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ueles Aug 14. 2016

여행자와 여행가

“여행의 욕망은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호기심이다. 그것은 열정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여행 작가 폴 서루(Paul Theroux)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문장입니다. 그의 말처럼, 독자 여러분은 여행을 본능이라고 여기나요?
욕망과 열정은 본능적입니다. 욕망과 열정이 발현된 대상이 여행이든, 이성이든, 돈이든, 평화든 혹은 그 무엇이든지 말이죠. 호기심도 본능입니다. 그리고 그 본능을 채워줄 수 있는 건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질 경험뿐이죠. 여행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 한 결코 사라지지 않을 욕망과 열정. 한두 번 다녀온 여행으로는 만족시킬 수 없는 것. 매일매일 여행을 꿈꾸고 떠나고 싶어 하는 본능. 그렇기에 여행 본능을 유전자 정보처럼 지니고 있는 이는 여행 없는 사람을, 여행 없는 세상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여행자’라고 칭하는 일은 여행을 본능이라고 단정하려는 언표입니다. 그는 보편의 측면에서 ‘여행하는 사람’입니다. 여행은 먹고 자는 일처럼 생사의 문제가 아니기에, 여행자가 되는 것은 본능을 채우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우선순위에 따라 뒤로 미뤄야 할 때도 있겠죠. 또 여행이란 매우 사소할 때도 있으니, 욕망의 수준을 낮추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하루 동안의 짧은 떠남이나 몇십 분의 산책처럼 말입니다. 한편 ‘여행가’라는 단어는 여행을 일종의 직업으로 귀속시킵니다. 이들은 화가, 소설가, 사진가 같은 ‘가’들처럼 여행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알려야 합니다. 여행 작가, 여행 저널리스트, 여행 사진가, 여행 가이드 등.
여행가의 노력은 켜켜이 쌓여 여행자의 여행 기제가 됩니다. 여행가의 여행에서 여행자의 여행으로. 그 과정이 반복되어 산업을 이루고, 현대사회의 여행은 이런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간혹 여행가와 여행자의 순환 구조가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예기치 못한 문제를 일으키곤 하죠. 특정 지역에 지나친 관심이 쏠리면, 그곳이 피폐해질 수 있지요. 영화 <스카이 폴> 때문에 스코틀랜드의 하일랜즈(Highlands) 지역이 쓰레기로 골치를 썩은 것처럼, <꽃보다 청춘> 때문에 아이슬란드를 걱정하는 이도 있습니다. 애초에 여행자와 여행가는 이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행의 본능을 채우는 것은 단 하나의 여행지가 아니라 여행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까요. 단지 여행이 날쌘 산업이 되었기에 발생하는 부작용이죠. 그래서 폴 서루는 또 이렇게도 썼나 봅니다.

“관광객은 자신이 어디를 다녀왔는지 모르고, 여행자는 자신이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모른다.”


-2016년 2월

작가의 이전글 누가 먼저 여행이라 말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