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모은 한 주 백만 원, 그리고 달라진 오후 풍경
남해로 내려온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지만,
하우스 지붕을 스치는 바닷바람은 어느새 일상의 숨결이 되었다.
새벽 바람이 컨테이너 문을 흔들어 깨우면
루시아는 맞은편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이라도 거의 동시에 눈을 떴다.
출근 준비는 이제 순서가 정해졌다.
루시아가 문을 열어 습기를 빼내고
마이라는 가스버너에 냄비를 올렸다.
보글거리는 라면 국물에 잘게 자른 상추를 풀어 넣자
김이 입구를 가득 메웠다.
“이번 주도 백만 원이네.”
루시아가 식탁 위 작은 수첩에 숫자를 적었다.
일급 8만 5천 원이 닷새,
토요일 오전 반일 수당까지 합해
둘이 모으면 주간 백만 원.
마이라가 미소를 지었다.
“병원비 남은 거 갚았고, 월세도 밀린 거 없고.”
빚의 잔고가 0이 되는 날,
두 사람은 컨테이너 앞 바닷길에서 작은 종이컵으로 막걸리를 나눴다.
지안은 그 옆에서 파란 크레파스로 모래 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크레용 선이 해풍에 조금씩 지워져도
아이의 웃음은 더 선명해졌다.
한 주에 한 번씩 장 씨 트럭이 읍내 마트 앞에 세웠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가전 코너였다.
두 사람은 중고 매트리스 할인표를 오랫동안 들여다봤다.
“여기서 조금만 더 모으면 새 거 살 수 있대.”
“그냥 살까? 지안이 등판이 너무 딱딱하잖아.”
하지만 결국 그날은
작은 스탠드 하나와,
냉장고 바구니를 정리할 투명 박스 두 개만 계산대에 올렸다.
“욕심보다 오래 눌러앉는 게 더 중요해.”
서로에게 하는 말이자, 둘 다에게 하는 다짐이었다.
지안은 주 4회로 늘어난 성당 교실에 익숙해졌다.
새로 배운 노랑·초록 한글 카드를 꺼내
“지”는 지안의 ‘지’,
“안”은 ‘눈’이란 뜻이기도 하다는 걸
쪼그려 앉아 설명했다.
마이라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딘가 멍해진 눈빛으로 아이를 오래 바라보았다.
성 없는 이름을 품고 태어난 아이가
이제 스스로 글자를 짚어 가르쳐 준다는 사실이
묘하게 코끝을 시리게 했다.
수녀는 아이들 그림을 걸어 두는 게시판에
지안의 도화지를 높이 달아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록이 없어도, 그림은 남아요.”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지안 작품이 붙은 게시판을 휴대폰에 찍어
작은 화면을 오래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해가 긴 계절이라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도 바다는 여전히 밝았다.
지안이 컨테이너 앞 모래바닥에서 작은 버려진 조개껍데기를 모았다.
루시아가 낚싯줄 굵은 실에 조개를 꿰어
목걸이처럼 지안 목에 걸어주자
아이 얼굴이 바다빛처럼 환해졌다.
토요일 밤,
주간 품삯 봉투를 냉장고 위에 얹어 두고
두 사람은 냉장고 문에 붙은 스티커 이름표를 쳐다보았다.
두 달 전보다 모서리가 더 단단히 붙어 있었다.
마이라가 스티커 바로 곁에
작은 형광색 포스트잇을 하나 붙였다.
‘지안의 등록 이름을 위한 적금, 다음 달부터.’
루시아가 놀란 눈으로 웃었다.
“적금 통장 만들려면 여권 번호라도 있어야 하는데?”
“어차피 오늘은 적금을 못 만들어도,
우리가 매주 이름을 붙여 넣으면
그게 우리 통장이야.”
두 사람은 지안이 잠든 컨테이너 천장을 바라보았다.
해풍이 지붕을 쓰다듬고 지나가도
천장판은 예전보다 덜 흔들렸다.
침대 밑 플라스틱 상자 안에는
병원비가 아닌 ‘다음 달 보증금’이란 메모가 붙은 봉투가
조금씩 불어나고 있었다.
숫자로는 아직 완벽해질 수 없는 삶.
그러나 해풍은 매일 코끝을 스쳐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지안의 이름은 여전히 성이 없었지만,
새벽마다 두 사람을 깨우는 모닝콜처럼
오히려 더 분명히 세 사람을 불러냈다.
그리고 그 소리에 답하듯
바깥 어둠 끝에서 파도 비슷한 소리가 잔잔히 번졌다.
조금씩, 삶은 넓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