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마끼끼 Sep 09. 2024

[잡동사니]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끝없는 해프닝과 유쾌한 웃음들...


  그날은 기분이 별로였던 것 같다. 아마도 대학합격통지서를 받고는 입학하기 전에 생긴 뜻밖의 휴가기간 동안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분전환이나 해볼 겸 무작정 비디오가게를 찾아갔다. 거기서 다짜고짜 재밌는 영화를 추천해 달라고 했고 그렇게 해서 보게 된 영화가 바로 블랙코미디의 진수라 불리며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1988)]였다.(그때 대여섯 개의 영화를 추천해 준 걸로 기억하는데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솔직히 처음에 별 기대는 없었다. 흔히들 기대를 안 했을 때 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했었던가? 그래서 더 재밌게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2시간 가까이 눈물을 흘리고 배를 부여잡고는 미친 듯이 웃을 수 있었고 덕분에 목표부재에 따른 상실감에서 오는 무기력함에 빠져있던 나에게 큰 활력소가 되었고 이날을 전환점으로 하여 꽤 재미있게 휴가기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겐 정말 감사하고도 고마운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제이미 리 커디스가 연기한 완다는 이탈리어어를 들으면 성적 흥분을 하는 여자다. 실제로는 애인사이이지만 두목의 눈을 피해 남매행세를 하는 케빈 클라인이 연기한 오토는 바로 막무가내식 이탈리어어를 구사하는 멍청한 남자다.(케빈 클라인은 오토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여기에 마이클 팔린이 연기한 말더듬이 켄, 이탈리어를 능가하는 성적매력을 지닌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변호사 아치를 연기한 존 크리스, 두목 조지역의 톰 조지슨까지 가세한 출연진은 탄탄하며 조화를 이룬다.

  영화는 고가의 보석을 둘러싼 해프닝을 보여준다. 서로 속고 속이는 사이사이 나오는 뜬금없는 상황이 정말 압권이다. 아치의 러시아어에 어쩔 줄 모르는 완다 하며 켄이 아끼는 금붕어를 날로 먹어치우며 켄을 고문하는 오토의 모습은 정말 웃긴다. 켄 또한 노파를 죽이려 하나 애꿎은 개들만 죽이고(결국 노파는 개를 잃은 상실감에 죽어 목적을 이루긴 한다) 아치를 유혹하는 완다는 아치의 부인과 오토의 난데없는 출현에 항상 곤욕을 치르고...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어찌 보면 정말 아무런 영화적 감흥 없이 단지 웃기려고만 만든 영화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꼭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그리고 그것을 느껴야만 좋은 영화라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어떤 의미를 찾거나 찾으려 노력하지는 않았지만 무기력함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정말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의미 있는 영화를 봤고 의미 있는 관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나만의 느낌이 아니라 이영화를 당해연도 흥행순위 랭킹 8위에 올려놓은 전 세계 사람들의 느낌일 것이다.


  실제로 연극 [라이어]와 같은 끝없이 이어지는 해프닝 속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웃음을 나는 제일 좋아한다. 억지로 웃음을 유발하는 가학적인 장면이나 어이없는 상황이 아닌 치밀한 전개에 따른 자연스러운 해프닝은 정말 나를 신나게 한다. 가끔 생활 속에서 자그마하고 귀여운 실수로 나를 웃음 짓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유쾌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웃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모두가 좋다. 그런데 요새 웃는 얼굴보다는 자주 찡그리게 되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서 찡그렸고 지금은 할 수는 있으나 하기 싫어서 찡그리게 되고... 하지만 이젠 눈옆에 주름살이 자글자글해지더라도, 허리를 필 수없을 정도로 배가 아플지더라도, 딴사람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매일 신나게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한참 후에 알게 된 재미있는 사실은 10년 후에 이들 콤비들이 그대로 다시 모여 [와일드 사파리(1997)]란 제목의 비슷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질 못했기 때문에 어떤지 알 수는 없으나 전작과 비슷한 상황을 무대를 바꿔 다룬 듯하다. 한번 봤으면 하는 바람은 굴뚝같으나 구할 길이 없어 답답할 뿐이다. 언제 케이블에서 한번 해준다면 운 좋게 한번 볼 수 있으려나? 하긴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도 다시 한번 보고 싶지만 이젠 더 이상 비디오가게에서도 찾을 길이 없어 섭섭할 뿐이다. 포스터에서도 느껴지듯이 전작과 같은 재치와 위트가 가득 담겨있을 듯하지만 너무 기대하면 실망이 크듯이 조금만 기대를 해보련다. 결국 유쾌한 웃음은 우연찮은 해프닝에서 나올 때가 진짜 제대로다!

작가의 이전글 [잡동사니]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