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四端)의 길
모두가 떠난 한적한 공원
부지런히 걷고 뛰며
실마리를 찾아낸다
어수선한 공원에서
선한 마음을 찾는 일도
악한 행동을 바로잡는 일도
땀 흘리는 머리,
뜨거워지는 마음,
따뜻한 두 손에 달렸으므로
'사람은 본래 4가지 착한 마음을 타고 난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 맹자(孟子)의 사단설(四端說)을 우리는 언젠가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걷고 뛰는 플로깅(plogging)에 그 단서(端緖)가 녹아 있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맹자는 사람의 마음속에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는 큰 덕목들이 자라날 수 있는 작은 시작, 즉 사단(四端)이 들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순자(荀子)는 그 반대로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고 교육 등을 통해 선해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한 마음을 끌어내는 것, 악한 마음을 선하게 바꾸는 것'의 중심에 교육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1. 측은지심 (惻隱之心) → 인(仁)의 단(端)
"지구가 훼손되어 가는 것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버려진 쓰레기, 오염된 자연을 보며 마음 아파하고, 지구의 고통에 공감합니다.
새들과 물고기, 미래 세대, 나 아닌 존재들을 향한 연민이 플로깅의 출발점입니다.
2. 수오지심 (羞惡之心) → 의(義)의 단
"버리는 행동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길에 버려진 어른들의 쓰레기를 보면 '이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스스로도 그런 행동을 하지 않으려 조심하고, 기성세대의 무책임함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3. 사양지심 (辭讓之心) → 예(禮)의 단
"내 시간을 나누고, 주변 공간을 함께 쓰는 마음"
플로깅은 시간과 에너지를 나의 건강과 함께 공익을 위해 쓰는 일이 됩니다.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자연과 공존하려는 겸손한 태도가 깃들어 있습니다.
4. 시비지심 (是非之心) → 지(智)의 단
"이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교육관계자"
‘내가 아니면 누가'. 이건 옳은 선택이야.’라는 확신
환경문제에 대해 스스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그에 따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힘입니다.
이제 이상의 내용을 논문 도입부로 만들어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본래 네 가지 착한 마음을 타고난다’는 맹자의 '사단설(四端說)'은 우리가 익히 배운 성선설(性善說)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걷고 뛰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plogging) 속에도 그 사단의 단서(端緖)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맹자(孟子)는 인간의 마음속에 인(仁), 의(義), 예(禮), 지(智)라는 네 가지 큰 덕목이 자라날 수 있는 작은 시작, 즉 사단(四端)이 존재한다고 하였고, 순자(荀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며, 교육을 통해서야 비로소 사람이 선해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논의의 출발점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선한 마음을 끌어내는 것도, 악한 마음을 선하게 바꾸는 것'도 결국 교육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오염된 자연을 보고 공감하고 연민하는 '인(仁)'의 단서가 되고,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행위를 부끄러워하는 '의(義)'의 마음이며, 사양지심(辭讓之心)은 타인을 배려하고, 자원을 공유하는 '예(禮)'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시비지심(是非之心)은 무엇이 옳은 행동인지 분별하고 실천하려는 '지(智)'의 실마리가 됩니다. 이처럼 플로깅은 단순한 환경운동을 넘어서, 사단(四端)이 자라나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플로깅이 어떻게 교육과정 안에 유의미하게 포함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과 방법에 대해 탐구하고자 합니다.
지난번, 기고한 글이 이번 주 지역 신문에 실렸습니다. 저의 주장이 그럴듯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