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반장은 아빠가 엄마에게 지어준 별명이다.
오래전에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긴 제목을 가진 한국 영화가 있었다. 제목처럼 그 영화의 주인공 홍반장은 말 그대로 동네 어디서든 수시로 나타나 여러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 준다. 요즘 엄마의 삶이 그 홍반장과 비슷하여 우리는 엄마를 최반장이라 부른다.
내가 어렸을 때의 엄마를 생각해 보면 그 시대의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모습이다.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도 보지를 못했고 다섯 살 차이인 아빠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보질 못했다. 그저 아침저녁으로 집안에 먼지 한 톨 없이 윤이 나게 쓸고 닦던 모습, 맛있는 반찬이랑 국을 만들어 끼니를 준비하고 우리를 위해서 간식을 만들어주시던 모습들 뿐이다.
엄마는 솜씨가 좋아서 바느질과 뜨개질도 잘하셨다. 우리가 입던 옷 중에는 엄마가 만들어주신 것들도 꽤 많았다. 아주 어릴 때 손바느질도 만들어주신 멜빵치마랑 대바늘로 떠주신 스웨터를 동생과 세트로 입었던 것도 기억난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엄마가 교복 만드는 일을 부업으로 하셨던 시기라 심지어 교복까지도 만들어주셨다. 엄마가 만든 옷은 뭔가 달랐다. 다른 아이들이 입은 교복은 다 똑같았지만 엄마는 허리 라인을 살짝 잡아준다던지, 치마 주름을 더 풍성하게 넣어 준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크게 튀지는 않지만 조금 더 맵시 있고 예쁘게 교복을 만들어주셨다. 엄마가 만들어준 교복이라고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면 다들 놀라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손은 야무지고 꼼꼼했던 터라 웬만한 수선집의 재봉틀질은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 지금도 옷을 수선해야 할 때면 가끔 엄마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그랬던 엄마가 이제는 변했다. 변했다는 말보다는 엄마는 원래 지금의 모습이었는데 그동안 숨기고 살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빨간 뚜껑 소주만 고집하는 아빠랑 40년을 넘게 살면서 엄마는 술도 잘 마시게 되었다. 소주, 담금주, 막걸리, 와인까지 주종을 가리지 않고 잘 드신다. 가끔 친정에 가면 저녁 먹은 후에 남자들은 슬슬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가고 엄마와 나와 내 동생 이렇게 여자 셋이 남아 술 마시고 떠들면서 스트레스 푸는 시간이 너무 좋다. 우리 셋은 술을 마셔도 싸우거나 울지 않아서 더 좋다. 친정에 가면 은근히 기대되는 시간 중에 하나이다.
또 요즘에 엄마는 국선도, 탁구, 자전거 등 여러 운동을 즐기며 사신다. 국선도라는 운동은 엄마를 통해 처음 들어봤는데 그 운동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셨다며 나에게도 권하셨다. 내가 봐도 엄마는 나보다 유연하고 건강해 보이신다. 혼자 물구나무도 서고 다리도 일자로 찢으시니 말이다. 내년에는 지도자과정도 도전해 볼까 하시길래 나와 동생은 엄마는 잘할 거라며 무한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탁구 또한 엄마가 사랑하는 운동 중에 하나이다. 전에 엄마가 살던 아파트에는 탁구장이 있었는데 날마다 탁구장으로 출근해서 운동도 하고 청소도 하고 간식도 나눠드시곤 하셨다. 잘 치고 싶어서 레슨도 받고 열심히 연습하시더니 이제는 실력이 어느 정도 올라 복지센터에서 탁구를 치신다. 자전거는 탁구나 국선도에서 만난 분들과 친분이 쌓이면서 종종 함께 라이딩을 가시는 듯했다. 며칠 전 날씨가 좋아 나와 남편도 자전거를 타고 담양에 다녀왔는데 엄마 생각이 나 전화를 하니 엄마는 친구들과 수원에서 김포까지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어렸을 땐 엄마가 운동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참 신기한 일이다.
엄마는 운동을 다니고 여가 시간을 즐기면서 엄마의 매력을 알아봐 주는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정하고 친근하고 여러모로 솜씨도 좋은 엄마를 자주 찾고 이런저런 고민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나에게도 엄마는 언제나 최고로 든든한 조언자인데 아마 그분들에게도 엄마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엄마를 찾고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엄마는 상대적으로 일하는 시간 외에는 집에만 있는 아빠보다 바빠졌다. 그래서 아빠는 엄마를 최반장이라는 약간의 질투가 섞인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다.
엄마도 나름 그 별명이 싫지는 않으신 듯한 눈치이다. 지금까지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로 살아오셨으나 이제는 본인의 이름으로 본인의 삶을 사는 행복을 누리시는 것처럼 보인다. 가끔은 아빠도 챙겨 데리고 다니시면 어떨까 싶지만 뭐 엄마도 아빠도 썩 내켜하시진 않을 것 같다. 워낙에 바쁜 엄마 덕분에 아빠나 나와 동생은 조금 찌그러져 있는 중이지만 앞으로도 엄마가 최반장으로 즐겁고 재미나게 사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