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출산의 현장

by Damon

어느덧 아내의 배가 남산만큼 불렀다. 뱃속의 덕복이는 예상 몸무게 3.7kg, 머리둘레 9.8cm에 육박하는 우량아로 자라고 있었다. 40주 차까지 이슬, 가진통, 양수샘 등 출산이 임박했다는 일말의 신호도 보이지 않았기에 우리는 점점 불안에 휩싸였다. 먼저 아이 셋을 출산한 여자 동료에게 적기에 아이를 나오게 하는 민간요법(하루에 30분씩 동네 야외 운동기구인 스텝퍼 하기)도 전수받아 시도해 보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담당의와의 면담 끝에 40주 3일 차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했고, 아내와 해당일 오전 9시부터 가족분만실에 입원했다. 입실 12시간에 15만 원, 이후부터는 시간당 1만 원이 추가되는 고가의 가족분만실이었기에, 나는 덕복이가 빨리 나와주길 바랐다. 입원 후 내진 결과 아이가 너무 위에 있지만 이미 자궁문이 2 센티미터 정도 열려 있다고 하였다. 진료 후 아내는 자궁문이 열리면 아프다는데 자신은 조금의 아픔도 느끼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빠, 나 혹시 별로 안 아프게 자궁문 열리는 그런 체질 아닐까?"

"안 아프다니 다행이다. 자기가 아프지 않게 덕복이가 후딱 나와줄 거야!"

우리는 얼마 뒤 뼈저리게 후회할 말을 그렇게도 쉽게 내뱉었다.

오전 10시부터 아내는 촉진제를 맞으며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자 오후부터 촉진제의 농도를 높였고, 둘이서 함께 짐볼도 타면서 뱃속의 덕복이를 자궁문쪽으로 내려보내려고 노력도 했다.

오후 6시 내진 결과, 자궁문은 2.5 센티미터 정도로 열림이 미미했고, 촉진제를 멈추고 다음날 오전에 다시 진행하기로 했다. 내진 시 양수로 의심되는 물질이 조금 묻어 나와서 퇴원은 불가했고, 우리는 분만실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오후 9시, 일단 뭐 좀 먹어야 했다. 아내는 익일 오전 12시 이후로 금식령이 내려졌기에 아내가 좋아하는 초밥과 쪽갈비로 배를 채우며 함께 만찬을 즐겼다.

"(이제 시간당 만원씩 사라질 텐데 아빠의 지갑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덕복이가 아직 엄마 품에 더 있고 싶나 봐."

나는 마음의 소리는 마음에만 품고, 위로조로 말했다.

"이상하네. 촉진제를 맞아도 배만 당기고 산통이 없어."

그녀가 불안에 휩싸인 채 말했다.

"조금 더 기다려보자. 일단 오늘은 아기 스트레스받지 않게 푹 자요."

아이가 언제 나올지 모를 기대와 불안을 애써 다스리며 잠을 뒤척인 그날 밤은 유독 길었다.

다음날 오전 6시부터 그녀는 다시 촉진제를 맞았고 진행 속도가 걱정되어 내진 마사지도 받았다. 아내는 그때까지도 별다른 진통을 느끼지 못했다. 30분 뒤, 아내는 가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전 9시경, 아내가 점점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주기가 2 ~ 3분 간격으로 진통이 온다고 하여 비로소 아이가 나오는구나 싶어 간호사를 호출했다.

"아직 2.5 센티미터 그대로입니다. 이제 시작이에요. 여기서 힘 빼시면 안 됩니다. 12시까지 지켜봅시다."

담당의가 방문해 몇 마디를 던지고는 분만실을 나가셨다.

"오빠, 나 이대로 진통 계속 느끼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할 것 같은데, 그냥 제왕절개 할까?"

고통을 호소하며 아내가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12시 즈음에 결정하자고 하셨으니 조금만 더 참아보자. 힘내, 자기야."

우리는 사전에 자연분만을 하기로 한 상태였기에 나는 아내를 설득했다. 아내의 눈빛에는 나에게 보내는 분노와 자연분만에 대한 의지가 미묘하게 섞여 있었다. 그때 아내의 말대로 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이후 재차 내진 마사지를 실시하는데 아내는 너무 아파하며 비명을 지르고 서럽게 울었다.

오전 11시경, 통증이 극심해졌고, 아프면 아픈 만큼 짐볼도 타라고 하여 나는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붙잡고 함께 짐볼을 탔다. 아내는 너무 아파서 토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간호사를 불러 아내의 상태를 설명했는데, 이제 시작이니 힘을 비축하라며 잠시 짐볼 휴식을 권할 뿐이었다. 우리는, 아니 특히 아내는 그 말에 더욱 좌절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담당의 내진 결과 자궁문이 3 센티미터 정도 열렸다. 원래 맞아야 할 시기는 아니지만 아내가 고통스러워하니 드디어 유튜브 영상에서 무조건 맞으라던 무통주사를 놓아주셨다. 아내는 본격적인 출산 준비를 위해 관장도 했다. 관장을 하면서 그녀는 토도 했다. 무통 주사를 맞은 지 한참이 지났음에도 아내는 죽을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저 키 크니까 무통주사 더 놔주세요!"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절규하며 추가적인 투약을 요청했으나 1시간 뒤 상태를 보고 결정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남들 다 듣는 무통주사는 아내에게 무용지물이었다. 극심한 고통에 실신까지 거듭하는 모습에 간호사님이 일반인의 3배에 달하는 양의 무통주사를 놓아주셨다. 나는 나중에 부작용이 생길까 매우 걱정이 되면서도 아내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기를 바랐다. 무통주사의 효과는 무통이 아니라 감통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해도 아내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었다. 2분 단위의 진통은 1분 단위, 20초 단위, 1초 단위로 주기가 짧아졌고, 쉬는 주기가 없이 고통만 느끼는 아내의 입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성이 나왔다.

유명 유투버의 출산 관련 영상을 보며 나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아내 옆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호흡을 조절해 주는 일뿐이었다.

"아우라랑라아앙루아우아라라아앙아!"

"자기야, 호흡을 해야 그나마 고통이 덜하다고 영상에서 말했잖아. 자 따라 해 봐. 코로 들이쉬고, 잠시 참았다가, 후~~"

"후아아앙으아아아러러마난나나어아!"

"자기야, 많이 아프겠지만 다시 해보자. 자 코로 들이쉬고, 후~~~"

고통에 실신을 거듭하며 비명을 내뿜는 사람에게 '코로 들이쉬고 후~' 라니, 그때 나는 왜 그랬을까.

의사 선생님은 출산 직전에만 오시기로 한 것 같았다. 간호사님이 주기적으로 내진하며 아내의 상태를 확인했고, 무통주사를 3배나 맞고도 너무 괴로워하는 아내가 보기 안쓰러웠는지 '힘줘서 애 낳기'를 하자고 하셨다. 그것은 매 진통이 최대 피크를 찍는 순간마다 '머리 들면서 최대한 숨 참고 배꼽 바라보며 똥꼬에 힘을 주는 것'이었다. 아내는 반 기절 상태에서 이 행위를 20번 정도 한 것 같다. 나는 땀에 젖은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고 손을 잡아줄 뿐이었다.

오후 1시쯤 되었을까. 간호사가 이제는 아기 머리가 보인다며 담당의를 호출했다.

'드디어 덕복이가 세상에 나오려는가 보다.'

여전히 고통 속에 힘들어하는 아내를 뒤로하고, 나는 기대에 가득 차 한쪽 손목에 덕복이의 탄생을 실시간으로 촬영해 줄 카메라를 달고 의료진에게 촬영 동의를 구했다. 의료진 얼굴이 나오지 않는 조건하에 촬영을 승낙받았고,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눌렀다. 아내는 의사 선생님의 지도 하에 미친 듯이 힘을 주기 시작했다.

"후후후 후후, 읍!"

내가 사랑하는 한 존재의 고통스러운 비명, 백색 조명, 딱딱한 의료 기기들, 왼쪽 손목 스트랩 위 녹화되고 있는 영상장치의 깜빡이는 불빛, 손에 쥐어진 가위에 의해 잘라지는 탯줄, 의사의 손에서 그녀의 품으로 전달되는 핏덩이, 내가 많이 사랑하게 될 또 한 존재의 찬연한 비명.

오후 1시 39분, 그녀는 3.3kg로 세상에 나와 엄마의 품에 안겼다.

"자기야, 고생 많았어. 우리 덕복이 잘 키우자."

속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의 덩어리들을 눌러가며, 그렁그렁한 시선을 아내에게 고정한 채 진심을 담아 말했다.

아내는 아이를 안으면서 아픔, 서러움, 감동이 한꺼번에 몰아쳐서 오열했다. 잠시 뒤 안정을 찾은 아내는 너무 작고 소중한 아기에게 눈을 떼지 못하며, 나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오빠, 덕복이 태어나는 거 잘 나오게 찍었지?"

인생의 다음 막이 열리던 그 순간, 나는 아내에게 남은 여생을 바치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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