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보 다리를 바라보며

by 수정

론다에서 하룻밤을 머물 숙소로 향하는 동안 동생은 내내 걱정이 많았다. 온라인에서 본 숙소는 누에보 다리가 정면으로 보이는, 믿기 힘들 만큼 환상적인 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 비해 가격은 지나치게 저렴했기 때문이다. 오로지 사진과 리뷰만 믿고 선택한 곳이라 혹시나 사진과 너무 차이가 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구글맵에 주소를 찍고 걷는 동안 작은 중심가를 지나고, 식당가를 지났다. 모퉁이를 돌자 좌우로 집들이 늘어선 골목이 보인다. 문 앞에 적힌 번지수를 살피며 숙소 앞에 도착하고 보니 외관은 뭐 나름 나쁘지 않았다. 내부로 들어서자 락스 냄새가 먼저 우리를 반긴다. 다른 냄새보다는 차라리 락스냄새가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청소와 빨래는 깨끗하게 하고 있다는 의미이니.

주인아주머니는 우리를 2층 방으로 안내해 주셨는데, 방 한 칸에 킹사이즈 침대 하나와 간이침대, 옷장 하나만이 달랑 놓여있었다. 어릴 때 할머니네 집에 가면 볼 수 있을법한 가구와 이불이었는데, 아주 깔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하룻밤 자기에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단지, 2층에 있는 4개의 방 투숙객들 모두 방 밖 복도에 있는 단 하나의 화장실과 샤워실을 같이 써야 한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역시 가격이 싼 이유가 있었다며 떨떠름한 마음으로 방으로 들어와 짐을 풀었다.

그러나 우리의 불평은 창밖의 풍경을 마주하는 순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모든 불편함이 단번에 이해되고, 감수할만하다고 생각될 만큼 멋진 뷰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웅장하고 거대한 누에보 다리의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협곡 위에 놓인 거대한 다리는 그 자체로도 너무 멋있었다. 그냥 다리일 뿐인데 그 크기에 압도된 것인지, 주변의 풍경에 매료된 것인지, 굉장히 비현실적이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누에보 다리를 만든 사람들은 후대에 이렇게 유명해질지, 이 도시가 자신들이 만든 다리 덕분에 먹고살게 될지 예상이나 했을까?
솔직히 론다에 대해서는 특별히 아는 것도, 별다른 기대도 없었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사방이 흙빛에 절벽뿐이라 삭막해 보이고 외계의 어느 행성같이 보였을 뿐이었다. 여행 중에 그냥 하루 거쳐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지금까지도 그 숙소에서 저녁 노을빛으로 물든 누에보 다리를 바라보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아침부터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한 채 정신없이 기차를 타고 오느라 배가 몹시 고픈 상태였다. 투우의 발상지인 론다는 소꼬리찜 요리가 유명하니 꼭 먹어보라는 여행 책자를 보고, 특히 한국인들에게 유명하다는 식당인 'Puerta Grande'에 가보기로 했다. 우리의 계획은 그랬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방문한 날은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았다. 여행동안 치밀한 계획대로 움직이기보다는 꼭 가야 하는 곳만 정해놓고 나름 자유롭게 다니는 편이었는데, 오늘은 그마저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날인가 보다. 그러면 또 어떤가. 나와 동생은 숙소로 가던 길에 눈여겨보아 두었던 식당으로 가보기로 했다.

Bar vida cafeteria. 검색해 보니 여기도 소꼬리찜이 메뉴에 있었고 평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맥주와 오징어 튀김, 소꼬리찜과 어느 한국분이 남긴 리뷰에서 극찬했던 샐러드까지 주문했다. 소꼬리찜은 갈비찜과 비슷했는데 약간 느끼한 감이 있기는 했지만 부드럽고 맛이 좋았고 샐러드도 신선했다. 그러나 가장 맛있었던 건 오징어 튀김이었다. 스페인의 다른 도시에서도 오징어 튀김을 먹어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여기가 제일 맛있었다. 더운 날씨에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으니 환상의 궁합이었다.

배도 채웠으니 이제 멀리서 바라보던 누에보 다리를 직접 걸어보기로 했다. 날이 너무 덥고 햇볕이 뜨거워서 걷기에 좋은 날은 아니었지만,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협곡의 모습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한 협곡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마치 심해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거대한 절벽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자연은 또 얼마나 경이로운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다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면 입장료를 내고 협곡을 투어 할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함께 가보기로 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는 엄마가 힘들어했는데, 론다에서는 내가 너무 힘들었다. 날도 뜨거운데 입장하는데도 한나절이다. 인원 제한이 있는지 줄이 좀처럼 줄지 않았고, 결국 나는 지쳐 계단 한쪽에 주저앉고 말았다. 갑작스럽게 몰려온 피로에 눈이 스르르 감기며 그 자리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결국 동생만 대표로 다녀오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 저녁식사 전까지 쉬기로 했다.

약간의 휴식으로 기력을 회복한 뒤, 엄마가 먹고 싶어 했던 초밥과 곁들여 먹을 와인을 사들고 숙소 바깥 테라스레 자리를 잡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서 하늘은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다 그림 같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도 좋을 만큼 너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노을과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을 때 한 한국인 청년이 맥주캔 하나를 들고 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혼자서 여행 중이고 스페인은 세 번째 방문이라고 했다. 여행 초반에 어떤 호수에 갔다가 핸드폰을 물에 빠뜨려 찾지 못했고, 핸드폰이 없으니 지도도 볼 수 없고, 결제도 할 수 없는 상황에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했단다. 마음이 심란했는데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공폰을 하나 구했고 돈도 조금 빌려 우여곡절 끝에 오늘 론다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혼자 앉아 이렇게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지고,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되어 다시 돌아가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핸드폰을 잃어버려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럼에도 여행을 이어가며 자신을 돌아보고 쉬어가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젊은 청년이라 더 부러웠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나는 저 나이에 무엇을 하고 있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엄마와 동생과 내가 함께 이 시간 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 늦기 전에 이곳에 오게 되어서, 이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보며 이야기 나누고 웃을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한 순간이었다. 론다에서 머문 시간은 하룻밤뿐이었지만 지금도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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