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동생이 어릴 때 아빠는 우리에게 제일로 무서운 존재였다. 폭력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아빠를 무서워했을까? 아빠는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에 팔 남매 중 넷째로 자라 부모에게 듬뿍 사랑을 받지도, 원하는 만큼 공부를 하지도 못하셨다. 어릴 때 세상을 떠난 형제들까지 합하면 열두 남매였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마도 자녀에게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르셨을 것이다. 그 시대의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우리에게 다정한 모습보다는 강인하고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모습을 주로 보이셨다. 평소에 우리가 잘못을 하면 주로 엄마에게 혼이 났지만 여러 번 혼이 나도 고쳐지지 않으면 엄마는 아빠에게 심판권을 넘겼다. 아빠에게 혼나는 날은 정말 눈물 콧물 쏙 빠지는 날이다. 아빠의 불호령을 들으면 우리는 당장에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니 엄마는 가끔 아빠 찬스를 이용하기도 했다.
우리 집에서 아빠의 말은 곧 법이었다. 아빠에게 말대꾸를 하거나 토를 다는 일은 있을 수도 없었다. 아빠를 어찌나 무서워했던지 나는 아빠에게 "아빠, 다녀오세요. 아빠, 다녀오셨어요. 아빠, 진지 드세요." 하루에 딱 이 세 마디만 했었다. 나이가 먹고 어른이 되어서야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은 아빠랑 장난도 치고 농담도 건네지만 말이다.
우리는 그래서 아빠를 무서워하면서도 미워했다.
"엄마는 왜 아빠 같은 사람이랑 결혼했어?"
"엄마는 아빠 어디가 좋아?"
"나는 다정하고 친구 같은 남편 만날 거야. 절대 아빠 같은 사람 안 만날래."
우리는 아빠가 안 계실 때면 엄마에게 이렇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면 엄마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잘못된 길로 갈까 봐 엄하게 하는 거지. 그래도 아빠 같은 사람 없어.
엄마에게는 좋은 남편이야. 성실하지, 나쁜 일 안 하지, 엄마만 생각해 주지. 그리고 너희는 기억 못 하겠지만 너희 어릴 때 아빠가 얼마나 많이 안아주고 업어주고 좋은데도 - 이 좋은데 중에는 복싱장도 있었다 - 많이 데려가고 했는데.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아빠도 너희 생각 많이 해."
그때는 엄마는 맨날 아빠 편만 든다고 생각했었다.
어릴 적에 집에서 엄마가 맛있는 특식을 요리할 때면 아빠가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아빠가 먼저 수저를 뜨신 후에야 우리도 먹을 수 있었다. 어쩌다 집에서 통닭을 먹을 때면 엄마는 맛있는 닭다리를 아빠 몫으로 빼놓으셨다. 나도 닭다리 좋아하는데, 닭고기는 다리가 제일 맛있는데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입맛을 다셨다. 가끔 아빠가 나와 동생에게 양보해주시기도 했지만 너희는 오래 살 거고 엄마아빠는 너희보다 먼저 죽을 거니까 엄마아빠가 좋은 거 먹어야 한다는 논리(요즘은 나도 아이들에게 이 논리를 자주 늘어놓는다. 맞는 말이다.)를 펼치시며 거의 대부분은 아빠가 드시곤 했다. 어른이 되어서 혼자서 치킨을 시켜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닭다리 두 개를 온전히 나 혼자 먹을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아무튼 나와 동생은 불만이 많았지만 엄마는 언제나 그렇게 아빠를 챙기고 집안의 어른으로 세워주셨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보니 엄마가 정말 훌륭한 가르침을 전해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동갑이고, 심지어 학번은 내가 빨라서 학교에서는 내가 남편의 한 학년 선배였다. 직장 생활도 내가 먼저 시작해서 돈도 내가 먼저 벌었다. 하지만 결혼한 이후로 나는 한 번도 남편을 나보다 어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싸우더라도 말을 함부로 하거나 '야', '너'라고 부른 적도 없다. 항상 가족을 위해 고생하는 남편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여기며 위해주려고 노력했다.
다 엄마 덕분이다. 엄마는 항상 부부가 먼저, 자식은 그다음이라고 가르쳐주셨다. 자식은 자라면 부모를 떠나가는 게 당연하고 남는 건 부부이니 부부 사이가 좋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지금도 엄마는 아빠를 일 순위로 생각하고 위해주신다. 아빠가 먹고 싶다고 하는 건 바로 그날 반찬에 올라온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우리에게 아빠 뒷담화를 조금 늘어놓으신다는 것 정도이다. 우리도 한패가 되어 엄마가 늘어놓는 아빠 뒷담화에 맞장구를 치며 서로 눈을 찡긋 하다가도 아빠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엄마는 금세 아빠에게 힘든데 고생했다며 위로하고 칭찬해 주며 아빠의 기분을 잘 맞춰주신다. 그런 엄마와 아빠를 보며 나도 남편과 저렇게 서로를 위하며 나이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마음속으로는 자식이 우선일 때도 있지만 말이라도 남편이 우선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산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