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침으로 한참을 고생하셨던 분은 이 병을 앓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 입냄새가 심하신 분이나 목소리가 쉬어 있는 분도 알고 보면 이 병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 지나친 운동을 하다가 이 병을 얻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중량운동을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요즘엔 러닝 애호가들이 환자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라. 아침식사를 거르는 분들이 잘 걸리고 잘 낫지 않습니다.
이 병은 무엇일까요?
[골치아픈 난치병, 역류성 식도염]
1. 식도염, 누구나 한번쯤은 겪어 보셨을. 매우 흔한 병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제가 보는 환자 중에 가장 난치병에 속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진료해드리기' 만만치 않은 병이기도 합니다.
2. '온갖 병원들을 다 다녀봤어요" "도무지 안 나아요", "약 좀 먹을때는 괜찮아지는데 끊으면 금새 도져서 죽겠어요" "내시경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데요" '좋다는 양배추즙도 매일 마셔요!" 라며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짓던 분들 앞에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엄두가 잘 나지 않았습니다.
3. (일단) 식도염은 최소한 두달 이상 치료받는다고 생각해야 하는 병입니다.
병 자체의 매커니즘이 그렇습니다. 위산의 pH는 1.5~3.5 사이로, 우리가 흔히 들어본 염산이나 황산에 못지않을 강산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몸은 이런 무시무시한 화학물을 배 안에 넣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딱딱하고, 질긴 음식을 흐물흐물하게 만들어 몸 안으로 집어넣으려면 단순히 강한 치아로만 되지는 않겠지요?
4. 그래서 사실 역류성 식도염은 '화상치료'와 닮았습니다. 실제로 화학적 화상을 입었기도 합니다. 무서운 상상이지만 염산이나 황산이 피부에 닿였을때 무슨 치료가 있겠습니까? 자극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되도록 노출되지 않도록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여야 하는 식으로 살이 차 오를때까지 곰곰히 기다려 주는게 치료입니다.
식도염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벽이야 강산인 위산을 잘 막을 수 있지만 식도는 그런게 없잖아요.
식도가 '위산테러' 에서 회복될 수 있도록 '오랜 기간' 잘 요양시켜줘야 합니다. (심지어 식도엔 반창고를 붙일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한번 생기면 최소 2개월은 걸리겠다고 생각하고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일주일 약 좀 먹다가 나아지니 똑같이 지내고, 돌팔이라며 다른 병원 또 찾아 가서 몇일 다른 약 먹다가 또 똑같이 지내고 하니, 난치병일 수 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5. 그렇다면 식도염에 걸렸을 때, 혹은 예방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6. 의외로 사람들이 좋지 않다고 하는 음식들을 다 끊어도 나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맵거나 짠 자극적인 음식, 초콜릿 등이 역류성 식도염에 해롭다고 알려져 있지만, 모두가 똑같이 반응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따라서 무작정 나쁘다고 알려진 음식만 피하기보다, 증상을 유발하는 '나만의' 특정 음식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식사일기를 써보세요!)
7. 둘째로, 꽉 끼는 옷은 피하시기 바랍니다. 보정속옷이나 스키니 진처럼 복부를 압박하는 옷은 최악입니다. 갑자기 살이 쪘음에도, 예전에 입던 바지가 아까워 억지로 입는 것 정말 좋지 않습니다. 옷태가 나지 않더라도 최소한 1주만이라도 원피스를 입거나, 트레이닝 복 같은 헐렁한 바지를 입도록 해보세요.
8. 밤에 누울 때 상체를 10~20cm 정도 올린 상태로 주무시는 것이 정말 효과가 좋습니다.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위에 있는 위산들이 식도로 올라오지 않도록 해주세요.
9.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고 규칙적으로 드셔야 합니다. 위에 찰랑거리는 위산의 수위를 음식물과 함께 소장쪽으로 내려 보내시는 걸 게을리 하지 마세요.
10. 운동을 줄여 보세요. 나시티를 입고 탱글탱글한 멋진 몸을 자랑하며 "식도염이 아무리 해도 안 낫는다" 고 토로하시는 분들께, "복부에 그렇게 힘을 주는데 어찌 위산이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지 않을수가 있겠습니까."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참고로 치질도 식도염과 똑같은 원리로, 정말 운동만 줄이셔도 크게 좋아지기도 합니다. 달리기는 복압이 높아지지 않잖아요! 라고요? 몸 안에 넣어둔 위산을 담은 물통, 그렇게 오랫동안 뛰어 다니는데 어찌 넘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11. 마지막으로, 흡연과 음주는 꼭 피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네, 사람들이 좋지 않다고 하는 음식들과 '나는 상관없다'는 분 (식사일기 참고) 도 담배와 술은 줄이세요.
12. 식도염의 진단에 있어 내시경 검사는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어떨 땐, 증상은 이토록 심한데 내시경 검사에서는 아주 깨끗하다는 결과가 나와 당황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검사가 잘못 된 것이 아니예요. 역류량이나 증상의 빈도가 내시경 소견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도 내시경 검사는 해보시는 게 좋습니다. 더구나 피가 섞인 대변을 보거나, 심한 빈혈, 체중 감소와 같은 증상이 동반된다면 반드시 내시경 검사를 받아보셔야 합니다.
13. 인터넷에 식도염을 검색해보면 온갖 해괴망측한 치료를 선전하는 곳들이 많습니다만, 실은 약은 어디나 나 똑같습니다. 요즘 나온 약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다 똑같습니다. 똑같아서 실망이시라고요? 아닙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PPI야 말로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약 3위 안에 든다고 생각합니다.
약을 충분한 기간동안 잘 드시고, 주의사항을 한번 잘 지켜보세요.
14. 저는 식도염이야 말로 의사가 낫게 하는 병이 아니고 본인이 결국 낫는 방법을 체득하는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15. 그래도 뾰족한 수를 기대하셨다면 괄약근 기능 개선을 위한 약도 있고 항불안제나 우울증약이 잘 듣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