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카탈루냐 광장

- 그럼에도 매력적인 바르셀로나

by 수정

어느새 바르셀로나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아침. 자유여행이다 보니 일정표에 따라 바쁘게 움직여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돌아다니며 눈에 담는 만큼 남는 거란 생각에 카탈루냐 광장, 람블라스 거리, 보케리아 시장을 거쳐 바르셀로나 대성당과 고딕지구까지 산책하듯 걷기로 했다.

아침의 거리는 부모님 손을 잡고 학교 가는 아이들, 정장 차림으로 바삐 걸어가는 직장인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어디나 사람 사는 건 비슷구나.

우리는 '여행자'답게 사람 구경도 하고 거리 구경도 하며 카탈루냐 광장을 향해 걸었다.

스페인의 거리를 걸으며 인상 깊었던 몇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모든 도로가 보행자 중심이라는 것이다. 길을 건너려는 사람이 있으면 신호등이 있든 없든 차는 무조건 멈춘다. 심지어 보행자 신호가 빨간불일 때도. 운전자들은 계속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 해서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전혀 그런 내색도 없다. 도로에서의 우선순위는 차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인식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또 한 가지는 대부분의 관광지가 그러하듯 동네 여기저기 인테리어나 보수공사를 하는 건물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처럼 다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외부는 그대로 두고 내부만 공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큰 건설 장비 없이 사람들만 들락날락 거리며 아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돌을 주재료로 한 건물들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노력으로 백 년 전의 건물들까지도 본래의 모습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유럽 하면 떠오르는 베이지색 석조건물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바르셀로나의 풍경이 그래서 더 조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카탈루냐 광장은 바르셀로나의 중심광장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잇는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수많은 비둘기들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조류를 무서워하는 나는 비둘기를 피해 고개를 숙인 채 걷다가, 비둘기보다 더 크고 늠름하기까지 한 갈매기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갈매기는 무언가를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빵인 줄 알았던 그것은…… 놀랍게도 비둘기였다.

헉! 나는 너무 놀라 황급히 눈을 돌리고 광장을 벗어나 바깥쪽으로 빙 돌아 지나갔다.

예전에 아이들 동화 <바삭바삭 갈매기>를 읽고 불쌍하게 생각했던 갈매기가 이렇게 무서운 새였다니. 나는 믿기지가 않아 챗GPT에게 물어보니 간혹 그런 경우가 있기도 하다고.

내가 잘못 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이유로 카탈루냐 광장은 나에게 충격과 공포의 장소로 남겨지고 말았다.

람블라스 거리의 물결무늬 보도블록을 따라 걷다 보니 보케리아 시장에 도착했다.

여행지에서 시장 구경이 빠질 수 없지.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눈길을 끌었지만, 시장 안에도 비둘기가 간간이 날아다녀 무서웠고, 또 바르셀로나에서 꼭 먹어야 한다는 유명한 추로스 가게에 가기 위해 유혹을 뿌리치고 고딕지구로 향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에 이르니 때마침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우리를 다정히 반겨주는 듯했다. 성당 앞쪽에서는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는데 오래된 서적이며 지도, 화폐, 시계, 그릇 등 온갖 골동품들이 보물처럼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진짜 값나가는 귀한 물건이 있을 법했지만 보는 눈 없는 우리는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성당 뒤쪽의 골목으로 들어섰다.

중세시대로 시간여행을 온 것만 같다. 어디를 걸어도, 아무 곳에서나 사진을 찍어도 다 오래된 영화 같고 화보 같다. 그리고 마침내 당도한 추로스집. 갓 나온 따끈한 추로스에 달콤한 설탕 옷 입혀주고, 걸쭉한 초코라테 푹 찍어 한 입 베어 무니 웃음이 절로 난다. 너무 맛있잖아.

우리가 가게 옆 담벼락에서 어찌나 맛있게 먹었는지,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길을 멈추고 다들 한 봉지씩 사들고 나온다. 원래 유명한 집이기도 하지만 우리 덕분에 아침 장사가 더 잘됐을지도.^^

관광지답게 어디나 사람이 많았다. 여기저기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여행책자에서 보았던 사랑의 다리도, 키스의 벽도, 가우디의 가로등도 다 만나볼 수 있다. 사람들이 사진 찍으려고 모여있는 곳은 다 유명한 장소였다.

조금 더 걷다가 들어간 어느 브런치 카페.

아보카도 에그 베네딕트와 하몽을 곁들인 샐러드, 커피 한 잔씩을 점심으로 먹었다. 유명한 맛집은 아닌 것 같아 큰 기대는 없었는데, 음식도 분위기도 기대 이상이었다. 우리만 아는 ‘숨은 맛집’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 잠시나마 관광객이 아니라 그 동네 사는 사람들처럼, 그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기분이 들어 괜히 좋았다.

골목 사이 기념품 가게에서 귀여운 바르셀로나 그림엽서를 발견한 우리는 기념으로 하나씩 사기로 했다. 다 예뻐서 이것저것 들었다 놓았다 하며 신중하게 고르는 동안, 우리가 어느새 이 도시의 매력에 푹 빠져 있음을 깨달았다.

아침의 충격과 공포는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아름다운 풍경에 잊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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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