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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OH Sep 16. 2024

제4장 영어

 이제 마지막으로 다룰 분야는 영어입니다. 아래는 영어 공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다른 외국어 공부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1. 영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은 어려서부터 영어유치원이다, 영어책 강독이다, 유튜브다 해서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나 기회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잠수네 영어 공부법이라는 책 말고도 수많은 영어 공부 관련 인터넷 사이트들은 바로 “자연스러운 노출”을 통하여 영어를 익히라는 방법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운 노출에는 사실 부작용이 따릅니다. 빠르면 3세부터 시작되는 영어 공부는 처음에는 짧은 애니메이션 영상을 보여주고,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방식으로 시작되다가 나중에는 좀 더 긴 애니메이션을 보게 합니다. 저를 포함한 학부모들이 청소년이 된 자녀들이 손에서 놓지 않아 치를 떨게 되는 “휴대폰” 내지 “인터넷” 사용을 오히려 아이가 어릴 때는 독려하는 것이지요. 


가. 영어유치원 –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지금은 영어유치원을 보낼까 말까 하는 고민을 하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보내는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 기간을 다섯 살부터 3년을 보낼까, 여섯 살부터 2년을 보낼까 하는 기간의 장단이 문제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영어유치원은 유치원이 아니고 영어 ‘학원’입니다. 저는 예전에 EBS 다큐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일반 유치원에 간 아이의 뇌와 영어유치원에 간 아이의 뇌를 비교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일반 유치원에 간 아이는 “놀았다”라고 생각하는 반면, 영어유치원에 간 아이는 “공부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큐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은 유치원을 다니는 나이 때의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중요한데, 영어유치원에 간 아이들은 자신이 유치원에 있는 시간 내내 공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배우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설명을 해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보았기 때문에 제가 저의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더 올랐겠지만 제 아이가 유치원에 갈 당시에도 영어유치원은 한 달에 원비가 130만 원에서 150만 원 정도를 호가했습니다.      


 다음으로는 그 정도 학원비를 낸 효과가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가르치는 사람의 수준을 넘을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엄청나게 많이 있는 영어유치원의 선생님 수준은 천차만별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어유치원들도 강사의 경력이나 학력을 다 검증하겠지만, 저는 사실 “유아에 대한 전문적인 교수 능력을 갖추었는가”가 영어유치원 강사에게 더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 대상이 유아인만큼, 중고등학생이나 일반인에 대한 교수 능력보다 더 전문적인 역량이 필요할 것인데, 이러한 역량까지 갖춘 우수한 강사진을 모든 영어유치원이 갖추고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영어유치원을 보낼지 여부는 부모 각자가 판단할 사항이겠지요? 저는 금전적인 부담과 효과에 대한 의문 – 사실 못 보내는 이유를 제 나름대로 합리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이 있었기 때문에 직장어린이집 이후에는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만 2년간 아이를 보냈습니다.     


나. “내신 영어”를 통한 균질화     


 제가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중고등학교 영어 내신이 저희 때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아이가 아직 유치원생일 때 우연히 중학교 2학년과 3학년 연년생을 키우는 친척분이 있어 그 자녀분들의 영어 내신시험 대비 교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제가 중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영어독해 문제와 영어 문법 문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실제로 제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성문종합영어와 맨투맨 교재가 좀 더 세련되었다는 차이 정도가 있을까요?      


 아무리 어려서부터 영어에 노출되고, 자연스럽게 원어민과 같은 영어를 배워도 결국 중학교에 와서는 관계대명사의 한정적 용법이니, 계속적 용법이니 하는 것을 배우고, to 부정사의 용법 중 다른 것을 고르라는 문제를 테스트받습니다. 물론 이것은 몇십 년 전의 영어 문법이 갑자기 달리진 것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습득하는 방법이 크게 달라진 지금에도 시험의 유형이 같다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더더구나 이러한 중고등학교의 영어 시험은 어렸을 때부터 배운 “자연스러운 영어 습득”을 무력화시킵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 그리고 원어민 강사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영어유치원에서 자연스러운 노출을 통해 영어를 공부한 아이들은 제가 어렸을 때처럼 영어 문법을 배우지 않고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문법을 배우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지요. “재미있니?”라는 말을 그냥 “Are you having fun?”이라고 자연스럽게 배웠다고 합시다. 이 “Are you having fun?”은 당연하게 쓰는 말이고 여기에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습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오면 「have는 상태동사이다. 상태동사는 진행형을 쓸 수 없다. have는 ‘소유하다, 가지다’의 뜻을 가질 때에는 진행형을 쓸 수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동작을 행하다’는 의미로 쓰일 때에는 진행형을 쓸 수 있다. 따라서 I am having a phone이라는 문장은 쓸 수 없으나, I am having a good time이라는 문장은 쓸 수 있다」라는 매우 장황한 설명을 듣게 됩니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되는 것이지요. 


 이는 한글을 배우는 우리나라 아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사람의 이름을 주어로 하는 문장을 만들 때 자연스럽게 “철수는”이라고 하고 “영숙은”이라고 배우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국어 문법을 배울 때에는 왜 문법적으로 그렇게 되는가를 배우게 되지요. 왜 “이”, “가”가 붙는지, 심지어 이러한 “이”, “가”의 품사는 무엇인지, 문장 성분은 무엇인지 등등을 배우게 됩니다. 아이들은 “아니,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야?!”, “당연한 것 아니야?!”라고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이러한 사용에 어떠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머리는 어질어질 해지고, 이제 자신이 알고 있던 것도 불확실하게 되는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중학교 전까지 어떠한 법칙보다는 “모국어와 같은 자연스러운 언어습득을 통한 언어의 감”을 기르는 쪽으로 교육을 받아온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통해서 “외국어로서의 영어”를 배워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중학교 3년이 지나면 영어유치원을 다녔던 아이와 다니지 않았던 아이가 “균질” 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외국에서 수년을 살아서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친숙한 아이가 영어 내신에서 A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하고, 심지어 수능 영어도 만점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여섯 살부터 수백, 수천씩 써가며 기른 영어 실력이 정작 학교생활에서는 그렇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다. 먼저 영어를 배우는 “목적”을 정해야 한다.     


 말이 길었습니다만, 저는 영어 유치원을 보낸다, 안 보낸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왜 영어를 가르치려 하는가 하는 목적을 먼저 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의 영어 수준이 원어민처럼 되게 하고 나아가 해외 대학 진학까지 염두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국내에서 소위 대입을 위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 목표인지 말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 좋겠지요. 그리고 아이도 잘 따라주고, 금전적 지원도 충분히 되면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어렸을 때에는 원어민 영어를, 커가면서는 소위 내신형 영어를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시키는 공부가 투자 대비 효용을 내는지를 엄격하게 따져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크게 보면 영어 공부를 포함해서 그 어떤 공부도 사실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공부는 재미있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부는 공부처럼 대하고 해 나가야 하는 것이고, 놀이처럼 즐겁게 또는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유치원에서 하는 것처럼 – 요새는 영어유치원도 학습처럼 하는 것 같습니다만 – 자연스러운 노출을 통해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대입을 위한 영어 공부 또는 토플이나 토익 등과 같이 자격점수를 따기 위한 영어 공부는 회화를 위한 영어 공부와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공부”를 하는 이유와 목적을 먼저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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