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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경로보다 나만의 길 찾기

정답 없는 여정에서 경로를 개척하는 일

by 오늘

익숙한 목적지를 향할 때, 낯선 길로 가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퇴직하기 전까지 다닌 회사는 역삼동의 고층 빌딩이었는데 도보로 15분 거리의 지하철역에서 바라보아도 그 꼭대기가 보이는 랜드마크 같은 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출근길에(그런 기회가 흔히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건물만 보고 늘 가던 대로변이 아닌 주택가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를 탐험하듯 가보곤 했지요. 매일 반복되는 익숙하다 못해 지루할 법한 일상에서 살짝 비튼 변수로 재미를 찾는 일이랄까요?


우연히 들어선 골목에는 아침 일찍 여는 커피맛이 기가 막힌 카페를 만나기도 하고, 장미덩굴이 제 계절을 만나 소담한 남의 집이지만 마음에 쏙 드는 담벼락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늘 그런 소소하고 사랑스러운 것들만 마주치면 좋으련만, 인생이 늘 그렇듯 우연은 꼭 낭만적이지만은 않기도 합니다. 용기 내어 야심 차게 들어선 골목길의 중간에서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공사현장을 마주쳐 커다란 트럭이 길을 막기도 하고,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침의 시작이 썩 달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뭐 오늘 알아서 다행이지 하는 마음으로 다음에 피할 길을 하나 저장해 두는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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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목적지를 향할 때 낯선 경로를 개척하는 것은 일종의 개척정신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정해진 결승점이라면 어떻게 가는 것이 더 재미있고 효율적이며 마음에 드는지 연구하고 개척하는 거죠. 물론, 누구도 시킨 적은 없습니다.

다만 핸드폰 화면의 인터넷 지도가 알려주는, 모두가 그러리라 믿는 최적경로가 진짜 나에게도 최적인지 아니면 차선인지는 직접 가봐야 아는 거 아니겠어요? 인터넷 지도에는 가면서 들려볼 만한 분위기 좋은 카페나, 내 취향의 베이커리,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이댈 포토스폿 같은 건 고려하지 않은 단순 km단위의 거리로만 선정한 최적경로만 있을 뿐이니까요. 빨리 가는 건 틀린 것이 아니지만 그게 가장 최고의 경로라고 하기로 어려우니까요.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목적지는 항상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목적지를 향한 과정 위에 있을 뿐이죠. 어떤 길로 가느냐는 늘 내 선택에 달려있고, 그 선택에 따라 겪는 상황과 감상은 그 길에 들어서야만 알 수 있습니다. 목적지에만 몰두하면 남는 것은 아마도 목적을 달성했는가, 아닌가 하는 이분법적 결론뿐일 겁니다. 하지만 이 그 과정에 함께 가는 사람, 스스로 지키고 싶은 것, 찾고 싶은 가치 같은 것을 고려한 여러 갈래의 시도가 있었다면 물론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적경로보다 조금 늘어날 수 있지만 조금 더 재미있을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아마 그럼 가보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갈망이나 후회가 좀 덜하겠죠.


빨리 가는 것과 재미있게 가는 것,

무엇이 더 옳은 지는 알 수 없습니다.

행선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행이 있고, 거기까지 혼자 간 후 함께 자리를 옮겨야 한다면 빨리 가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옳을 겁니다. 이렇듯 각자의 행선지는 모두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도 전부 같을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혼자 묵묵히 가야 하는 길이라면 가끔은 대로변에서 벗어나 내가 가보고 싶은 길을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거리가 조금 늘어날지언정, 체감시간은 훨씬 줄어들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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