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오던 시기에 나는 알게 됐다. 편집은 70인 글을 100으로 끌어올리는 기술이 아니라, 내가 쓴 것들 가운데 무엇을 남길지 고르는 선택의 예술이라는 것을. 130을 쓴 끝에 100으로 눌러 담는 과정이었고, 붙잡아 두고 싶었던 장면들이 그 압축 속에서 밀려났다. 특히 과거와 현재의 마음을 잇는 관계사이의 편지들이 원고 밖으로 사라졌다.
그 조각들 중 하나가, 친구 G가 테드 창의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건네며 책 속에 살며시 끼워 건넨 편지다. 위로의 최상급이 있다면, 아마 같은 밤을 겪어본 사람의 목소리일 것이다. G는 나보다 먼저 상실을 견디고, 삶의 바깥에서 다시 안쪽으로 걸어 들어온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문장을 믿는다. 글을 업으로 삼는 사람의 언어는, 단어의 차원을 넘어 마음의 잠금장치가 열리는 순간을 보여준다. 방송작가인 친구의 글을 읽는 일은, 잘 쓴 문장을 혼자만 읽는다는 기쁨도 준다.
지영아.
너는 지금 어떤 시간을 통과하고 있을까.
사랑하는 이들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 나 또한 고통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보려고 발버둥 친 시간들이 있었다.
인생엔 그저 온전히 겪어내야만 하는 그런 시간도 있나 보다고 세월이 아주 많이 흐른 후에 퉁치고 말았다.
정말 이상하지.
나는 너를 생각하면 늘 같은 순간만 떠올라.
1학년 인문대 축제 때, 무대에 올라 투투의 <1과 2분의 1>을 춤추며 노래했던 너의 모습 말이야.
여전히 엄숙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던 그 시절 대학에서 너는 얼마나 빛나는 아이였는지.
네가 결혼을 하고 아이 엄마가 되고 해외에 나가고 공부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왕왕 전해 들으면서도, 나에게 너는 언제나 그 시절 빛나는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야.
친구야.
돌아보니 우리는 정말 긴 세월을 살아왔구나.
어린 우리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슬픔과 고통을 겪는구나.
아무것도 모른 채 혈기왕성했던 그 시절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많이 멀어진 걸까.
나는 종종 내가 너무 많이 낡아버리고 지쳐버렸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여전히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예전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
우리가 살아온 시간들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든 시간은 연결되어 있다.
내가 사랑했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들이 꿈꿨던 미래까지도 어떤 형태로든 내 삶 속에 계속된다.
그래서 이것은, 그래서 우리는, 결코 끝이 아니다.
너와 가족들에게 평온이 찾아오길.
무엇보다 서진이가 평안하길 매일 기도한다.
밥 챙겨 먹어. 잠을 자.
그리고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렴.
반듯하게 접힌 이 편지를 지금도 가끔 펼쳐본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며 쓴 문장을 읽는 일은 늘 뭉클하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잃어버린 자아가 화면 밖에서 로그인하는 느낌이다. 타인의 문장 속에서 내가 예측되지 않은 방식으로 등장할 때, 마치 메타버스의 병렬 우주에서 전송된 또 다른 버전의 나를 엿보는 기분에 가까워진다.
그 시절의 나는 방위 오빠의 군화를 몰래 신고 무대에 오를 만큼, 거침없었다. 어떻게 보일지가 아니라, 해볼 수 있는가가 중요했다.
지금의 나는 시선이 닿지 않는 자리가 편안하고, 고요한 곳이어야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언제 이렇게 바뀐 걸까. 나는 나를 모른 채 버티며 살아온 셈이다.
7월, 탈고를 하고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슬픔을 곱씹어야 했던 원고에서 해방된 줄 알았는데, 떠나보낸 뒤 남은 허기 같은 열이 나를 바닥에 붙잡아두었다. 앓고 난 뒤,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무엇으로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모를 땐 싸고 가까운 곳이 안전하다. 동네 복지센터 프로그램을 훑다 유산소 근력 운동을 신청했다.
이름만 보면 덤벨과 스쿼트가 연상되는데, 문을 열자마자 빠른 bpm의 음악이 심장을 때렸다. 나는 입장 타이밍을 놓친 엑스트라처럼 벽에 붙었다가, 아무도 나를 신경 쓸 틈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나서야 슬슬 리듬을 탔다. 거창한 음악이 무색하게 동작은 국민체조 난이도로 단순했다. 그럼에도 팔과 다리가 서로의 존재를 처음 만난 듯 따로 움직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별반 차이가 없었다. 저마다 푸다닥 거리는 폼은 엉성해도 표정만큼은 모두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한 달쯤 지나자, 익숙해지지 않은 것은 몸뿐이었다. 혼자 다니다가 어느 날 시몬스에게 물었다.
“같이 할래?”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 사이, 세 커플이 있었고 우리는 수줍게 그중 하나가 되었다. 처음 몇 주는 서로의 동작을 보며 키득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춤이 그게 뭐냐”며 흉내 내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를 잊었다. 마치 혼자 온 사람처럼 멀찍이 떨어져서 자기 춤을 추기에 바빴다. 〈하루하루〉,〈춤을 춰>, 〈타임 아웃〉,〈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등 곡이 넘어갈 때마다 몸이 1%씩 가벼워지고, 마음은 1%씩 따라 웃었다.
새해, 새로운 분기에 다시 그 수업을 신청했다. 댄스는 숨기고, 유산소 근력 운동이라고 계속 우기는 이름도 이제는 정겹다. 내 안에서 어떤 기운이 서서히 살아나는 게 느껴진다. 어떤 새로운 곡들을 배우게 될지, 나도 모르게 기대하고 있다. 이것이 나의 본래 모습인지, 달라지고 싶은 의지인지 아직 분간되지 않는다. 다만 일상 어딘가에 숨 쉴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연말이 길게 쉬어갈 틈을 만들었다. 멈추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나는, 다시 춤을 추고 싶다.
https://n.news.naver.com/article/277/0005679419?sid=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