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밖 첫 산책, 낯선 시선과 작은 용기
지안이 두 발로 서서 방 안을 돌아다닌 지 일주일째였다.
집 안에서는 넘어졌다가도 금세 일어나더니,
이젠 현관까지 아장아장 걸어가 루시아의 신발을 잡아당기곤 했다.
“밖에 나가고 싶다는 뜻인가?”
루시아가 웃으며 지안을 번쩍 안았다.
마이라는 창문을 내다보며 조용히 대답했다.
“오늘은… 조금 멀리 나가 볼까?
동네 골목 말고, 아예 큰 공원으로.”
루시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괜찮을까?”
“조심하면… 우리도 숨만 쉬고 살 순 없으니까.”
햇살이 부드럽던 평일 오전,
두 사람은 지안을 유모차에 태우고 집을 나섰다.
골목 슈퍼를 지나 언덕을 내려가니,
작지만 넓은 동네 공원이 보였다.
잎이 막 돋은 나무 사이로,
유치원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어르신들은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마이라는 벤치 근처 풀밭에 돗자리를 깔았다.
지안을 내려놓자 아이는 두 팔을 벌려 균형을 잡더니,
풀잎을 밟으며 작은 발걸음을 옮겼다.
“지안아, 천천히—”
루시아가 뒤에서 손을 뻗었지만,
지안은 넘어지지 않고 의젓하게 걸었다.
두 사람의 가슴이 동시에 찌르르 떨렸다.
잠시 뒤,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다가와
플라스틱 자동차 장난감을 내밀었다.
“이거 탈래?”
지안은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마이라는 아이의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 애가 장난감을 잘 망가뜨려서요…”
엄마는 손사래를 쳤다.
“괜찮아요. 어차피 오래된 거예요.”
그 자연스러운 친절에 마이라와 루시아는 순간 안도했다.
하지만 동시에 속으로 긴장을 풀지 못했다.
‘혹시 서류를 묻진 않을까? 이름을, 국적을, 출생신고를 묻진 않을까?’
다행히 아무 질문도 없었다.
아이들끼리 웃으며 장난감을 밀고,
지안은 까르르 웃었다.
그 소리는 두 엄마에게 작은 축제 같았다.
점심 무렵, 지안이 살짝 졸려하자
루시아가 유모차에 눕히려 했다.
그때 모자를 쓴 노인이 다가와 물었다.
“애가 몇 살이오? 걷는 게 제법인데.”
마이라는 순간 숨이 걸렸다.
“이제 돌 지났어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보였다.
“건강해 보이는구먼. 잘 키우시오.”
그 말 한마디가 어쩐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두 사람은 노인이 멀어질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다
서로에게 작게 미소를 건넸다.
돌아오는 길,
언덕을 오르며 바퀴가 삐걱댔지만
루시아는 힘들다는 말 대신 중얼거렸다.
“오늘… 무사했어.”
마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안이, 세상을 조금 더 만났어.”
지안은 유모차 안에서 졸린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작은 손을 뻗어 마이라의 손가락을 잡았다.
그 순간,
세 사람 사이에 묵직한 약속 같은 공기가 흘렀다.
작지만 분명한 발걸음,
숨겨야만 했던 이름이
세상 한복판에 아주 조금 더 닿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