도 했고 상도 내가 차리고 치우는 것도 내가 다 했는데, 이것에 대해 뭐라고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자기도 똑같네 뭐, 예쁘게 말 안 해주잖아. 연애할 때는 애교도 보여주고 톡도 귀엽게 보내고 하더니, 이제 나는 다 잡은 물고기야? 요즘 뽀뽀도 잘 안 해주잖아. 나도 서운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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