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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이지만 회식은 좋아합니다.

by 오늘

내향인으로서 의외의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회식을 좋아합니다.


퇴사하고 아쉬운 것 중 하나를 꼽자면 단연 회식입니다.

요즘 세상에, 심지어 더 이상 회식을 할 수 없는 삶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내가 아쉬운 것이 회식이라니 누군가 들으면 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햇병아리 신입시절부터 회사의 중간 허리가 되던 최근까지 누군가에게 직접 말해본 적은 없지만 회식을 매우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회식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사람이 모여 음식을 함께 먹는 행위 또는 모임'이라고 합니다.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먹는 것,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가 떠오릅니다.

바로 '식구(食口)'입니다.



밥 한 끼 함께 먹는다는 것이 굉장한 의미를 가지는 이 나라에서 끼니를 함께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중요한 관계인지요. 그 한 끼에 나누는 이야기와 함께 먹은 음식은 알게 모르게 어쩌면 불편했을지라도 서로를 읽고, 파악하는 시간임과 동시에 같은 시공간의 역사를 찰나이나마 함께 했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너무 거창한 의미일지 모르나, 어쩌면 내가 회식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타인'이 '식구'가 되어가는 단계랄까요. 나는 어느 조직에서든 소속감이 중요한 사람입니다. 사직서 한 장이면 간단한 퇴직도 그렇게나 고민했던 이유는 소속이 사라지고 나서 혼자 덩그러니 남겨질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팔 할이었을 겁니다. 어디서든 센터는 아니어도 그 테두리 안에 끼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이왕 껴들기로 한 조직이라면 확실히 껴들고 싶은 마음입니다. '함께'가 되는데 밥 한 끼보다 더 좋은 핑계가 또 있을까요? 내향인인 데다 이방인인 내가 앞장서서 같이 밥 먹을 사람! 하고 엄지손가락을 내밀면 잡아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고 오금이 저린 일입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단체로 같이 밥을 먹는 자리라니, 그것도 돈까지 주면서 말이죠.

반강제로 모인 자리이지만, 그 자리는 분명 서로를 알아가는 예열의 자리임이 분명합니다. 일을 함께 하려면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그 리듬을 맞춰서 조절할 텐데 서로 슬쩍이라도 알아가기엔 그만한 자리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라고 하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좀 더 소속감을 가지고 함께 하는 사람들을 파악할 수 있는 기회기도 합니다. 심지어 배가 부르면 마음이 좀 너그러워진다고, 사무실에서는 못했던 말들도 슬쩍 솔직해질 수 있는 자리기도 하죠.




어쩌면 이 회식예찬 역시, 떠나고 나니 기억이 미화되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어쨌거나 나는 이제 적어도 당분간은 회식을 할 수 없는 무직자의 신분이지만 직장생활에서 맛 본 회식의 맛은 잊을 수 없으니 오늘은 영구적인 내 소속, 식구인 남편과 부부회식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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