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납시오!

by 블레스미

각 집의 여자들이

사모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동안

회사에서도 변동이 생겼다.



"요새

유 과장은 어디 찌그러져 있는지

보이지도 않아"



"그래??

웬일이래~~"



회사 분위기를 물은 나에게

남편은

따끈한 소식들을 물어다 주었다.



상무가 사무실 내를 돌아다니거나

점심을 먹을 때

항상

유 과장이 그 옆을 지켰었는데

요샌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고 한다.



어쩌다 보고를 할 일이 생기거나

마주치게 되면

사적인 대화 하나도 없이

인사만 받거나

어쩔 때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인사하는 유 과장 옆을

쌩 지나친다는 것.



이렇게 티가 나는데

어찌 사람들이 모를 수가 있겠나.



남편은

요즘

유 과장 대신

떠오르는 별이 있다고 말했다.




"누구? 누구??"



바로

고 과장이다.



막강한 빽을 등에 업고

경력직으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그 고 과장.



우리가 발령받아 도착했을 때

유일하게

식사초대를 했던 그 고 과장.



도대체 어떤 여자가

저런 집에 시집가나 싶어

그의 와이프가 누군지

궁금했던 그 고 과장.



코웃음이 났다.

아니,

도련님이 뭐가 아쉬워서

상무한테 붙었대?



내 남편이

상무에게 한 발짝 가까운 존재가 되면

좋았겠지만

이 남자의 대쪽 같은 성격을

잘 아는지라

나는 기대도 없었고 바람도 없었다.



다만,

내 남편은 되지 못할 테니

누구의 남편도 아니길 바라는

고약한 마음이었달까.



그런데

고 과장이 그 자릴 가져갔네?

깽판을 친다 해도

쭉쭉 진급할 도련님께서 말이다.



아니면,

상무도 사람인지라

보험 드는 마음으로

고 과장을 간택한 걸까...?



이제는

유 과장 대신 고 과장이

항상 점심도 챙기면서

곁을 지킨다고 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유 과장이 그럴 땐

사람들이

그렇게나 눈을 흘기고 욕을 하더니만

고 과장이 그러는 걸 보고는

누구도

비꼬아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냥

서로 어울리는 급끼리 만났다고

인정하는 건가 싶었는데

하는 행동을 지켜보니

그게 아니더라



고 과장은

그 특유의 붙임성과 깍듯함으로

평판을 다져놨기에

뒷 말이 없었던 거였다.



그리고

직급으로 보면 가장 막내이니

윗사람의 수발러라고

보았던 거지.



하지만 딱 한 사람.

도끼눈을 뜨고

질투심에 불타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유 과장.



콩고물 야무지게 떨어지는

그 자리를

고 과장에게 뺴앗겼다 생각하더라.

본인의 그리고 부인의 잘못은

생각 않고 말이다.



유 과장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지정석 제도가 아니라

매일 원하는 자리에 앉아

근무를 한다)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데

어쩌다 마주쳐도

인사 없이 쌩 지나간다고 한다.

근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는데도 말이다.


흔들던 딸랑이를

사모에게 빼앗기고 나니

인성 나오는 거지.

저걸 불쌍하다고

거두려 했다는 상무도 참...

(사모가 반 협막으로 상무를 뜯어말렸다)



그런 유 과장이

고 과장과 마주칠 일이 있으면

말로 그렇게 사람을 쏘아댄다 하더라.



감정 빼고 보면 배 아플만하다.

그렇게 공을 들여

뺴먹을거 실컷 빼먹고

이제 디렉터 자리만 얻어내면 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와르르 됐으니 눈물이 나겠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거고

저 놈, 고과장만 아니면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

지가 그동안 보였던 행실들은

생각 못하고 말이다.



그러니

유 과장에겐

고 과장이 얼마나 눈엣 가시겠냐 말이다.



고 과장은 그 자리에 든 덕에

한국에서 오는 윗 분들과의 식사에도

함께 하는 등

여러모로 활약 중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고 과장은 점점

상무와 사모의 집사가 되어갔다.



출장이 잦은 상무의 빈자리를

영어가 부족한 사모가

채울 수 없는 경우가 생기면

근무시간이든 주말이든

5분 대기조처럼

불려 나가기 일 수였다.



상무가

출장지에서 전화를 걸어

한 번 가 봐 달라고 하거나

사모가

직접 급하다고 전활 하거나였는데

내가 들은 가장 어이없는 용건은

프린터 수리였다.



상무 아들이 숙제를 위해

프린트를 해야 하는데 작동이 안 됐고

사모는 그걸 상무에게 전화해

어찌해야 하느냐 물었는데

그걸

상무가 고 과장에게 전활 걸어

퇴근길에 봐 달라고 말했던 것.



고 과장은 그 전활 받고

근무시간에 달려가 만지작해 봤지만

문과 출신인 그가

접근할 순 없는 문제였고

됐으니 어서 회사로 돌아가라고

떠미는 사모에게

자료를 자신에게 보내면

회사에서 뽑아다가

퇴근길에 드리겠다 말했다는 것.



사모가 나에게 해 준 이야기였다.


그게

일하다가 뛰쳐나갈 정도로

급한 일이야?

아들이

숙제를 프린트 못하고 있는 걸

부하 직원에게 살펴보라고

시킬 일이냐고!


또 한 번은

남편이 업무로 고 과장을 찾았는데

자리에 없길래 전화를 걸었더니

차 수리센터에 와 있다고 하더라는.

무슨 일이 터졌나 싶어

왜냐고 물으니

상무가 타는 차의 타이어 부분에

문제가 있어서

그걸 손 보러 왔다고 대답하더란다.


상무의 차는

회사에서 지급되는 차 이므로

문제가 있으면

절차를 밟아 처리하면 그만인 건데

그걸

자기가 굳이?

근무시간에?

왜??



호구를 당하고 있는 건지,

호구가 되어주고 있는 건지

점점

공과 사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그들의 관계

그리고

그걸 알아채는 눈들.



그것 말고도

참 다양한 일들을 처리하며

고 과장은

상무와 사모의 집사로 등극했다.



그러다

도련님은 현타가 오기도 했던 건지

어느 주말엔

급하다고 부탁했는데도

이따가 가면 안 되겠냐고 하더라는

사모의 뒷말을 듣기도 했었다.


형님, 형수님이라 부르며

능글능글하게

일꾼을 자처하는 도련님이나,

이제 우린 가족처럼 친한 사이잖아 라며

공사 구분 못하는 부부나.



그들끼리

서로 윈윈이라 친다면

내가 뭐라 하겠냐만은

내 남편이 저러고 다닌다면

난 이 회사 다니는 거 반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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