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작은 이사

고시원을 떠나는 두 엄마, 처음 마주하는 사회의 벽과 작은 희망

by 지구 외계인


고시원 주인이 다시 찾아온 건 지안이 태어난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다.


“죄송한데, 이제 정말 나가셔야겠어요. 계속 민원이 들어오니까요.”


그 말에 루시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이라는 품에 지안을 안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니 두 사람 모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며칠 동안 마이라는 인터넷으로 새로운 집을 알아봤다.

하지만 서류도 없고 돈도 부족한 그녀들이 구할 수 있는 집은 많지 않았다.


“이 방은 너무 비싸고, 여기는 신분증이 필요하대.”

마이라는 화면을 내려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루시아가 지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정말 갈 곳이 없는 걸까?”


둘 사이엔 길고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다음 날, 마이라는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 언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언니, 혹시 싸게 방 구할 수 있는 데 알아요? 우리가 사정이 좀 복잡해서…”


동료 언니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너 같은 친구들 몇몇이 사는 데가 있어. 조금 멀고 작긴 한데, 그래도 싸게 살 수는 있을 거야.”


마이라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겐 작은 희망이라도 절실했다.


그 주말, 마이라와 루시아는 서둘러 짐을 꾸렸다.

짐이라 해봤자 옷가지 몇 벌과 지안의 기저귀, 몇 권의 책뿐이었다.


작은 짐을 싸서 고시원을 나오는 순간,

마이라는 한 번 더 뒤를 돌아봤다.


한때는 낯설고 차가웠던 이 방이

어느새 작은 추억이 담긴 공간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집은 작은 반지하방이었다.

벽지는 낡았고, 창문은 작았지만,

고시원보다는 조금 넓었다.

지하라 그런지 방 안의 공기는 습했지만

그들에겐 당장 잘 곳이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집주인은 서류를 요구하지 않았다.

돈만 꼬박꼬박 내면 된다며, 별다른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게 두 사람에겐 다행이었다.


첫날 밤, 루시아는 벽을 바라보며 작은 웃음을 지었다.


“이제 여기는 민원 안 들어오겠지?”

마이라는 작게 웃으며 답했다.

“지안이 아무리 울어도 여기는 괜찮을 거야.”


그 밤, 지안은 정말 오랜만에 깊고 편안하게 잠들었다.

두 사람 역시 좁은 방 안에서 조금은 안도하며 눈을 붙였다.


며칠 뒤, 루시아는 시장에서 작은 화분 하나를 사왔다.


“이게 뭐야?” 마이라가 묻자, 루시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새로운 집에 온 기념으로. 이 방이 너무 칙칙하잖아.”


루시아는 창가에 화분을 두고 물을 주며 말했다.


“이 아이처럼, 지안도 우리도 여기서 잘 자랄 수 있을 거야.”


마이라는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작은 화분이 창가에 놓이자, 방 안이 조금은 환해지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오후, 마이라는 방 앞 계단에 앉아 지안을 품에 안고 있었다.

지나는 사람들이 종종 신기한 듯 쳐다봤지만,

마이라는 개의치 않았다.


그때, 이웃 할머니가 지나가다 물었다.


“애기가 참 이쁘네. 이름이 뭐여?”

마이라는 잠시 망설였다가 조용히 말했다.


“지안이에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름 참 곱네. 여기서 자주 봐요.”


작은 친절이었지만, 마이라의 가슴에 따뜻한 기운이 퍼졌다.

그 순간만큼은 지안이 기록되지 않은 아이가 아니라

세상에 존재를 인정받은 아이 같았다.


저녁이면 두 사람은 작은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그날은 루시아가 사온 작은 생선구이와 밥, 김치가 전부였지만,

둘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저녁 식사를 즐겼다.


마이라는 웃으며 말했다.


“이 방이 작고 어두워도, 이제야 조금 살 만한 느낌이 들어.”

루시아는 지안을 품에 안고 작게 답했다.


“맞아, 우리 이제 조금씩 괜찮아질 거야.”


작은 반지하방은 여전히 습했고, 미래는 불확실했지만,

세 사람은 그날 밤, 오래간만에 편안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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