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와 가우디

by 수정

우리가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스페인에 왔다는 걸 실감할 겨를도 없이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장시간의 비행으로 우리 모두 녹초가 되었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가우디 투어가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여행지를 스페인으로 정했을 때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TV에서만 보던 가우디의 건축물을 직접 눈으로 보는 일이었다.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라 할 만큼 그의 작품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스페인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도시였다.

우리끼리 자유롭게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가이드와 함께 투어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아 동생이 미리 가이드투어를 예약해 두었었다.


아침 8시에 까사 밀라 건너편에서 가이드님과의 만나기로 해서 우리는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를 하고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국적인 건물 사이사이 골목길을 지나 유럽 특유의 돌바닥길을 걸으며 이제야 스페인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 청소하시는 분들, 테라스 식당에서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로 생기가 넘쳐 보였다. 그리고 역시나 부지런한 한국인 관광객들. 아침 일찍부터 여러 그룹들이 가이드와 함께 가우디 투어를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도 가이드님을 만나 수신기를 전해받고 비행기에서 챙겨둔 이어폰을 연결해 설명을 들으며 투어를 시작했는데, 제일 먼저 주의를 준 것이 여기서는 ‘앞으로 메면 내 가방, 옆으로 메면 공용 가방, 뒤로 메면 남의 가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매치기가 많으니 가방은 꼭 앞으로 메고 핸드폰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유명하고 아름다운 관광지가 어쩌다 소매치기로 악명 높은 곳이 되어버렸을까,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주위에 소매치기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는데….” 내가 이렇게 말했더니, 동생은 “그럼 그 사람들이 ‘나 소매치기요’ 티 내고 다니겠냐”며 핀잔을….

아무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다행히 우리의 여행 동안 그들을 만나는 일은 없었다.

까사 밀라

첫 번째 장소는 약속 장소 건너편의 까사 밀라. 스페인어로 ‘까사’는 ‘집’이라는 뜻이란다.

그러므로 ‘까사 밀라’는 ‘밀라의 집’.

가우디의 건축물을 감상할 때 그 안에 담겨있는 자연, 곡선, 종교에 대해 생각하며 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가이드님이 말씀해 주셨다. 까사 밀라는 네모반듯한 주변 건물들과는 달리 파도가 치는 듯한 곡선의 모양이 아름다웠고, 모두 다른 모양과 크기의 창문들, 그리고 독특한 옥상의 모습까지도 인상 깊었다. 스타워즈의 감독이 옥상에 있는 병정 얼굴 같은 굴뚝을 보고 다스베이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듣고 보니 꼭 닮아 보였다.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조롱과 놀림거리였던 건물이 지금은 바르셀로나를 찾게 만드는 건물이 되었다니, 까사 밀라의 숨은 이야기들과 배경에 대해서 듣다 보니 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내부관람은 하지 않고 다음 장소인 까사 바트요로 이동했다.

까사 바트요 와 그 옆집

두 번째 목적지는 까사 바트요.

까사 밀라보다 훨씬 화려하고 색채가 아름다웠는데 역시 내부 관람은 하지 않고 건너편에서 바라보며 설명을 들었다. 옆집과의 인테리어 경쟁으로 재탄생한 바트요의 집. 용의 전설을 듣고 보니 외벽의 타일들이 용으로 보였다가, 사람의 뼈, 혹은 바다를 형상화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화려한 외관에만 신경을 쓴 것이 아니라 그 집에서 사는 사람을 위해 채광이나 환기까지 세심하게 고려했다 하니, 새삼 그의 천재성이 느껴졌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외벽 타일이 너무 아름다워 다른 날 우리끼리 또 와보자고 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다시 들르지 못했다.


가이드님이 추천해 주신 근처 카페에서 커피 한잔씩 마시며 자유 시간을 가진 후 세 번째 장소인 구엘공원으로 이동했다. 거리가 조금 멀어 택시를 탔다. 위쪽으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구엘공원 후문에 이른다. 9시 반이 오픈 시간이었는데, 그전부터 이미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구엘공원에 대해서는 여행 책자에서 본 타일로 꾸며진 아름다운 곡선의 의자와 도마뱀 밖에 아는 게 없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넓어 둘러볼 곳이 많았고, 높은 곳에 위치해 전망도 아주 좋았다.

여행 오기 전에 스페인 날씨를 검색해 보니 비가 오고 갑자기 추워졌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웬걸, 선글라스가 꼭 필요할 정도로 태양이 강렬하고 날씨가 아주 화창해서 저 멀리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바르셀로나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구엘공원에서도 가이드님의 설명 후에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도 찍고, 사람들 구경, 버스킹 구경도 하다가 그늘에 앉아 쉬기도 했다.

또 다른 입구 쪽에 위치한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 같이 생긴 기념품샵에는 타일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든 아기자기하고 예쁜 것들이 많았다. 사고 싶어 들었다 놨다 하다가 가격도 그렇고 괜히 예쁜 쓰레기가 될 것 같아 구경만 하고 나왔다.

마지막 장소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가기 전에 가이드님이 예약해 놓은 근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스페인 사람들은 음식보다 음료를 먼저 주문한다는데, 주로 와인이나 ‘클라라’라고 불리는 레몬맥주를 마신다고. ‘여름의 레드와인’이라는 의미의 ‘띤또 데 베라노’도 추천해 주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여행기간 동안 거의 매일 마셨던 것 같다. 주종을 가리지 않고 잘 마시는 우리 모녀는 스페인 여행동안 와인을 원 없이 마실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생각하니 또 침이 고이네. 아, 그리운 날들이여.

우리는 와인과 함께 돼지고기 요리와 빠에야, 연어샐러드를 시켜 푸짐하게 먹었다. 우리 입맛에 조금 짜기는 했지만 나름 쌀도 있고, 고기와 채소도 있어서 맛있게 잘 먹었다.


든든하게 배도 채웠겠다, 이제 가장 기대하고 기다렸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이동.

처음에는 성당 건너편 공원에서 성당 외부의 전체 모습을 보았다. 가이드님이 사진도 찍어주시는데 자리 경쟁이 치열해 빨리 찍고 빠져줘야 한다. 사람이 많고 복잡하니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소매치기 위험구역이다. 사진 찍어달라고 아무에게나 핸드폰을 건네면 안 된다. 성당의 전경을 담은 인생샷 한 장씩 찍고 나서 입구로 이동했는데, 성당 내부에 들어가려면 투어신청과는 별개로 개별적으로 입장권을 사전 예약해야 한다. 여유롭게 한 달 전쯤 예약해야 원하는 날짜와 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입장권 종류가 여러 가지이니(입장만, 입장+오디오가이드, 입장+오디오가이드+탑) 잘 보야한다. 우리는 미리 예약해 준 동생 덕분에 편하게 들어갔지만….

내부에 들어가기 전에 공항에서처럼 가방 검사를 하고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야 한다. 얼마 전 어느 환경운동가들이 정부를 비판할 목적으로 성당 외벽에 페인트를 뿌리는 사건이 있어 더 철저하게 검사하기도 했고, 혹시 모를 테러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성당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스테인드글라스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형형색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내는 빛의 향연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사진으로는 다 담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오후 시간에 들어갔기 때문에 서쪽에서 햇빛이 들어와 주황빛이 진했지만, 오전에 방문하면 동쪽에서 햇빛이 들어와 푸른빛이 진해지면서 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고 했다. 나무의 가지를 본떠 만든 크고 높은기둥들 덕분에 숲 속에 들어온 느낌도 들었다. 아침에 방문한다면 푸른빛이 도는 신비롭고 고요한 새벽 숲을 산책하는 기분이지 않을까. 하루 종일 성당 안에 앉아만 있어도 좋을 만큼 평온하고 경이로웠다.

내부뿐 아니라 외부의 조각들도 전부 다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는데, 글을 읽지 못하던 시대의 사람들에게 조각품들을 통해 성경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초기의 조각들은 실제 사람의 석고본을 떠서 만들었다고 했는데, 각각의 조각들의 표정과 몸짓에 다 의미가 깃들여져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많은 고민과 정성을 들여 만들었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도대체 언제 완공이 되느냐가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거리인데, 아마 가우디 사망 100년째 되는 해인 2026년까지는 대략적인 윤곽은 완성될 예정이라고. 어디까지나 예정이고, 완전히 공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은 그 이후에도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완공 후의 성당을 미리 보여준 영상이 있었는데 화면으로 보아도 웅장하고 성스러운 모습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완공이 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와 이 성당과 찾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말년의 가우디는 이 성당의 작은 공간에서 머물며 성당의 건축만을 위해 살았다. 어느 날 아침, 가우디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는데 그 차림이 볼품없어 노숙자라고 여긴 사람들이 그를 방치하여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의 마지막은 쓸쓸하고 초라했지만 후대의 사람들이 그와 그의 건축물을 사랑하고, 지금까지도 그의 뜻을 이어 성당을 지어가고 있는 것을 본다면 행복해하지 않을까.


어쩌다 보니 이번 글은 가우디로만 채워졌는데, 이 날의 일정은 가우디가 전부였기에 어쩔 수가 없다. 그가 천재적이고 독보적인 건축가라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건축물에 깃든 그의 사려 깊음과 섬세함, 독실한 신앙심까지 엿볼 수 있어 너무나도 좋은 시간이었다. 가우디의 생애와 그의 건축물에 대해서 짜임새 있게 설명을 잘해주신 가이드님 덕분이기도 하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니까.

앞으로 TV나 책이나 사진, 어디서든 가우디의 건축물을 볼 때마다 엄마와 동생과 그리고 내가 이곳에 함께 왔던 오늘이 생각이 나겠지. 우리가 언젠가 또 이곳에 함께 올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우리의 순간들이 너무나도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져 마음이 찡해진다. 바르셀로나와 가우디, 그리고 오늘의 우리가 오래도록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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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