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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묻어두고 외면했던 설렘의 발굴

by 오늘

얼마 전 남편과 함께 용인에 있는 놀이공원에 다녀왔습니다.


가기 전날부터 둘이 머리를 맞대고 동선부터, 준비물까지 검색하고 사뭇 진지하게 상의하며 얼마나 신이 나던지요.


사람 많고 시끄러운 것은 딱 질색인데도 놀이공원은 생각만으로도 들뜨고 설렙니다.

조금 부끄럽지만 그 신나는 기분은 어쩌면, 부모님 손을 잡고 갔었던 어린 시절보다 한참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이 더 한 것 같습니다. 그건 아마 어린 내가 또래에 비해 예민한 아이였기 때문이었을겁니다. 놀이공원에 간다는 기대감은 '놀토'도 없던 주 6일제의 그 시절에 고작 하루 쉬는 날을 놀이공원에 가주는 피곤해 보였던 아빠와 가계부를 쓰며 한숨 쉬던 엄마 뒤로 보이는 입장료 가격을 살피며 느낀 정확한 정체 모를 죄책감에 가려지기 일쑤였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예민하고 빠른 눈치는 얼마나 잔인한 재능인지 모릅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되니까요. 그리고 아이만의 천진함을 맘껏 부릴 수 없다는 것이 어찌나 아까운지요.


누구도 눈치 주지 않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비싸서, 사람이 많아서 지레 먼저 포기했던 것들이 꽤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무의식 중에 놀이공원은 행복하고 갖고 싶은 것이 많은 공간임과 동시에 포기할 것도 많은 장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놀이공원을 싫어하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하고 계획을 짜야하는 어른이 되고 나니 그게 아니더군요.


그리고 그런 결정을 모두 나에게 맡겨주는 사람과 단둘이 함께 하는 놀이공원은 달랐습니다. 쓸데없는 눈치를 보느라 좁았던 시야가 넓어지니 신나고 행복한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만들기 위해 오는 곳. 그래서 그곳에는 싸우는 사람도(간혹 있긴 합니다만) 화가 난 사람도 없고 환영해 주는 사람, 환영을 받는 사람, 즐거움을 주는 사람, 즐거운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기운이라는 것은 전염성이 강해서 그 사이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점점 더 들뜨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린아이와 함께하는 피곤이 묻어나는 엄마, 아빠들도 물론 있었지만, 지친 기색 사이에도 아이에게 즐거운 기억을 주고 싶다는 마음과 신난 아이를 다정히 바라보는 행복한 표정이 반짝 빛났습니다. 아마 우리 부모님도 그랬을 텐데, 나도 그냥 조금 눈치 없이 천진하게 굴어볼 것을... 살짝 어린 내가 가엽고 마찬가지로 어렸던 나의 부모가 기특해지기도 했습니다.


특히 20대 중반에 도쿄 여행 중에 방문했던 디즈니랜드는 처음으로 내가 놀이공원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정확히 알게 되는 계기였습니다. 정신없이 뛰어가는 인파, 덥고 습한 날씨와 끝이 안 보이는 대기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과 함께 놀이기구를 타면서 같은 팀이라도 된 냥 동시에 환호하기도 하고, 눈 마주친 대기줄의 초면의 일행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면 주저 없이 다시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이상한 연대감을 느끼게 하는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 행복 말고는 느낄 감정이 없는 것처럼 설렌 표정들. 게다가 마지막의 퍼레이드는 눈물이 날 정도로 낭만적인 화룡점정이었거든요.


이번에 찾은 놀이공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체력은 바닥이어도 흥분은 좀처럼 체력 따라 가라앉지 않더군요.

역시 우울이고 행복이고 감정이라는 것은 전염성이 강한 게 맞나 봅니다. 행복한 비명사이에 내 기분도 붕붕 뜨는 것을 붙잡을 길이 없었습니다.


놀이공원_취향백과.png 놀이공원_취향백과

놀이공원을 좋아합니다.

인생 총량의 법칙이라고, 어린 시절 작은 몸에 담기 서러울 정도로 예민했던 눈치 때문에 즐기지 못했던 만큼 이제라도 맘껏 즐기게 된 것이 다행입니다.

놀이공원이야말로 아마 기억을 미화시키는 가장 상징적인 장소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음조차 행복의 BGM처럼 들리는 곳, 빛과 물과 향까지 모두 기분처럼 반짝이는 곳, 언제든 갈 수 없기에 기대감에 들떠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세상인 듯 낯설고 설레는 곳.


어린 나에게는 포기하고 애써 외면했던 즐거움이 잔재하던 곳.


각자의 마음을 한 번 들여다보세요. 각자의 사정으로 잃었던 놀이공원 하나씩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치고 힘들 때 꺼내어 들고 다시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거기에 내가 진짜 갖고 싶었던 즐거움이,

내가 그랬듯 각자의 놀이공원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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