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3. 새로운 장소, 새로운 만남
흐린 날씨를 뚫고 모이기로 약속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는 이슬비가 고요하게 내리고 있었다. 인월 공용터미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나올 법한 과거로 흐르는 터미널 같았다. 터미널 옆에는 머리 도사라는 작은 시골 미용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상호가 재밌어서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다.
한적한 읍내로 경운기 한 대가 요란하게 지나갔다. 2차선 도로를 달리는 경운기 뒷좌석에는 읍내로 마실 나온 누렁이가 한 마리 타고 있었다. 편안하게 자리 잡고 앉은 모양새가 한두 번 타본모습이 아니다. 시골 마을은 서로에게 피해만 가지 않는다면 대충은 다 통용되고 용납이 되는 그들만의 룰이 공존한다.
전국에서 모인 참여자들의 인원 점검을 했다. 서울, 고창, 순천, 평택, 분당 다양한 고장에서 지리산을 찾아왔다. 혼자서 참석한 분들도 계셨고 부부가 함께 참가한 분도 계셨다. 나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어색한 눈인사로 서로의 안부를 대신했다. 처음 가본 장소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함께 있는 내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다. 물과 기름 같은 순간이다.
익숙함에서 멀어지기 위해 도전한 모험에서 또다시 익숙해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리산 둘레길을 걷기 전 점심을 먹기 위해 남원에서 유명한 맛집으로 이동했다. 일행이 찾아간 곳은 개그맨 전유성 선생님이 오픈한 베트남 쌀국숫집이다. 빨간 간판에는 제비라는 상호가 적혀 있었다. 미용실 이름이 그렇듯 브랜드 이름도 참 자유스럽고 재밌다.
제비는 지리적으로 지리산 둘레길을 이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운 좋게도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에 전유성 선생님을 만났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그분을 뵙는 순간 세월을 이기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제비라는 상호에는 주인장의 개인적인 역사를 품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 예쁘고 귀한 딸을 선물 받은 곳이 제비라는 여관이라고 했다. 재밌는 에피소드를 듣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여행자들은 조금씩 밀도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자, 마술사님께서 마술쇼를 해 주셨다. 공연 시간은 10분만 하신다고 하셨는데. 웬걸~30분은 족히 진행해 주셨다. 식당은 손님들이 가득가득 하니 바쁜데도 즐겁게 마술쇼까지 진행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고객을 기쁘게 하는 곳, 감동하게 해 주는 곳은 마케팅의 기본이 되어 있는 곳이다. 이런 곳은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식당 안은 빈자리가 없었다.
살아가다 보면 가끔 마술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기도 하고 때론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셀렘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도 먹고 마술 공연도 관람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걷기를 위해 운봉마을로 이동해야 했다. 지리산 둘레길 2코스가 운봉마을에서 영월로 걸어오는 코스다. 일행이 만나기로 한 장소는 영월이었으니 도착 지점에서 만난 것이었다. 일정상 영월에서 운봉마을로, 택시로 이동했다. 돌아올 곳에 서 있으면서 다시 길을 떠나는 모습이 어쩌면 우주에서 와서 우주로 다시 돌아간다는 우리의 인생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