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만나기 위해 애쓴 지 7개월이 흘렀다. 한국과 태국, 두 나라 사이를 오가며 나름의 '장거리 연애 스킬'도 마스터했다. 하루 종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도 모자라, 각자 다른 시간대에서 '같이' 밥 먹는 법까지 터득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영상통화는 말 그대로 필수 코스였다. 통화할 때면 서로 웃다가도 "보고 싶어 죽겠어" 라며 한숨을 쉬고, 다시 깔깔대며 웃다가 또 갑자기 울상이 되는 일이 다반사. 영상통화마저도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100% 해소해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우린 그걸로 어떻게든 버텨왔다. 문제는 항상 공항에서! 매번 누군가가 비행기 표를 끊을 때마다 "다음엔 내가 갈게!"라며 작전 회의가 시작되었고, 공항에서 다시 헤어질 때는 매번 똑같이 마음이 아파졌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이제 공항에선 그만 울상 짓자'라고 다짐하지만... 그게 쉬운가! 현실은 헤어질 때마다 꼭 작은 드라마 한 편을 찍고 온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한국으로 찾아온 그가 말했다.
“나 이제 당신과 떨어져 살기 싫어. 태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때마다 너무 힘들어.”
“나도.. 벌써 7개월 넘게 왔다 갔다 했으니 지칠 때도 되었지.. 나도 당신 보러 자주 갈 수 있으면 좋은데.. 고맙고 미안하네..”라고 내가 대답했다.
“아니야.. 당신 사정 아니까 괜찮은데… 우리 같이 사는 건 어때?”라고 그가 물었다..
“응? 갑자기? 어떻게?”라고 내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싫어? 좋아?”라고 그가 되물었다.
“난 당연히 좋지!”라고 내가 대답했다.
“좋으면 됐어. 일단 기다려봐.”라고 그가 말했다.
그 후, 남자친구는 결심한 듯 자신의 회사 회장님을 찾아가 상담을 요청했다.
진지한 얼굴로 남자친구는 말했다.
"회장님, 저 한국에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회장님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네? 한국으로 간다고요?"
남자친구는 긴장된 순간에도 차분하게 덧붙였다.
"네, 회장님. 하지만 한국에서도 원격 근무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전 세계에 분포된 팀을 관리하는 제 역할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거든요. 한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실 수 있을까요?"
회장님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이내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셨다.
"그래요, 인생의 동반자를 만난 건 큰 축복이지. 그렇게 하세요."
그러더니 뜻밖의 말을 덧붙이셨다.
"그리고 한국의 높은 물가를 고려해서 월급도 인상해줘야 할 것 같네요."
그 말을 들은 남자친구는 속으로 '이게 진짜인가?' 싶었지만, 표정은 차분하게 유지하려 애썼다고 했다.
다행히 회장님은 가족의 가치를 깊이 이해하시는 분이셨고, 인생에서 좋은 동반자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었기에 이 제안에 동의를 해 주신 것 같았다. 그렇게 남자친구는 자유로운 디지털 노매드로 거듭나며, 파격적인 연봉 인상까지 받게 되었다. 우리는 예상치도 못한 전개에 서로 '이게 무슨 일이야?' 하며 깜짝 놀랐고 감격했다. 그때부터 하늘이 우리 편인 것만 같았다. 회장님의 너그러움에 감사하면서도, 그 결정을 이끌어낸 남자친구의 용기에 더 고마웠다.
그의 결단력 덕분에 이제 그는 나와 함께 한국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가 따로 집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장거리 연애를 해 본 커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한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을 말이다. 내가 살고 있던 곳은 6평짜리 작은 오피스텔이었는데, 두 사람이 살기엔 정말 비좁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함께할 수 있음에 행복했다. 저녁에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우리 이 작은 집에서 얼마나 오래 지낼 수 있을까?" 하며 웃었지만, 사실 그때만큼 행복했던 순간은 없었다. 오피스텔 계약이 끝날 때까지는 거기서 같이 살기로 결정하고, 그렇게 우리의 동거생활이 시작되었다.
남자친구와 동거를 고민할 때, 남의 시선은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는 '쿨함'은 짧은 외국 생활이 준 특별 보너스였다. 외국에서 지내다 보면 '누가 나를 어떻게 보나' 하는 생각보다는 '내가 행복하냐'가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 마음가짐은 변함없었다. 친구들이 '아니, 남자친구랑 동거하면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도 모르는데 괜찮아?'라고 물을 때마다 나는 단호하게 '응, 괜찮아! 내가 행복한데 뭐!'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외는 있었다. 바로 내 보수적인 아버지. 남자친구가 처음부터 비혼주의자라고 선언했기 때문에, 결혼을 전제로 한 동거도 아니었고,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걱정하실 게 뻔했다. 그래서 아버지께는 동거 사실을 비밀로 했다.
그와 한 공간에 살게 되면서 나도 ‘타협’이란 것을 해야 했다. 좁은 집이었기 때문에 내 짐을 많이 줄여야 했고, 그가 잘 때 빛과 소리에 예민해서 더 신경 써서 행동했다. 동거할 때 가장 불편했던 점은 생리현상을 참는 일이었다. 방귀가 나와도 집에서조차 소리 내어 뀔 수 없었고, 화장실에서도 소리가 들릴까 봐 노심초사하며 볼 일을 봐야 했다. 배가 아픈 날에는 그 불편함이 더했다.^^ 남자친구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마다 괜히 헛기침을 해댔다. 마치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상상도 하지 마!'라는 신호라도 보내는 것처럼.. 그런데 그 헛기침이 오히려 더 주목을 끈다는 게 함정이었다. 그래서 그가 민망하지 않도록 나는 음악을 틀곤했다.. 끝내 우리는 서로 화장실 갈 때마다 '화장실 음악 콘서트'를 열자고 합의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나는 음식을 살 때도 그의 취향을 더 고려해서 사게 되었고, 집안 정리정돈을 더 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밖에서 놀거나 집으로 초대할 때는 항상 그의 의중을 물어봤고, 그가 집에서 일을 할 때는 시끄럽게 하지 않도록, 산만하지 않도록 주의했다.
반대로 그도 항상 나를 배려했다. 야근을 많이 하는 나를 위해 주말에 요리도 많이 해주었고, 내 기분을 잘 맞춰 주었으며, 집안일도 자신이 더 하려고 노력했다. 내 친구들과 친해지려고도 애썼다. 우리 오피스텔로 친구들이 놀러 와서 술이라도 마시게 되면 자신은 침대에 앉아 일을 하면서도 내 친구들의 잔이 비면 채워주는 센스를 발휘하곤 했다. 이런 스위트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내가 고쳤으면 하는 습관들을 말했을 때, 그가 납득하면 바로 고치곤 했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그렇게 해 준 그에게 놀랐고 정말 고마웠다. 내가 주말에 귀찮아 씻지 않고 있어도, 그는 내 살냄새가 더 좋다고 말하며 씻지 말라고 해주는 최고의 동거인이었다. 동거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배려하는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우리 둘 다 삶에 대한 가치관과 비전은 비슷했지만, 다른 점도 참 많았다. 그중에서도 식성은 극과 극이었다. 그는 몇몇의 한국음식을 좋아했지만 서양 음식을 주로 좋아했고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완전 한국 토종 할머니 입맛이었다. 같은 나라 사람끼리도 식성 맞추기 어려운데, 국제 커플은 오죽할까.. 그렇다고 그는 연애할 때부터 나에게 다 맞춰주진 않았다.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이 먹어보고 자신의 입에 맞지 않으면 그다음부터는 거의 먹지 않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같이 사는 동거인과 식성이 안 맞으면 아주 힘들 수 있다. 아침 먹으면 점심 뭐 먹을지 생각하고 점심 먹으면 저녁 뭐 먹을지 생각하는 우리는 먹으려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식성을 맞추다 보면 한 사람이 희생해야 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속상하고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른 우리는 어떻게 동거생활을 무사히 해낼 수 있었을까?
비결은 간단했다. 남자친구는 느끼한 것을 잘 못 먹는 나를 위해 요리할 때는 꼭 페퍼론치노나 후춧가루를 이용해 조금 매콤하게 요리를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식성에 억지로 맞추는 대신,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배달시켜 먹었다. '같이 먹기만 하면 장땡!'이라는 철학 아래, 외식을 할 때도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다음번엔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번갈아 가며 즐겼다. 이렇게 하니 음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서운해할 일도 없었다. 오히려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는 이 자유로운 방식이 우리를 서로에게 더 끌리게 했다. 우리는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들이었다.
'미래는 한 치 앞도 모르는 일이지만 평생을 같이 할 파트너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나는 동거가 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거를 하다 보면 정말 볼 꼴 못 볼꼴을 다 볼 수 있다. ^^ 당연히 좋은 점도 많이 발견하게 되지만, 나쁜 점도 종종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동거인이 변기를 깨끗이 사용하는지, 이를 꼬박꼬박 잘 닦는지, 잘 어지럽히는 성격인지 아닌지, 그리고 집안일 분담에 적극적인지 아닌지 등 일상적인 습관들을 보며 상대방을 파악할 수 있다. 의견 차이로 갈등이 생길 경우, 이를 어떻게 조율해 나갈 수 있을지 알아볼 수도 있다. 또한, 집세, 공과금, 생활비 등을 분담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것들에 대한 물음도 자연스럽게 묻게 되고 그 궁금증을 해소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커플들이 동거한다고 다 행복하게 잘 사는 건 아니다. 동거하면서 서로에게 더 끌리고 사이가 깊어지면, 그건 결혼해도 좋다는 신호일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동거하다가 점점 서로 꼴 보기 싫어지고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다면? 결혼 후엔 아마 더 멀어질 것이다. ‘결혼하면 좀 바뀌겠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큰 착각이다. 결혼하는 순간,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진짜 모습(true color)을 더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상대가 다 받아주길 바라는 게 인간의 심리다. 결혼식장에서 ‘이제부터 내가 좀 더 나답게 살아볼까?’ 하는 결심을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연애할 때 나에게 모든 걸 맞춰주던 사람이 결혼 후에 갑자기 달라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