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친정집에 갔더니 못 보던 옷이 두벌이나 걸려있었다. 블라우스 같기도 하고 셔츠 같기도 한데 옷감이 하늘하늘하니 보기에도 예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이 옷 예쁘네. 새로 샀어?" 엄마에게 물으니,
"응. 하나 샀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른 걸로 하나 더 샀어."
"그랬구나. 잘했네. 근데 얼마야?"
"십만 원."
엥?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엄마가 한 벌에 십만 원이나 하는 옷을 샀다고? 그것도 두 벌이나...
내가 알던 엄마는 시장에서 싸게 파는 옷들을 대충 사서 입거나 아니면 엄마 몸에 맞게 편한 옷들을 직접 만들어 입곤 했었다. 분명히 예전엔 그랬었다.
내가 좀 놀란 표정으로
"한 벌에 십만 원?"
이라고 되물으니
"응. 편하고 좋으니까 비싸도 그냥 사 입었어. 뭐 어때? 너도 너무 아끼지 말고 살아."
이렇게 답하시는 게 아닌가!
역시 엄마는 예전에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엄마는 허투루 돈을 쓰는 일이 없었다. 엄마가 얼마나 알뜰살뜰 아끼며 살았는지 나는 봐서 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엄마도 생각이 달라지셨나 보다. 조금은 벙쪄있는 나를 보며 엄마가 말했다.
"예전에는 아끼고 아끼면 잘 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그거 조금 아낀다고 나중에 부자 되는 거 아니더라고. 그냥 지금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사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어. 그거 조금 쓴다고 당장에 무슨 큰일 나는 거 아니야."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슬프기도 했다가 또 뭔지 모를 해방감이 들기도 했다. 엄마가 지금까지 그렇게 아끼고 아끼며 살아왔다는 것에 조금은 슬펐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를 위해서 쓰고 살아도 괜찮다는 엄마의 증명 같은 말이 허리띠를 꽉 조이며 살았던 나를 조금 느슨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랄까?
월급 받아 사는 사람들이 다 그러하듯이 정해진 한도 내에서 미래를 위한 저축도 해야 하고, 아이들 교육비며 식비도 써야 한다. 들어올 데는 없는데 나갈 데는 많다. 그러다 보니 순전히 나를 위해 무언가를 사고 싶을 때면 이게 정말 필요한 건지, 순간의 기분으로 쓸데없이 돈을 쓰는 건 아닌지 두 번 세 번 생각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직결된 것은 아니니 꼭 필요하다고 볼 수는 없고, 결국에는 못 사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이런 나의 마음을 알고 한 말인지 그냥 한 말이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꼭 나에게 적용되어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는 말들을 잘하신다. 엄마는 책을 많이 읽은 것도,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시기적절하게 나에게 딱 맞는 말들을 해주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나를 기준으로 세팅된 인생 도우미 백과사전 같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전이었는데 엄마는 벌써 그걸 실천하고 있었다니. 덕분에 나도 소확행을 즐기며 사는 사람이 되었다. 마음속에 상한가와 횟수는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행복을 느낄 만큼 누리면서 산다. 나를 위한 소비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어준 엄마에게 감사하며 오늘은 온라인 쇼핑이나 즐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