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삯은 오지 않았고, 누군가는 쓰러졌다
월요일 새벽,
비닐하우스 앞 주차장엔 컨테이너 사무실 불이 환히 켜져 있었다.
박 반장이 “이번엔 꼭 준다”고 했던 날이다.
마이라는 이른 새벽이라도 마음이 조금 가벼울 줄 알았다.
그러나 날이 밝자마자 들려온 건,
“오늘은 사람부터 심는다”는 반장의 외침이었다.
“수확은 오후로 미룬다.
내일 농산물 시장 단속 나온다더라.
꽃가루 떨고, 손도 다치지 말고,
일단 오늘은 최대한 낮춰 움직여!”
‘단속’이라는 말에
비닐하우스 구석구석으로 얇은 긴장막이 깔렸다.
열다섯 명 남짓한 이주 노동자들은
언제라도 고개를 숙일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한낮 습도는 90%.
루시아가 진동기로 꽃술을 흔들다 말고 숨을 몰아쉬었다.
더 깊은 하우스 끝에서
케냐 출신 동료 사무엘이 휘청거리다 무릎을 꿇었다.
“어지러워요….”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동시에 눈치를 살폈다.
열두 시를 막 넘긴 시간,
반장은 물병 하나를 던져 주며 말했다.
“앰뷸런스 부르면 조사 들어온다.
잠깐 그늘에 누워 있어!”
사무엘의 입술은 한 움큼의 먼지를 삼킨 것처럼 텄다.
마이라는 잎사귀를 잘라 부채질을 해주다
팔목 위 시계를 보았다.
지안 학습센터 픽업까지 두 시간.
그리고 월급일, 약속된 월급.
작업 종료 석 장 전,
박 반장은 컨테이너 사무실 앞에서
작은 흰 봉투를 하나씩 던져 주었다.
그러나 마이라가 봉투를 열어 보니
손바닥만 한 두둑함 대신
만 원짜리 여섯 장과 천 원 지폐 몇 장뿐이었다.
“반장님, 저희 28만 원이었잖아요.”
마이라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반장은 담배를 문 채 어깨를 으쓱했다.
“시장 가격이 떨어져서 그래.
이번 주 로딩 끝나면 나머지 준다.”
“오늘이 세 번째 미룬 날이에요.”
루시아도 옆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반장의 시선이 두 사람 얼굴을 번갈아 가르며 묘하게 길어졌다.
“그럼 경찰에다 신고할래?
번호도 서류도 없이?”
언성이 높아지자
사람들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가
순식간에 바닥을 향했다.
마이라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주먹 안에서 봉투가 구겨졌다.
지폐 가장자리가 땀에 눅눅해졌다.
지안이 있는 학습센터로 뛰어간 길,
버스 창밖으론 오후 햇살이 둔탁하게 내리꽂혔다.
루시아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주머니 속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초록색 잉크로 적힌 ‘6만 5천’이라는 숫자가
땀에 번질 듯 흔들렸다.
센터 문을 열자 지안은 이미 문틈에 서 있었다.
작은 얼굴에 울다 지친 눈가 자국이 남았다.
선생님이 속삭였다.
“오늘은 엄마 오나 안 오나 계속 문만 봤어요.”
저녁식탁 위,
삼천 원짜리 남은 지폐가
병원 독촉장 위에 눌려 있었다.
“다음주에도 못 받으면?”
루시아가 물었다.
마이라는 잠시 침묵하다
봉투를 가만히 펴서 접었다.
“그땐 하우스를 떠나.
다른 농장이든,
더 멀리든—지안부터 지켜야 하니까.”
지안은 빨대 컵을 들고,
엄마 두 사람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조용히 컵을 내려놓았다.
공기 중에는 토마토 꽃가루보다 더 고운,
말하지 못한 두려움이 떠다녔다.
밤 열한 시,
창문 틈으로 초여름 바람이 불었다.
지안은 잠이 들었지만
마이라와 루시아는 침대 대신 바닥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벽에 붙은 ‘지안’ 이름표 스티커 한 귀퉁이가
습기로 살짝 들뜨고 있었다.
“뜯어질까 봐.”
루시아가 손을 뻗었다.
“아니.”
마이라는 부드럽게 스티커를 눌러 주었다.
“더 단단히 붙었어.
우리도 그렇게 버티면 돼.”
창밖으로 새벽 첫 버스가 지나가며
반지하방을 낮게 흔들었다.
새벽 4시 10분,
또 다른 월급날을 견디기 위한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