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2반 지안의 포근한 학교와 두 엄마의 가벼워진 어깨
봄비가 창틀에 토닥이던 이른 아침,
남해초 4-2 교실의 창문은 넓게 열려 있었다.
교실 천장마다 돌아가는 선풍기 아래,
칠판 왼쪽에 붙은 출석표가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가, 나, 다…
이름 순으로 쭉 이어지는 칸 중,
‘지안’ 두 글자는 27번 칸에 자리 잡고 있다.
아래로는 배식 당번·청소 당번 표가 가지런히 붙어 있었고
급식 식판 그림 옆엔 오늘 메뉴가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잡곡밥 · 닭갈비 · 시금치 된장국 · 김치전 · 딸기
“오늘 딸기 나온대!”
지안은 친구 준하와 손바닥을 마주쳤다.
도시락 가방 대신 가벼운 책가방만 메고 다니는 학교생활이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당연하고 편했다.
수업 시작 종이 울리고
담임 김 선생이 출석을 불렀다.
“스물일곱 번, 지안.”
창가 세 번째 자리에서 또렷한 목소리가 튀어올랐다.
“네!”
김 선생은 이름표를 내려다보다 미소 지었다.
“두 글자니까 칸이 남네. 예쁘게 꾸며 봐.”
지안은 볼펜으로 빈칸에 작은 파도 모양을 그려 넣었다.
점심시간.
반 아이들은 2층 복도로 줄을 서서 급식실로 향했다.
스테인리스 식판 위에 딸기 몇 알이 굴러다니자
아이들 눈이 반짝였다.
“우리 농장에서 난 것도 딸기야!”
지안이 자랑 삼아 말하자
친구들이 동시에 귀를 쫑긋 세웠다.
“바다 옆에도 딸기가 나?”
“해풍 맞으면 더 달아.”
지안이 짧게 설명하자
준하가 감탄했다.
“대박, 우리 반 딸기 전문가.”
급식실 한쪽에 붙은 ‘산지 표시판’에
<남해군 읍>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지안은 속으로 ‘장 할아버지 농장일까?’ 하고 혼자 웃었다.
방과 후,
지안은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체육부 아이들의 공 차는 걸 구경했다.
엄마들이 하우스 일을 마치려면 해가 기울 때까지 시간이 남는다.
그 사이 지안은 도서실에 들러 책을 빌리고,
자유 놀이 시간엔 바다와 만나는 골목까지 산책을 간다.
오늘은 도서실에서 『바다 물고기 사전』을 찾아냈다.
“해변에 나가면 이 고둥 껍데기 찾아야지.”
책 귀퉁이를 접으며 중얼거렸다.
해가 기울 즈음,
장 씨의 낡은 트럭이 학교 앞에 섰다.
운전석 창문이 내려가고,
농장주 특유의 까칠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안! 오늘 엄마들 바쁘다 해서 내가 태우러 왔어.”
뒷좌석에 올라타자
상자 속 완숙 토마토 냄새가 가득했다.
장 씨는 아이를 힐끗 보더니
조수석에 놓인 천 원짜리 봉투를 내밀었다.
“학교 생활 잘한다면서? 100점 받아오면 더 준다.”
지안은 두 손으로 봉투를 받아들고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트럭 창밖으로 바다가 반짝였다.
길가에 늘어선 하우스 지붕이 붉은 노을을 머금고 있었다.
컨테이너 숙소 앞,
루시아가 먼저 달려나와 아이를 맞았다.
“오늘 학교 어땠어?”
“딸기 맛있었어! 그리고 선생님이 그림일기 잘 썼다고 칭찬했어.”
지안이 신이 나서 얘기하자
마이라가 일손을 털고 돌아와 두 사람을 끌어안았다.
농장 한쪽,
새로 들여온 폼 매트리스가 비닐을 벗고 햇볕에 말라 있었다.
밤마다 삐걱대던 철제 침상 위에
내일부터는 폭신한 큰 이불이 깔릴 예정이다.
두 엄마가 한 주 백만 원씩 모은 덕분이다.
저녁 식탁엔
장 씨가 건네준 하우스 토마토와
성당 텃밭에서 딴 상추가 올랐다.
마이라는 가스버너에 된장국을 올리며 말했다.
“이제 월세 세 달 치를 미리 넣어도 조금 남을 것 같아.”
루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엔 지안 등록 이름 적금 통장, 진짜로 만들자.”
지안은 접시에 토마토를 올리고
작은 포크로 별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우리 집도 별처럼 반짝거려.”
그 말에 두 엄마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밤바다 바람이 창문을 두드렸다.
냉장고 위, ‘지안’ 스티커 옆에는
노란 메모지 하나가 새로 붙어 있었다.
학교 도서관 자원봉사
병원비 0원 유지
등록 적금 통장 알아보기
모서리가 단단히 눌린 메모지가
새 매트리스보다 더 폭신하게 마음을 감쌌다.
숫자로 기록되지 않았던 이름,
이제는 학교 급식 식판에서조차 일상이 되었다.
해풍은 밤에도 멈추지 않았다.
컨테이너 얇은 벽을 타고 들어온 바람이
세 사람 침상 위를 살짝 스쳤다.
흔들려도, 떨어지지 않는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