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누군가의 선물을 사러 간 꽃집에서
함께 간 일행에게 나의 꽃 취향을 넌지시 고백했던 날이 있습니다.
- 저는 누가 꽃 선물 준다고 하면 빨간 장미는 좀 피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그렇습니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꽃 선물에도 예외가 있다면 그건 바로 빨간 장미일 겁니다.
빨간 장미가 별로인 이유는 너무 노골적이기 때문입니다. 꽃말조차 빨간 꽃잎 색깔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하듯이 '열정', '사랑'이라니. 반전 없이 고루하고 솔직하다 못해 노골적인 느낌이랄까요. 게다가 다발 안에 들어가 있으면 비록 한 송이어도 화려하기 짝이 없어 누가 봐도 주인공인 양 그 존재감이 대단하니, 다른 꽃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왠지 눈꼴시리곤 했습니다. 같은 이유로 너무 해맑고 밝은 사람도 썩 좋아하진 않거든요. 비뚤어진 자격지심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미움은 받지 않고, 부러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주목받고 뛰어나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던 못난 마음이 죄 없는 식물에게 화풀이를 한 건 아닐까도 싶습니다.
그러니 얼마 전 아침운동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발걸음을 멈추고 홀린 듯 사진을 찍어댄 이유가 바로 아파트 단지의 화단 울타리에 흐드러진 빨간 장미 넝쿨 때문이었다는 것은 얼마나 희한한 일인지요.
흰 울타리를 흘러내릴 듯 넝쿨째 피어난 빨간 장미는 따뜻하다 못해 뜨거워지기 시작한 날씨에 보란 듯이 활활 타오르는 붉은색으로 화사하게 피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빨간 장미가 원래 이렇게 에뻤나, 아니면 정말 나이가 들어 휴대폰 앨범에 셀카대신 산천초목 자연을 담기 시작한 노화 시그널인 건가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이왕이면 전자의 이유였으면 하는 마음이 큰 게 사실입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이런 내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제발, 꼭 나이 들어 그런 것만은 아닐 거다 되뇌면서
빨간 장미가 진짜 나에게 한 번도 예쁜 적이 없었는가 찍은 사진을 다시 보며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내가 빨간 장미를 선천적으로 싫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행히도 말이죠!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장미의 기억은 초등학생이 될까 말까 한 나이에 놀러 갔던 이모네 아파트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 날의 우리 집은 작은 빌라였고 놀이터도, 화단도 없는데 이모네 아파트 단지는 장미넝쿨이 타고 올라간 꽃터널 같은 길도 있고 회오리처럼 뱅뱅 도는 기구가 있는 놀이터도 있고... 내 일상에서는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예쁘고 좋아 보인다는 것은 꼬마의 세상에서는 꽤나 잔인한 일입니다. 몇 날 며칠 군것질 하지 않고 세뱃돈까지 싹싹 모아서 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수록 그냥 나는 원래 그런 거 관심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니까요. 그래서 나중을 기약하며 어린 마음에 나는 어른이 되면 빨간 장미넝쿨이 있는 아파트 단지에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는 어린 날의 내가 꿈꾸던 걸 이루고 사는 꽤나 당당한 어른이 되었군요. 소망하던 것을 실현하는 어른이 되었다니, 이왕이면 좀 더 크고 거창한 꿈을 꿀 것을 그랬습니다. 이를테면 한강뷰 역세권 초품아 신축 아파트 청약 당첨 같은 거 말이죠.
그런 것을 다 제치고 고작 빨간 장미넝쿨이 있는 아파트 단지라니....
아무튼, 빨간 장미는 결국 쭉-늘어 써보고 나니 결국 내 자격지심과 결핍 때문에 미움을 받던 꽃이라는 진상이 밝혀졌습니다. 너무 화려해서, 주목받는 게 꼴 보기 싫고 어린 날 가지고 싶었는데 가질 수 없었던 마음 같은 것들이 복합적이었던 모양이지요.
어쨌거나 오늘의 나는 빨간 장미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사실 오랫동안 내 마음 깊이에서 모른 척하던 어떤 조각을 찾아 맞춰낸 걸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고, 원하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괴리가 있어서, 또는 갖고 싶은데 가지지 못한 결핍에 대한 자기 최면에 대한 이유로 사실은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외면하고 싫어했던 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는 화려하게 흐드러진 빨간 장미를 좋아할 마음이 생겼으니 다른 미웠던 것들도 돌아보고 담을만한 공간이 내 안 어딘가에 또 생기지 않았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