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품삯, 병원비 독촉, 그리고 첫 ‘도망’의 밤
비닐하우스 안은 아직 밤의 온기를 품고 있었다.
토마토 줄기에 맺힌 물방울이 손목으로 스며들었다.
마이라는 낫으로 첫 송이를 잘라 크레이트에 담았다.
허리에 모래주머니를 단 듯 묵직했다.
지난 한 달, 19만 원 병원비를 메우려 작업 반나절을 늘리다 보니
잠은 매일 두 시간 남짓이었다.
작업반장 박씨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4월 품삯, 다음 주 월요일에 주겠어.”
하지만 월요일은 벌써 두 번이나 미뤄졌다.
주변 외국인 노동자들의 얼굴에 체념이 번졌다.
오후 두 시, 루시아는 전동 진동기를 내려놓고
습기로 흐려진 고글을 벗었다.
토마토 꽃에 인공수분(受粉) 작업을 하려면
꽃가루가 가장 잘 터지는 한낮 온도를 놓칠 수 없었다.
계획보다 십 분 늦었다.
지안 픽업 시간이 40 분 남짓.
땀이 식기도 전에 농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성당 지하 학습센터에 도착했을 때,
지안은 매트 위에서 훌쩍이며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선생님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엄마 목소리 찾다가 금세 울었어요.”
루시아는 가방에서 빨대 컵과 사과 조각을 꺼내며
“미안해… 미안해.” 같은 말을 두 번 속삭였다.
저녁, 반지하방 형광등 아래 식탁 위에는
두 봉투가 나란히 놓였다.
하나는 반장이 아직 주지 않은 28만 원 임시 품삯 기록표,
다른 하나는 병원에서 온 독촉장.
미납 진료비 120,000원 / 15일 이내 납부.
“반장 돈이 들어오면 병원 먼저 갚고
월세를 일주일 미루면…”
루시아가 계산기를 두드렸다.
“남는 게 2만도 안 돼.”
지안은 둘 사이에서 크레파스로 종이컵을 칠하다
빨간 색연필을 떨어뜨렸다.
깨진 심에서 가루가 흩어졌다.
밤 열한 시, 반지하 창문 아래 하수관이 ‘쿠웅’ 울렸다.
지안이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마이라는 아이를 품에 안고
빨대 컵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 입에 물려 주었다.
그때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멈칫.
우편함 철판이 들렸다 닫히는 쇳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은 숨을 죽였다.
문 두드림은 없었지만 마음속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다.
새벽 다섯 시의 메시지
새벽 네 시 반, 마이라는 출근 복장을 마쳤다.
출근 차량이 5시 10분에 농장 앞을 지난다.
그 차를 놓치면 하루 일당 7만 원이 사라지기에
지금이 마지막 여유였다.
지갑에는 병원 독촉장을 접어 넣었다.
마지막 희망처럼 휴대폰을 열어
반장에게 메시지를 눌렀다.
“약속하신 월요일, 꼭 부탁드립니다.”
보낸 시각 05:02.
읽음 표시는 뜨지 않았다.
지안은 요 위에서 손가락을 빨며 잠이 들었다.
새벽 다섯 시 오분,
루시아는 호미와 장화를 가방에 넣고
마이라와 눈을 맞췄다.
“반장이 또 미루면—”
“그땐 짐부터 챙겨.”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벽 너머 첫 새벽 버스가 지나가며
반지하방을 가볍게 흔들었다.
숫자로 기록되지 않은 이름과,
오늘도 이어갈 노동의 숨이
어둠 속에서 조용히 포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