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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잊혀 가는 소중한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by 닥터플로 Mar 2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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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진 풍파를 견디던 나무가

어느 날 말없이 쓰러져

나이테만큼의 토막이 되고


욕망의 껍질과 해진 상처를

온전히 벗기고 갈아내며

흐려진 세월을 보듬는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살구빛 속살을 드러내고

눈물의 흔적이 스며들더니


행복과 사랑을 다져내는

단단한 도마로 거듭나고

다시 날이 선 칼을 받아낸다



시골의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던 어느 날, 창고 뒤에 오래된 측백나무 다섯 그루를 직접 잘라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오던 늙은 나무가 눈이 많이 내린 어느 날 옆 건물을 훼손시켜,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톱을 쥐고 단단한 고목을 힘들게 잘라내며 생각했다.


"한때 울창한 그늘을 드리우며 친구처럼 함께했던 나무가, 이제는 쓸모없어졌다고 잘려나가는구나."


하지만, 나무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잘려나간 굵은 줄기와 튼실한 가지들이 나이 든 주무관님의 손을 거쳐 시장에 내다 팔아도 손색없는 도마가 된 것이다.


난 바람과 비, 세월을 무심히 견뎌온 나무가 새롭게 쓰임을 얻어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누군가의 손길로, 잊히지 않고 다른 의미로 남는 것"


그날 이후,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이 되고 싶은 마음에 주변을 시에 담기 시작했다. 그저 스쳐 지나갈 법한 순간들 속에서도 의미를 찾고 기록하고 싶었다.


그렇다. 시를 쓰는 것은 곧 나를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늙은 나무가 도마로 다시 탈태하듯, 나 역시 흔적을 남기며, 의미 있는 존재로 다시 거듭나고 싶은 것이었다.


"내 인생에서 잊혀가는 소중한 것들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서..."


도마로 만들어지는 나무도마로 만들어지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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