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풍 하우스에 찾아온 단속차량, 그리고 뜻밖의 손길
비닐하우스를 가로지르는 바람이 달라졌다.
바닷내음 뒤에 알 수 없는 매캐함이 묻었다.
장 씨는 새벽 첫 순찰을 돌다가 짧게 소리쳤다.
“오늘 오후, 출입국 단속차가 읍내 내려온다더라.”
그 한 마디가 하우스에 잔잔히 번졌다.
딸기 모종을 심던 손길이 조금씩 빨라졌다.
누군가는 모자를 깊게 눌러 썼고,
누군가는 트럭 그늘에 작은 배낭을 미리 숨겼다.
마이라는 상자 속 토마토를 정리하다
허리춤의 휴대폰을 꽉 쥐었다.
반지하를 떠나올 때보다 달라진 건
지안의 학습센터 스케줄,
그리고 막 모으기 시작한 몇 장의 지폐.
그 외엔 여전히 서류도, 번호도 없다.
점심휴식이 시작되자마자
루시아가 달려왔다.
“성당 쪽은 괜찮대. 수녀님이 아이들 데리고 지하 숙소로 내려가신다더라.”
마이라는 살짝 숨을 돌렸다.
“우린 어떻게 해? 오늘 오후 작업 남았어.”
“반장이, 단속이 들어오면 온실 뒤쪽 해풍 언덕길로 빠지래.”
해가 기울 무렵,
비닐하우스 끝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흰 승합차가 들어왔다.
차 옆면에 정사각형 파란 로고가 붙어 있었고,
운전석 유리 뒤로는 낯선 얼굴이 두어 명 보였다.
장 씨는 재빨리 작업장 폭포 문을 닫았다.
“여기 사람은 죄다 주민이라 해.”
짧게 일렀지만,
발음이 서툰 일꾼들에게는 그 문장조차 버거웠다.
마이라의 손에 쥔 토마토가 살짝 으깨졌다.
꽃가루가 가라앉은 공기 속에서
장화 밑창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검은 신발 두 켤레가 비닐문을 젖히며 들어섰다.
“출입국입니다.
현장 안전점검 겸해서 서류 확인 좀 하겠습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땀 냄새보다 서류라는 단어가 더 짙게 비닐 안을 채웠다.
장 씨가 먼저 보호대 명단을 내밀었다.
그 틈을 타 루시아가 마이라의 팔을 살짝 잡아끌었다.
빛바랜 비닐 울타리 뒤편,
여름 전에 쓰다 버린 트레이 더미 사이에
좁은 틈이 있었다.
“숨는 게 다는 아니겠지만,
지금은 지안에게 돌아가는 게 먼저야.”
마이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낮게 몸을 숙이고
토마토 줄기 사이로 몸을 밀어 넣었다.
비닐 아래 작은 구멍으로 해풍이 스며들었다.
바다 냄새를 삼키며 두 사람은 숨을 죽였다.
바깥에서는 명단 숫자를 맞추는 낮은 목소리,
볼펜 끝이 종이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쪽 줄은 작업자 없습니까?”
검은 신발이 가까워지다 멈췄다.
장 씨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여긴 오늘 소독 작업이라 비워 놨습니다.”
정적이 잠시 흐른 뒤,
발걸음이 반대편으로 먼 듯했다.
한참이 지났을까.
장 씨의 목소리가 울렸다.
“다 갔어. 이제 나오라고.”
마이라는 비닐 틈을 젖혔다.
팔목엔 흙 얼룩이 묻었고,
루시아의 손바닥엔 토마토 잎 가루가 햇빛에 초록빛으로 비쳤다.
둘은 눈빛만으로 안도와 경각심을 나눴다.
저녁 해가 기울자,
성당 지하 복도에는 아이들 발소리가 울렸다.
지안은 마지막까지 스티커 이름표를 붙인 채
수녀 손을 잡고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마이라는 뛰어가 지안을 품에 껴안았다.
“늦어 미안해.”
지안은 엄마의 옷깃을 잡고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람이 많이 불었어.”
수녀는 두 엄마의 손에
작은 봉지를 쥐여 주었다.
싱싱한 상추와 성당 텃밭에서 딴 토마토 몇 알.
“내일도 무사히 오길 기도할게요.”
짧은 인사였지만,
그 말이 건네는 온기 덕에 어둠이 한 뼘 물러났다.
밤, 컨테이너 앞 바람은 여전히 거칠었다.
지안은 빨대 컵을 놓고 졸린 눈을 비비더니
스티커 이름표를 자기가 붙인 냉장고 문을 톡톡 두드렸다.
마이라와 루시아는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오늘, 우리 이름도 안 들켰어.”
마이라가 숨을 내쉬듯 말했다.
루시아는 봉투에서 일당 8만 5천 원을 빼내
지안 손에 한 장을 쥐여 주었다.
“병원비가 줄었어. 조금씩.”
지안은 지폐를 내려다보다
작은 크레용 자국이 묻은 손으로
엄마들의 손을 한꺼번에 잡았다.
그 손 위로 해풍이 또 한 번 지나갔다.
숫자로 기록되지 않는 이름,
바닷바람과 토마토 냄새,
그리고 무사히 끝난 하루의 숨결이
컨테이너 얇은 벽을 두드리며 오래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