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6일 차, 우리는 론다로 가기 위해 이른 새벽 기차역으로 이동했다. 6시 50분 기차라서 6시쯤 숙소에서 나서야 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인 데다가 숙소 주변이 번화가가 아니라서 택시가 잡히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전날 미리 숙소 주인 언니에게 시간에 맞춰 택시를 좀 불러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아침 6시에 동양 여자 세 명이 집 앞에 서 있을 테니 택시 기사님께 전해주시라고. 주인언니는 걱정하지 말라며 우리를 안심시켜 주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대개 8시쯤 저녁식사를 시작해서 두세 시간에 걸쳐 느긋하게 식사를 즐긴다. 당연히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늦을 것 같아 혹시 새벽에 택시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나가보니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캄캄한 새벽에 우리 보다 먼저 택시 기사님이 숙소 앞에 대기하고 계셨다.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이 술도 좋아하고 밤늦게까지 지인들과의 시간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하루를 시작하다니. 말끔한 차림에 얼굴에는 생기가 넘쳐 보이기까지 했다.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겠지만, 피곤에 절은 무거운 표정으로 출근전쟁에 나서는 우리나라의 아침 풍경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라나다의 작은 기차역은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붐볐다. 간단한 짐 검사와 티켓 확인을 마치고 기차에 올라탔다. 론다까지 한 번에 가는 기차가 없어 중간에 환승을 해야 했다. 기차는 우리나라의 KTX와 비슷했는데 나와 엄마가 한쪽에, 반대편에는 동생과 스페인 남성분이 앉게 되었다. 스페인에서 처음 타는 기차인 데다가 낯선 사람과 마주 보고 앉아있자니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 우리는 혹시라도 안내방송을 놓칠까 봐 잔뜩 긴장하며 우리가 내릴 역의 이름인 ‘안테퀘라 산타아나’를 계속해서 서로에게 주지시켰다.
“엄마, 우리 어디서 내려야 한다고?”
“안티.. 뭐더라….”
“안테퀘라.”
“아, 안테퀘라.”
동생은 불시에 점검하듯 엄마와 나에게
“우리가 내릴 역이 어디라고?” 수시로 물었고, 덕분에 우리는 안테퀘라를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시킬 수 있었다. 정차역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올 때마다 귀를 쫑긋 세웠고 마침내 솰라솰라 스페인어로 흘러나오는 안내방송 사이에서 '안테퀘라'를 듣게 되었다. 우리는 서둘러 내릴 준비를 했다. 예정시간보다 10분이나 이른 시간이었다. 동생은 시간이 이상하다며 여기가 맞느냐고 물었지만, 우리 모두 분명히 ‘안테퀘라’를 들었기에 의심 없이 기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싸한 것이 이상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내리는 사람이 없었다. 역 대합실로 나가보니 규모가 아주 작은 간이역이었고 대합실 밖은 온통 허허벌판이었다. 동생이 아는 스페인어를 총동원해 역무원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여기는 ‘안테퀘라 산타아나’가 아니라 ‘안테퀘라 A.V.’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한 정거장 전에서 내린 것이었다. 어쩐지... 기차는 시간이 거의 정확한데 예정 시간보다 10분이나 빨리 도착한 것이 맘에 걸리더라니...
이 일을 어쩌나, 스페인의 시골동네에서 이렇게 길을 잃고 마는 것인가 걱정하던 차에 다행히도 그 역무원은 우리가 환승해야 할 기차가 어차피 이 역을 지나니 그때 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제야 안심이 된 우리는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환승기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2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기에 바깥 구경이나 해볼까 했는데 정말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차가 없이는 나갈 수도 없었다. 대합실에 앉아 전광판을 바라보다가 우리가 타야 할 기차를 발견했는데, 다른 기차들과는 달리 타는 곳의 플랫폼 번호 대신에 버스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또 뭐지?’ 불안해진 우리는 동생을 통해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직원과 여러 번 대화한 끝에 다음 역까지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자기 버스라니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환승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버스로 이동하다가 시간이 늦어 기차를 놓쳐버리면 어쩌나 안절부절못하는 마음에 재차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기차를 놓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기차가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웃으며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그러자 정말로 어디선가 작은 셔틀버스가 역 앞에 도착했다. 정확한 이유는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지만 종종 이런 일이 있었던 건지 어리둥절해하던 우리 말고도 열댓 명쯤 되는 승객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다음 역으로 이동했다. 직원의 말대로 기차는 거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무사히 론다행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아침부터 맘 졸이며 긴장했던 탓에 우리는 론다에 도착하기도 전에 기운이 쑥 빠져버렸다. 무슨 역 이름을 이렇게 헷갈리게 해 놨냐며 투덜거리다가, ‘안테퀘라’만 외운 우리 탓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론다에 가까워질수록 기차 밖 풍경은 끝도 없는 갈색 빛 산으로 바뀌었다. 초록 나무들과 숲이 무성한 우리나라의 산과 달리 스페인의 산은 흙이 다 보일 정도로 휑해 보였는데, 간격을 맞춰 가지런히 심긴 올리브 나무가 산의 거의 모든 부분을 채우고 있었다. 세계 최대의 올리브유 생산국다운 풍경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뿌리내리며 살아가는 올리브 나무를 보며 내전과 독재라는 역사적 시련 속에서도 꿋꿋이 성장해 온 스페인 사람들과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스페인으로 여행오기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이 나라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점점 궁금해졌다. 동생은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스페인의 역사도, 사람들의 모습도 우리나라와 참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단다. 겉으로는 무심해 보이기도 하지만 조금만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배우려 하고, 알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면 누구라도 기꺼이 도와주는 속정이 깊은 사람들이라고. 그러고 보니 정말 흥 많고, 정 많고, 열정적인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스페인을 여행한 사람들이라면 왜 다시 한번 가보고 싶어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어느새 기차는 종착역인 론다에 도착했다. 빨간 머리 앤과 매튜 아저씨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정겨운 시골역의 풍경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친숙한 동네에 온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우리는 다시 구글 맵을 켜고, 굉음을 내는 캐리어를 힘차게 끌며 론다에서 머물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