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금 다르게 이별해 보자.
꼭 같은 얼굴로, 같은 방식으로 떠나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믿음으로.
그런 우리여도 괜찮아.
또 그런 우리여서 고맙다.
<널 보낼 용기>의 마지막 화, ‘이별이 다정할 수 있다면’에는 내가 이루지 못한 작별의 꿈이 담겨 있다. 서진이를 떠나보내는 일은 너무 빠르게 지나가 준비할 틈조차 없었다. 슬픔은 선택지가 아니라 하나의 상태였고, 우리는 그 안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차가웠고, 내가 바랐던 작별의 모습도 아니었다. 나는 다정한 말들이 오가고, 웃음이 스며든 기억들이 은근히 떠오르는 하루를 원했다. 그래서 지난 주말, 서진이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아이를 닮은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에서.
서진이의 친구들이 사회를 맡고, 영상을 만들고, 편지를 읽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남편은 가족을 대표해 위트 있는 인사로 시작을 열었지만, 친구들의 편지가 이어질수록 모두의 상처가 아직 깊다는 사실은 감출 수 없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우리만의 북토크를 하고 싶었다. 이 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왜 11월에 꼭 세상에 나와야 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문장을 쌓아 올렸는지를 솔직하게 나누었다. 그날 내 이야기는 대부분 서진이의 친구들을 향해 있었다. 이제 곧 성인이 되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남겨진 균열을 품은 채로도 자기 삶의 하늘을 넓혀가길 바라며.
지난 테일탱고의 북토크에서 만난 분들 중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는 분이 있다. 그녀는 나에게 “서진이 친구들을 꼭 위로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짧은 문장은 내내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북토크를 다녀온 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글을 남겼다.
오랜만에 지수 생각을 많이 했다. 올해 나는 정확히 그 애 나이의 두 배가 되었다. 그 애는 영원히 열일곱, 나는 이제 서른넷. 어디서 그런 말을 보았다. 시간이 흐르면 그가 떠났던 나이에서는 멀어지고 그에게는 가까워진다고. 그게 큰 위로가 됐다. 내가 기억하는 그 애에게서는 점점 멀어지지만 그 애와 만날 날은 점점 가까워지니까. 지수와 같은 나이에 떠난 서진이가 안쓰럽고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이 안타까웠다.
...
아직도 그 단어를 잘 말하지 못하고, 그 애가 노래방에서 불렀던 한예슬의 '그댄 달라요'를 듣지 못하고, 자유로를 지나갈 때 도로변에 있는 장례식장을 쳐다보지 못한다. 17년이 지나도 그 애의 생일이 있는 3월과 그 애가 떠난 8월에는 친구가 문득문득 생각난다.
<인스타그램 dewwoo05>
이 글을 읽으며 서진이의 친구들이 떠올랐고, 그녀처럼 서른 넷이 될 그들에게 그 문장들을 읽어 주었다. 이제 대학생이 될 아이들은 어느새 앳된 얼굴을 벗고, 그 나이에 어울리는 빛을 품고 있었다. 책을 쓰는 동안, 나는 계속 그 아이들을 생각했다. 서진이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들이 평안하길 바랐다.
지인들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의 뿌리와 같은 사람들과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기분이 들었다. 중간중간 웃음을 얹어보려 했지만, 공간에는 여전히 많은 감정이 남아 있었다.
그 결을 마지막 순서에서 가수 하림 님이 풀어주었다. 무대도, 음향도 익숙한 조건은 아니었을 텐데 그는 기꺼이 노래하는 치유자가 되어 남겨진 이들을 위로해 주었다.
그는 음악이 데려가는 곳으로 자신은 몸을 맡길 뿐이라고, 나도 글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게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평소 좋아했던 그의 노래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지네’가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이태원 참사로 아이를 떠나보낸 아버지가 작사하고 그가 부른 '별에게'를 나는 수없이 들었다.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나의 별을 추억했고, 사랑했다. 이제 이 곡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모든 사람에게 가장 다정한 위로가 될 곡이다.
아홉 곡의 노래가 지나가며, 눈물로 가득했던 공기에 웃음이 번져갔다. 마지막 곡 '걱정 말아요, 그대'를 함께 부를 때는, 서로에게 건네는 말처럼 남았다.
모든 순서가 끝난 뒤, 우리는 서진이가 좋아하던 디저트와 커피를 나누었다. 사진첩을 펼치고, 아이의 물건을 손에 올려두며 웃었다.
그래, 이것이 우리의 이별이다. 울음과 웃음이 나란히 놓인 작별. 기억을 밀어내지 않고 삶 곁에 두는 방식.
남들이 익숙해하는 방식이 아니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우리’니까. 우리가 고른 언어로 사랑하고,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추억하며 살아가는 일.
비록 아무것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무엇을 남길지는 여전히 우리가 선택할 수 있어 다행이다. 우리가 나눴던 사랑이 그 선택 안에 분명히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