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

by 수정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피카소가 즐겨 찾았다던 ‘7 portes’에서 스페인의 대표음식인 ‘빠에야’를 먹어보기로 했다.

빠에야는 넓고 얕은 팬에 조리한 스페인 요리로, 15~16세기 발렌시아 농가에서 농부들이 먹던 음식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쌀에 토끼, 닭, 달팽이 등을 채소와 함께 조리했지만 요즘에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해산물이나 다양한 종류의 재료를 사용한다. 사프란 특유의 노란빛과 고슬고슬한 쌀의 식감이 특징이며, 육수를 넣고 끓여 짓는 방식이라 볶음밥과 리소토의 중간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그전에 몬주익 성과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둘러보기로 한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몬주익 성으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탑승장에는 어린아이들과 함께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어찌나 예쁘고 귀여운지, 우리 아이들 어릴 때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지으며 손인사를 했다. 한 아이가 부끄러운 듯 엄마 뒤에 숨어있다가 살며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귀여워, 저 때가 제일 예쁠 때지.”

혼자 중얼거리다가 집에 있는 사춘기 딸과 아들 생각이 났다. 연락도 없는 무심한 것들, 엄마 없이도 잘 지내고 있는지. 지금 내가 엄마랑 여행하듯, 언젠가 나도 내 아이들과 여행할 날이 오기는 할까.

몬주익 어딘가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선수의 기념비가 있다고 했었는데, 찾지 못하고 바르셀로네타 해변 쪽으로 내려왔다.

호를 그리며 펼쳐진 모래사장과 푸른빛은 바다가 우편엽서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바닷가 특유의 짠내와 끈적한 바람 때문에 해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바르셀로나의 바다 내음은 상쾌하고 바람도 보송보송했다. 해변 한쪽에서는 알록달록 화려한 무늬의 피크닉 매트도 팔고 있었다.

우리도 우아하게 피크닉 매트를 깔고 모래사장에 누워 바다도 보고 일광욕도 즐기고 싶었으나,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고 바람도 거세져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천막이 드리워진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나의 최애 ‘띤도 데 베라노’와 곁들여 먹을 토마토소스를 바른 빵을 주문했다. 엄마는 커피를, 동생은 맥주를 마시며 바다를 보는 게 우리의 일인 것처럼 그냥 그렇게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는 계속해서 모래사장으로 밀려왔다가 다시 하얗게 부서지고,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부드럽게 해변을 걷고 있다. 정말 우리가 여행을 왔구나. 딱 맞춰진 퍼즐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처럼, 일상에서 14시간쯤 떨어진 이곳에서 유유자적하는 내가 낯설면서도 홀가분했다.

말 그대로 바다멍을 하고 있을 때 한 무리의 버스킹 팀이 다가와 자리를 잡고 공연을 시작했다.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경쾌하고 행복해 보였다. ‘저들도 여행자들일까, 아니면 이 동네에 사는 청년들일까?’, ‘취미로 하는 걸까, 생계를 위한 걸까?’, ‘웃는 얼굴로 공연하고 있지만 실은 예술과 생업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들의 공연을 감상하고 있는데, 엄마는 그들의 음악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팁을 주고 싶다며 빳빳한 10유로를 꺼내어 그들의 악기 케이스에 넣어주었다.

공연이 끝난 뒤 멤버 중 한 명이 모자를 들고 팁을 받으러 다녔지만 수입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먼저 팁을 건넨 엄마를 기억하고 우리에게 두 번이나 감사 인사를 하고 떠났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는 10유로가 천 원쯤 되는 줄 알았단다.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게 고마워했구나”하는 엄마의 말에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엄마 덕분에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예약시간에 맞춰 방문한 7 Portes.

1836년에 문을 연 식당이라니, 거의 2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건물 외부도 고풍스럽고 멋있었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조명이 시선을 끈다. 복장을 갖춰 입은 직원분들은 벌써부터 식당을 가득 메운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분주해 보인다. 자리를 안내받고 천천히 둘러보니 벽면 가득 식당을 거쳐간 예술가들 그림과 유명인들의 사인이 한가득이다. 운이 좋으면 유명인이 앉았던 자리에 앉게 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와인과 함께 해산물 빠에야, 먹물 빠에야를 주문했다. 서빙하는 직원분이 정성스럽게, 각각의 접시에 덜어주신다. 약간 짜기는 했지만 해산물도 많이 들어가 있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쌀이다 보니 맛있게 먹었다. 와인도 두 병이나 비웠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한다면 한 번쯤 방문해도 좋을만한 곳일듯싶다.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면 계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우리나라처럼 음식을 다 먹고 나가면서 계산하면 편할 텐데, 스페인에서는 직원과 눈이 마주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계산서를 받고, 앉은자리에서 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너무 바쁜 직원분을 부르지도 못하고 우리 쪽을 봐달라는 텔레파시를 계속 보내야 했다.


어느덧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 가고 있다. 식당을 나와 아쉬운 마음에 밤거리를 좀 더 걷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내일 향하게 될 그라나다는 또 어떤 모습일지, 어떤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