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숨겨야 했던 이름

–출생신고가 되지 않는 아이, 그리고 조용한 엄마들의 선택

by 지구 외계인


지안이 태어난 지 열흘이 지났다.

고시원 303호, 작고 어두운 방 안에서

아이는 울고, 자고, 또 깨어났다.


마이라는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밤새 지안을 품에 안고 겨우 눈을 붙이면

곧 새벽이 왔다.

루시아는 야간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지안을 받아들었다.

그녀는 제대로 눕지도 않고 벽에 기대 앉아 쪽잠을 잤다.


둘의 하루는 늘 빠듯하고 긴장된 채로 흘러갔다.

그래도 지안은 그 좁은 공간에서 작고 확실히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루시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마이라, 이제 정말… 출생신고 어떻게 하지?”


마이라는 한참 침묵하다 휴대폰을 열어 인터넷을 검색했다.

화면 속의 글자들은 차갑게 쓰여 있었다.


『부모가 외국인이며 국내 체류자격이 없는 경우, 출생신고는 불가능합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막상 다시 글로 마주하니 숨이 더 막혔다.


“우리 서류가 없으면, 지안도 존재할 수 없어. 어디에도 기록될 수 없으니까.”


마이라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무거웠다.

루시아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이 도시에서 투명한 유령 같은 존재라는 걸 이제야 알겠어.”


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며칠 뒤, 고시원 주인이 찾아왔다.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민원이 계속 들어와요. 죄송한데, 여기 애 키우는 곳 아닌 거 아시잖아요. 다른 데 알아보세요.”


루시아는 작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주인의 말은 짧았지만, 마치 벽돌처럼 묵직하게 마음을 짓눌렀다.


문이 닫히고 난 뒤, 루시아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제 정말 떠나야 하나 봐.”


마이라는 지안을 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갈 곳이 없었다.


그날 밤, 마이라는 루시아가 잠든 사이 가만히 지안을 내려다봤다.

창밖의 서울은 너무나 크고 낯선 도시였고,

그녀는 지금 이 작은 존재 하나를 숨기기 위해 그 도시 전체와 싸우는 듯했다.


마이라는 처음 한국에 왔던 날을 떠올렸다.

기대했던 밝은 미래와 지금의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그녀는 아무런 서류도 없는 불법체류자였다.

출생신고서 하나도 쓸 수 없는, 그 작은 권리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음 날, 루시아는 지인을 통해 중고 유모차를 얻어왔다.

바퀴는 삐걱거렸고, 덮개는 해지고 더러웠지만,

지안을 데리고 바깥에 나가려면 이것이라도 있어야 했다.


오후가 되어 마이라는 지안을 품에 안고 유모차를 끌며 조심스레 고시원 계단을 내려갔다.

복도 끝에서 이웃 주민과 눈이 마주쳤다.


그 주민은 아이를 안은 마이라를 낯설고 불편한 눈으로 바라봤다.

마이라는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 안으로 들어온 그녀는 긴 한숨을 쉬며 유모차 위의 천을 걷어냈다.


“밖으로 나가는 게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루시아는 그 말을 듣고 작게 미소를 지었다.

웃음은 힘겨웠지만,

그래도 지안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루시아가 일찍 퇴근해 작게 포장된 케이크 하나를 들고 왔다.


“이게 뭐야?” 마이라는 놀라서 물었다.


“지안 태어난 지 2주년. 정확히 14일 됐잖아.”


마이라는 작게 웃었다.

아직 달력에 기록할 수 없지만,

그녀들은 이렇게라도 작은 기념일을 만들었다.


둘은 작고 초라한 케이크에 촛불을 켰다.

방 안에서만큼은 지안의 존재가 가장 분명하고 따뜻했다.


지안의 이름은 어디에도 적히지 않았다.

출생신고서도, 주민등록증도 없었지만,

마이라와 루시아는 매일 작고 분명하게 그 이름을 불렀다.


어느 날, 지안은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루시아의 품에 안겨 있던 지안이 갑자기 두 사람을 향해 작은 입술을 움직이며 웃었다.


“봤어?” 루시아가 흥분하며 말했다.

“응, 봤어. 우리 보고 웃었어.”

마이라의 목소리는 기쁨으로 흔들렸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걱정과 두려움이 사라졌다.


지안은 그렇게 하루하루 자랐다.

아무 기록도, 아무 증명서도 없었지만,

이 아이는 분명히 존재했고,

매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두 사람을 알아보고 있었다.


기록되지 않은 아이의 이름이

매일 밤, 작은 방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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