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바이신 지구와 산 니콜라스 전망대
3박 4일간 머물렀던 바르셀로와 이별하는 날이다.
숙소 근처의 거리와 상점들이 이제 좀 눈에 익어 친숙해지려는 참인데, 떠나야 한다니 아쉬운 마음이 밀려왔다. 우리는 숙소 근처 모퉁이에 위치한 작은 동네 식당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혼자 요리도 하시고 서빙도, 계산도 하시는데, 얼마나 여유롭고 느긋하신지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기도 했다. 우리는 급할 것도 없고 할아버지의 그 느릿느릿한 여유로움이 좋아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특별할 것 없는 하몽 샌드위치와 커피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고 맛있는 아침 식사였다. 오래전부터 그 모습 그대로였을 것 같은 식당 내부도, 매일 그 자리에서 일상의 풍경처럼 음식을 만드는 할아버지의 모습도 정겹고 다정하게 느껴졌다. 소박하지만 푸근한 아침식사를 마친 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개선문과 시우타데야 공원을 산책 삼아 둘러보기로 했다. 삼삼오오 모여 운동하는 사람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로 도시의 아침이 깨어나고 있었다. 사진도 찍고 천천히 걸으며 잠시 여유를 누린 뒤, 우리는 짐을 꾸려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향했다.
오늘은 그라나다로 이동하는 날.
수하물 분실과 지연으로 악명이 높은 부엘링 항공을 이용해야 해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고 지연 없이 제시간에 출발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항공기와는 달리 승무원들도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였고, 손님들도 흥이 넘쳐 착륙이 가까워지니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승무원 중 한 분은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셨는지 우리가 내릴 때 “즐거운 여행 되세요.”라며 한국어로 인사를 해주셨다. 낯선 곳에서 외국인이 또박또박 발음하는 우리말을 들으니 어찌나 감동이던지, 우리도 환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라나다에서의 숙소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와 가까운 알바이신 지구의 한 에어비앤비였다. 생각보다 훨씬 깨끗하고 시설도 좋아서 대만족이었다. 숙소 바로 앞에 카사페파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분위기가 좋아 보여 저녁에 들러보기로 하고 산 니콜라스 전망대로 향했다. 하얀 벽의 집들이 좁고 경사진 돌길을 따라 미로처럼 펼쳐져 있었다. 기독교문화와 아랍문화가 섞여있어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매력적인 동네였다. 성당과 모스크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기도 하고, 거리 곳곳에서 아름답고 화려한 이슬람 문양의 타일과 문패를 볼 수도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알람브라 궁전을 볼 수 있고, 특히 노을질 때의 풍경이 아름다우니 꼭 가봐야 한다는 후기를 전해 듣고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하려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전망대에 도착한 기념으로 우리 셋이 셀카를 찍고 있으니 젊은 한국인 여행자들이 다가와 “사진 찍어드릴까요?” 묻는다. 친절하기도 하지. ‘하나, 둘, 셋 찰칵!’ 하며 사진을 찍는 우리와는 달리 젊은 사람들은 사진을 수백 장 찍어준다. 그중에 하나 고르면 된다고. 역시 MZ들은 다르다. 카메라 앞에서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우리와는 달리 자연스럽고 예쁘게 사진도 잘 찍는다. 덕분에 우리도 그곳에서 사진 몇 장을 남길 수 있었다.
저 멀리 내일 방문할 알람브라 궁전이 보인다. 노을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로 전망대는 인산인해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면 붉은 성이라는 뜻의 알람브라는 노을빛을 받아 점점 더 붉어지고, 하늘과 마을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다. 너무 아름다워서 그럴 수 있다면 예쁜 유리병에 담아두었다가 꺼내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을 맛집이라더니 정말이네!
저녁 식사는 찜해두었던 숙소 앞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 맥주와 함께 하몽 감자 요리와 오징어 요리를 주문했는데 짜지 않고 입맛에 잘 맞았다. 엄마는 쌀이 없어서 조금 아쉬워하시는 것 같았지만 음식을 특별히 가리지 않는 나와 동생은 여행 내내 뭐든 맛있게 잘 먹었다. 하몽은 육포와 비슷한 음식인데 와인과 먹으면 궁합이 좋아서 스페인에 머무는 동안 즐겨 먹었다.
식당에서 먹은 것만으로는 살짝 부족한 듯 해 근처 식료품 가게에서 하몽과 알람브라 맥주, 와인 한 병을 더 사 숙소에서 2차를 즐겼다. 하루하루 가는 게 아쉬워 일찍 잠들고 싶지 않았지만 내일 아침 전망대에 한번 더 들러 해돋이도 보고, 알람브라 궁전도 돌아보려면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여행에서는 체력이 우선이다. 아프면 안 되니까 잘 먹고 충분히 쉬며 내일을 준비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