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 등장하자
사모는 커피를 준비하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갔고
사모가 앉았던 자리에 M이 앉았다.
부엌에 들어 선 사모에게
아침에 얼마나 바빴는지
꾸미지도 못하고 나왔다는
얘길 하면서
소파 위로 다리를 접어 올리고
한쪽 팔을 팔걸이에 걸친 채 삐딱하게 앉더니
등받이를 눕히더라
리클라이너 소파인지 그날 알았다.
완전 딱 내 집에서 널브러져
티브이를 보는 모습.
손에 리모컨이나 핸드폰을 쥐어 주면
딱 맞을 그 모습.
그 모습을
난 임원 면접을 보듯이
소파 끝에 엉덩이 붙이고 각 잡고 앉아
보고 있었지.
그러면서
사모에게,
본인에게는 헤이즐럿 커피를 달라고.
귀로는 그 말을 듣고
눈으로는 부엌에서 바쁜 사모를 보니
이건 뭐지?
M은 이 집 사모 같았고
사모는 이 집 가정부 같더라.
나에게 뭘 마시겠냐 묻는 사모에게
난 물만 줘도 괜찮으니 어서 와서 앉으시라고.
그만하고 어서 와서 앉으시라고
재촉했더랬다.
M을 만난 지 2분 만에
그동안 기대 해 왔던 내 마음은 상황종결이었다
이런 게 익숙 해 진 건지
아니면 내 눈에만 문제로 보이는 건지
커피를 들고 온 사모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모습으로 떠들었다.
첫인상에서 쏀 기운이 느껴졌던 사모였는데
이 여자한테 이런다고?
이 여자가 더 센 거 거나
아니면 언니라고 부르는 걸 보니
둘이 무지하게 친하다는 뜻이겠지.
대화 내내 고쳐 앉는 자세가 모두
지네 집 안방이더라.
가만있는 머리는
왜 자꾸 풀었다 다시 묶고를 반복인지,
손거울은 왜 이렇게 들여다보는지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던데 말이다.
그러다
나를 향해 돌아 앉더니만
한쪽 팔을
소파 등받이 위로 척 올리더니
나에게 묻더라.
"우리 언니가 해 준 수육 안 먹어 봤죠?
그거 정말 맛있는데!
우리 언니가 수육은 최고 잘해요~"
난 온 지 1주일도 안 됐고
사모도 그제 처음 봤거든?
M의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사모도 함께 쿵작이었다.
그러냐며
어떤 맛 일지 너무 궁금하다고
영혼 없는 맞장구를 쳐 주고 나니
계속 이어지는 그 둘 만 아는 이야기들.
대화 내내 실수하지 않기 위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이 사람이 어떤 여자인지
이미 계산이 끝났기 때문이다.
M은 기선제압이 하고 싶었던 거다
본인이
사모와 얼마나 가깝고 친한지 보여주고 싶고
본인이 2인자라는 걸 알게 해 주고 싶은 거.
그 뜻은
나 보고 달라붙어 어떻게 해 볼 생각 말고
떨어지라는 거지.
그리고
'당신, 나한테도 잘 보여야 할 거야'
하는 메시지.
이런 족속들에 대해 잘 안다.
내 말과 행동을 과하게 싸잡아서
뒷얘기를 해 댈 것이고
이간질을 해 댈 거라는 걸.
그래서 말을 아꼈고
흐트러짐 없이 앉아 그들의 쿵작을 지켜보며
대답만 하고 웃기만 열심히 했더랬다.
감사하게도
시간이 어찌나 빨리 흐르던지
나는 아이들을 픽업하기 위해
먼저 그 집을 나서야 했다.
오래 있어봤자
나에겐 손해인 자리라는 생각이 드니
더 있고 싶지도 않더라.
내가 나가서 문을 닫는 순간
내 양쪽 귀는
닳아 없어질 정도로 간지러워지겠지?!
분명 M은
이러네 저러네 운을 띄울 것이고
사모는 그 장단을 맞출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다
하지만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희한하게
기분이 나쁘다거나 찝찝한 건 하나도 없더라
그럴 여자로 나는 단번에 알아보았고
그 순간 기대니 뭐니 다 날아갔으며
내가 조심해 봤자
없는 일도 만들어 씹을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고
신나게 떠들걸 상상하니 웃기더라
니가 내 머리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웃기고들 있네
실컷 떠들어 봐 실컷.
호랑이 굴에서 살아 돌아온
개선장군의 발걸음이었다.
아니다,
또라이 굴에서 살아 나왔지.
그리고 돌아와선 매너를 잊지 않았다.
오늘 좋은 자리 마련 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재밌는 시간이었다고
사모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
근데
사모는 저런 간신 같은 여자를
왜 가까이 두고 있지?
모르나?
하기야,
구워 삶는 거 보니 안 보이긴 하겠더라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M은
그곳에 있는 주재원 부인들이
사모에게 접근한다 싶으면
이간질을 맛깔나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감시를 하고 싶었던 건지,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고 싶지 않았던 건지
매일 아침 전화를 했고
만나자, 어딜 가자 해 대니
사모가 어떤 날은 전화를 피하기도 했다는.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내가 가고 나서 날 좋게 본 사모에게
나는 성형녀에다가
앞 뒤 말이 맞지 않는 허언증으로 주입을 시켰더라.
별로 떠든 것도 없는 나를 말이다.
그러면서
대한항공도 아니고 아시아나 다녀 놓고서
무슨 승무원을 했다고 저러냐며
본인 우월감에 절어 있는 발언까지.
하하하하핳하ㅏㅎㅎㅎ하하핳하ㅏㅎ.....
만남을 기대했던 여자였는데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여자였는데
에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