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라던 시절의 언어 목록을 더듬어보면 ‘공감’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그보다 먼저 익숙해진 말은 ‘동감’이었다.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 숏컷의 사슴 같은 눈망울로 큰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며 데미 무어가 건네던 말, ditto. 그러나 그 동감은 정서적 교류라기보다, 같은 장면에 포개어져 고개를 끄덕이는 수동적인 호응에 가까웠다. 1970년대에 태어난 나는 압축 성장의 문장들 속에서 자랐다.
“열심히 하면 다 잘 될 거야.”
“다 그렇게 크는 거야.”
“파이팅.”
멈추지 않게 만드는 말과 속도를 유지하게 하는 표현들이, 성장을 재촉하는 추진력처럼 따라붙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자녀교육의 중심에는 정서적 교감보다 생존의 기술이 놓여 있었다. 잘 먹이고, 탈 없이 키우고, 교육시켜 사회의 바깥으로 내보내는 일. 성실과 인내가 최고의 덕목이던 시대에 개인의 정서적 허기나 마음의 생채기는 유난이거나 약함으로 오해받기 쉬웠다. 그 시절 우리는 자기 안에서 울리는 소리를 억누르는 법을 당연시하며 어른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부족했던 유년은 아니었다. 나는 충분히 보호받았고, 무한한 지지 속에서 자랐다. 집은 늘 열려 있었고, 어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책임을 다했다. 인간은 자신이 경험해 본 세계의 언어 안에서 살아간다. 부모님은 정서를 묻는 표현 이전에 살아오셨기에, 살아내고 키워내는 문법으로 최선의 사랑을 내게 보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 사랑은 책임과 헌신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공감은 아직 풀어보지 못한 미지의 선물처럼 남아 있었다. 그때의 애정은 마음을 묻는 말이기보다 삶의 하중을 견디고 앞으로 전진하게 하는 방향으로 건네졌다. 괜찮은지 묻기보다, 괜찮아질 수 있도록 등을 받쳐주는 응원으로.
2000년대 중후반, 내가 두 아이의 부모가 되었을 무렵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안은 순간, 세상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공감’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웠다.〈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프로그램이 등장했고 ‘감정 코칭’이라는 개념이 일상의 언어가 되었다. 서점의 육아 코너는 감정 읽기와 공감의 문장들로 채워졌고 좋은 부모의 기준은 아이의 심연을 얼마나 세밀하게 포착하느냐로 옮겨갔다. 받아보지 못한 말을 아이에게는 건네고 싶다는 일종의 부채 의식을 안은 채, 우리 세대는 서툰 외국어를 배우듯 낯선 방식에 몸을 들였다. '그렇구나', '그럴 수 있지' 같은 대답을 따라 하며.
시간이 흐르며 공감은 육아를 넘어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시대언어가 되었다. 이해받고 싶다는 요구는 흔해졌고, 다독이는 문장들이 일상처럼 오갔다. 그런데도 질문은 남는다. 우리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정말 더 마음을 나누며 살고 있을까. 왜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아프고, 더 고립되고, 더 허기진 얼굴로 하루를 견디고 있는 걸까.
지난 주말, 파주에서 북토크가 열렸다. 책이 독자의 손에 건네진 뒤에는, 그 책이 어디로 흘러갈지 작가가 정할 수 없다. 그래서 북토크는 늘 같은 책으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질문은 독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조금씩 방향을 바꾼다. 인덱스를 수없이 붙이며 책을 깊이 읽은 서점지기님의 질문은, 이번에는 ‘연대’로 향해 있었다.
“책에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힘 중 하나가 연대입니다. 작가님은 연대를 ‘서로의 삶을 견디게 하는 에너지의 교환’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단순한 위로나 공감과는 다른, 작가님이 경험하신 연대는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독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손을 내밀고 싶은지 듣고 싶습니다.”
그 질문을 들으며, 나는 내가 오래 머물러 있던 자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오랫동안 누군가의 사연을 듣고 적절한 공감과 위로를 골라 건네는 쪽에 있었지만, 상실 이후에는 그 언어들을 되돌려 받는 수혜자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그 위치의 변화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드러나게 했다. 말로 직조된 이해와 다독임이 얼마나 쉽게 휘발되는지,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고통을 발화하는 자와 그 고통을 관찰하는 자 사이에 결코 좁혀지지 않는 단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고민과 상처 앞에서 내가 내뱉은 “이해한다”는 말이, 곁에 서기보다 관계를 기울게 만드는 시혜적 표현에 가까웠던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이 슬픔만큼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나를 다시 붙잡아 준 사람들은 말을 앞세우지 않았다. 상처를 캐묻지 않았고, 평가하지 않았으며, 견뎌보라는 조언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아픔을 중심에 두어 나를 소외시키는 대신, 그 재난 이전부터 존재하던 ‘나’라는 사람을 평소처럼 대했다.
<널 보낼 용기>를 읽고 다가온 한 어린 친구는 나를 대나무숲 같다고 말했다. 인생의 역설은 이런 지점에 있다. 서진이는 끝내 내게 제 마음을 전하지 못했는데, 나는 이제 부모에게 속을 터놓지 못하는 또 다른 서진이들의 마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부모에게 속내를 보이는 아이들이 30퍼센트에 못 미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말해지지 못한 마음들은 그렇게 세상 어딘가에 떠돌고 있고, 나는 그 고요한 지점들과 연결되어 간다.
그들을 구원할 순 없지만, 가장 외로운 시간에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하는 일, 누군가의 고통이 세상에서 완전히 고립되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는 일은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공감이나 위로라는 말보다 묵묵히 들어주고 함께 걸어주는 다정함으로.
그날, 그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연대는 더 이상 개념이 아니라 눈앞에서 실제로 펼쳐졌다. 마지막 질의응답 시간, 자신을 ‘산 송장’이라고 표현한 한 사람의 말이 시작되자 공간은 숨을 고르는 듯 깊은 정적에 잠겼다.
말을 잇기 어려운 그를 향해 사람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눈빛으로, 마음으로, 삼키지 못한 울음을 그대로 둔 채 침묵을 같이 감내했다. 그곳에 있던 모두에게, 이 자리는 털어놓아도 되는 안전한 곳이라는 감각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 지지 속에서 그는 자신의 상처를 처음으로 꺼낼 수 있었고, 다른 이들은 용기가 발화하는 생경한 순간을 목도했다.
북토크가 모두 끝난 뒤, 맞잡은 손은 포옹으로 이어졌고, 모두가 웃으며 헤어질 수 있었다. 그날 나는 연대가 머리로 이해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삶 쪽으로 데려오는 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몸으로 통과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뇌리에 오래 남은 장면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누군가의 곁에 서성이며 온기를 나누던 모습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말을 멈춘 자리에 남아 있는 존재가 아닐까. 그렇게 곁에 머무는 선택들이 겹쳐지며 함께 걸어간다. 그 모든 연대의 시작은 언제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
♡북토크에 와 주신 브런치 작가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남깁니다.
맨 앞줄에서 보내주신 눈빛과 미소 덕분에, 소중한 연대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2월 전주 & 서울 북토크 일정 전합니다.
1. 2월 6일 금요일 7시, 전주 <잘 익은 언어들>
신청방법: 010-3000-6959 책방지기에게
2. 2월 10일 화요일 7시, 서울 <서점 자,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