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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나라 Oct 26. 2024

5)미션! 중간에서 만나요!: 홍콩 & 대만편

남자친구와의 꿈같던 따오섬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마치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와 함께한 시간은 마법처럼 아름다웠지만, 그가 없는 현실은 너무나도 황량했다. 그는 여전히 2주마다 한국을 찾아와 줬지만, 그 시간 또한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2주에 한 번 만나는 것도 우리에겐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홍콩 편>

나는 해외영업 일을 하면서 에이전시가 홍콩에 있어 그리로 출장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었는데, 홍콩은 태국과 한국 사이에 위치해 있어서 남자친구와의 만남의 기회를 주는 고마운 중간지대였다. 출장 일정이 항상 바빴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만 볼 수 있는 정도였는데 남자친구는 "잠깐만이라도 좋으니 꼭 봐야겠다"라고 하며 홍콩으로 날아와 주었다. 그가 휴가를 내고 홍콩까지 오겠다고 할 때마다, 마치 행운의 복권에 당첨된 듯 감동과 행복이 폭발했다. 그렇게 우리는 바쁜 일정을 쪼개어 홍콩에서의 짧지만 소중한 만남을 이어갔다.


홍콩에서 만난 그는 여전히 스위트했다. 출장이 주말과 이어질 때면 우리는 조금 더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고, 늦잠 자는 나를 위해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고 마켓에서 음식을 사서 브런치를 준비해 주는 그의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여기 내가 만든 샌드위치 한 입만 먹어봐!"라며 음식을 건네주던 그의 따뜻한 배려 덕분에, 출장도 그렇게 피곤하고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 후,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실외 에스컬레이터인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소호 지역을 누비며 홍콩의 독특한 카페와 갤러리, 상점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구경하다가 지치면 펍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 한 잔과 함께 홍콩의 비범한 분위기를 즐겼다. 그렇게 여기저기 홍콩을 누비며 걸어 다녔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거리였지만, 그때만큼은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가로수 사이로 스며드는 따뜻한 햇빛, 사람들 사이로 들리는 활기찬 소음, 그와 나란히 걷는 발걸음. 마치 세상이 우리 둘만을 위해 잠시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 말 없이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채워졌고, 그 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평범한 시간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홍콩에 갈 때마다 우리는 꼭 베이퐁통식 마늘 게 볶음을 파는 식당에 들렀다. 식당의 외관은 겉보기엔 별거 없어 보였지만, 그곳에서의 게맛은 정말 꿈속의 맛이었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마늘과 고추가 어우러진 그 맛은 완전히 중독적이었다. 그 게 볶음의 맛을 한 번 보면 우리 입맛은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올라갔다. 게살이 입안에서 부드럽게 풀리며, 마늘과 향신료가 마치 미세한 불꽃놀이처럼 터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게요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남자친구도 그 게 볶음은 정말 맛있다며 엄지척을 했으니 말이다.  식사 후,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음 홍콩 여행 때도 꼭 여기 와야겠다!’로 이어지곤 했다. 이 맛은 우리에게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여행의 필수 코스이자 홍콩의 진정한 매력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러다 한 번은 새로운 맥주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해 한 젊은 여자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남자친구는 친절하게 웃으며 그녀의 설명을 듣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럼 한 병 시켜볼게요!"라고 말해버렸다. 나는 속으로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라는 생각이 들며, 순간 뜨거운 열기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 여자는 싱글벙글 웃으며 사라졌고, 나는 남자친구를 바라보며 묵직하게 한마디 던졌다.

"뭐야? 나랑 상의도 안 하고?"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되물었다. "응? 뭐를?"

"그 여자가 시키란다고 홀랑 맥주를 시켜?"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음성에서 새어 나오는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고개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생각도 못했어. 미안."

그러고는 어색한 웃음을 짓더니 내 눈치를 살피며 "다음엔 꼭 너한테 먼저 물어볼게"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의 그 어이없는 순진함에 한숨을 쉬며, 맥주를 홀짝였다. 맥주는 참 시원했지만, 그 순간의 남자친구는 참 답답했다. 사실, 나와 상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보다는 그 여자 말을 바로 들은 것에 더 열이 뻗쳤는지도 모른다. 평소 나는 "난 질투 같은 거 안 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곤 했는데, 그 순간에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뭐랄까, 마치 내가 그 여자 앞에서 존재감이 증발한 듯한 기분이랄까? 그 순간 나는 인정했다. 아무리 쿨해 보이고 싶어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나도 질투심이라는 게 차오를 수밖에 없다는 걸. 내가 질투심 없는 척했던 건 다 허세였나 보다...


한 번은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 홍콩의 야경을 감상하러 갔다. 멋진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하여 기대가 컸는데 그 기대에 보답하듯 그날의 야경은 정말 황홀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본 야경 중에서 최고였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빛이 강렬하게 반짝이는 홍콩의 야경은 마치 수천 개의 별들이 지구 위에 직접 내려온 듯한 느낌을 줬고, 그 경이로운 장관은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남았다. 이렇게 로맨틱한 야경이 또 있을까? 카메라에 담으려 해도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도 그때의 감동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 밖에도 홍콩의 전통 시장에서 수많은 다양한 길거리 음식을 맛보며 미각 여행을 즐겼고, 하버시티의 대형 쇼핑몰에서 쇼핑의 재미를 더했다. 이렇게 우리는 홍콩에서의 매 순간을 아주 특별하게 보냈다. 홍콩에서의 만남은 어찌 보면 잠깐의 낙원 같았고, 매번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를 느꼈다. 남자친구의 이런 헌신과 배려 덕분에, 매일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우리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졌다. 



<대만 편>

한 번은 또 한국과 태국 중간에 위치한 대만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대만도 홍콩처럼 두 나라의 중간 지점이자 색다른 매력을 지닌 나라여서 우리는 설렘 가득한 주말 일정을 준비했다. 여행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눈이 반짝이는 남자친구는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행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어디 갈까, 뭐 먹을까?’라며 나보다 더 설레는 모습이었다. 


대만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연코 음식이었다. 정말로 ‘식도락 여행’ 그 자체였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대충 풀고, 우리는 타이베이 시내로 뛰쳐나갔다. 용산사와 중정기념당 같은 필수 관광지를 둘러보며 걷는데, 정말 사람이 많아서 남자친구도 나도 깜짝 놀랐다. 어딜 가도 꼭 명동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 점심으로 맛있는 우동을 간단히 먹고 맥주로 입가심을 한 후, 그때부터는 거의 하이킹 수준으로 발이 닳도록 돌아다녀야 했다. 남자친구는 처음엔 ‘여긴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라며 어리둥절해했지만, 곧 대만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에 푹 빠져서 나보다 더 신이 나 보였다. 한국과 같은 아시아라고 해도, 대만은 곳곳에 이국적인 풍경과 독특한 매력이 넘쳐서 눈이 쉴 틈이 없었다. 특히 타이베이의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은 사찰들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사찰들의 화려한 장식과 정교한 조각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고대의 예술작품을 마주하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수없이 달린 붉은 전등이 묘한 평온함을 자아냈고, 지붕 위를 장식한 용 모양의 조각과 다채로운 색채들은 사진으로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경이로웠다. 그 분위기에 이끌려 우리도 한 사찰 안에서 조용히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가족들의 안녕은 물론, 이 소중한 순간들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그리고 우리가 함께하는 모든 여정이 안전하고 행복으로 가득 차길 간절히 기도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서로의 손을 꼭 잡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서로의 진심을 느꼈다.





어느새 해가 져 어둑어둑해졌고, 우리는 드디어 대망의 하이라이트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은 바로바로~~~~ 대만의 대표 야시장인 스린야시장! 야시장에 도착하자마자 내 눈은 쉴 새 없이 돌아갔고, 다양한 길거리 음식들을 보고 나는 진지하게 "나 하루 종일 여기 있을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그도 이런 나의 식욕에 이제 익숙해지는 듯했다. 가장 눈에 띈 건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파이, 즉 대만식 거대 닭튀김이었다. 역시나, 치킨은 세계 어디서나 이길 자가 없는 듯했다. 바삭한 튀김옷 아래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닭고기의 맛은 익숙하면서도 뭔가 특별했다. 남자친구도 치킨의 매력에 홀딱 빠져 계속 먹어댔다. 하지만 해산물에 관해서는 아직 초짜인 그는 오징어 구이와 게튀김을 '코딱지'만큼만 맛보고 도망갔다. 대신 치즈 감자는 신나게 먹었는데,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지!'라며 만족스러워했다. 독일 사람들은 감자를 주식으로 먹는다더니, 남자친구는 그걸 몸소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붙인 별명은 ‘감자돌이’! 정말 감자 요리라면 가리지 않고 다 좋아했다. 삶은 감자, 튀긴 감자, 으깬 감자, 감자 샐러드… 감자가 들어간 음식만 있으면 그는 행복했다. 사실상 어딜 가든 감자만 쥐어주면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 기세였다! 


배가 부르니 이제 슬슬 소화도 시킬 겸, (당연히 이따가 또 먹어야 하니까) 우리는 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야시장에서 눈에 띈 건 비비탄총으로 풍선 터뜨리기! 남자친구는 “이건 완전 쉬워, 내가 다 터트려줄게”라며 자신만만하게 총을 집어 들어 몇 발을 쐈지만 풍선은 꿈쩍도 안 했다. 당황한 그는 이내 총을 보고, “이거 불량 아니야? 총이 잘못됐네!”라며 도구 탓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고, 결국 풍선 몇 개를 더 터뜨린 내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나는 승자의 미소를 띠며 남자친구를 바라봤고, 그는 당황하며 “다른 게임하러 가자!”라며 나를 끌고 갔다. 다음 도전은 새우 잡기 게임! “이건 내가 이길 자신 있어! 새우는 내가 다 잡는다!”며 자신 있게 외친 남자친구는 낚싯대를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새우들을 노렸지만, 그의 바늘은 허공을 헤매기만 했다. 반면, 내가 능숙하게 새우를 먼저 낚아 올리자 남자친구는 자기도 모르게 주인에게 “이거 왜 안 돼요?”라고 탓하듯이 물었다. 주인은 웃음만 참았고, 남자친구는 끝까지 기세를 올리며 몇 번을 더 도전했지만, 결국 잡은 새우는 딱 한 마리. 얼굴이 살짝 빨개진 그는 "당신이 또 이겼어! 축하해!" 라며 떨떠름하게 축하를 전했다. 나는 이 국제전쟁에서 승리했고 내가 잡은 새우들이 전리품처럼 구이가 되어 내 입으로 들어왔다. (새우들아 미안...) 남자친구는 "어차피 난 새우 별로 안 좋아해!"라며 자신을 위로했고, 나는 야시장의 소음 속에서 또 한 번 큰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내가 주로 더 즐거웠던 야시장에서의 경험을 마치고 대만의 랜드마크 타이베이 101에서 시내 야경을 보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 야경은 꼭 봐야 해!"라고 큰소리쳤건만... 줄이 이렇게나 길 줄이야! 우린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둘 다 많이 지쳐있었고 기다리는 걸 질색하는 스타일이라 5분도 못 버티고 결국 타워를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만족하기로 했다. '그래도 타워랑 찍은 사진이 있는 게 중요한 거지!'라고 위안 삼으며 타이베이 101을 등지고 셀카를 백만 장 찍어댔다. 높은 타워 때문에 셀카를 밑에서 위로 찍어야 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타워는 거의 안보이고, 우리 얼굴만 화면을 꽉 채우며 커다랗게 둥둥 떠 있었다. 다행히 서로 찍어준 사진들이 있어서 그나마 제대로 된 타워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물론, 그 사진들도 약간 삐뚤빼뚤하고 발끝이 잘리긴 했지만, 뭐 어때! 우리의 여행은 그 자체로 추억이니까.


사진 찍느라 에너지를 소모한 우리는 야시장에서의 음식이 간식에 불과했던 듯이, 본격적인 만찬을 위해 테판야끼를 먹으러 갔다. 그곳에서 우리가 주문한 스테이크와 여러 야채들은 철판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졌고 셰프는 화려한 불꽃쇼를 선보였다. 셰프가 '이렇게 먹어야 맛있어요!' 하며 정통 테판야끼의 묘미를 알려주었다. 테판야끼의 뜨거운 불길과 풍미 가득한 소스와 고기의 조화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진 찍으며 소모한 에너지를 만회하듯, 입안 가득 퍼지는 맛에 흠뻑 취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둘째 날 아침,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려고 했는데 다리에 알이 배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전날 너무 많이 걸었던 탓인 것 같았다. 마치 게으른 굼벵이처럼 천천히 준비를 했지만 오늘의 일정이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아침 겸 점심으로 사천요리 맛집을 찾기로 했는데, 검색엔진에서 발견한 그곳이 큰 기대를 안겨줬다. 남자친구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지만, 나를 믿고 따라오기로 했다. 사천요리를 한 입 먹어본 남자친구의 표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처음엔 의심 가득한 눈빛이었는데, 한 입 먹어보자마자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이게 뭐야, 진짜 맛있네!"라며 반해버렸다. 짜고 풍미 가득한 이 음식은 그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 분명했다. 특히 튀긴 닭고기의 매운맛과 향신료의 조화는 마치 미각의 롤러코스터를 탄 듯했다. 입안의 열기가 식으면서 느껴지는 깊은 풍미는 정말 중독적이었다. 남자친구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맥주를 계속 들이켰고, "진짜 매운데 진짜 맛있다!"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우리는 사천요리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매운맛의 고통과 즐거움을 뒤로한 채,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기이한 자연현상을 탐방하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는 타이베이 근처 예류 지질공원으로 떠났다. 이곳은 타이베이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져 있어,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자연의 신비를 느끼기에 제격이었다. 투어를 위해 우리는 기사님이 있는 차를 빌렸고, (술도 여행의 일부로 생각하여) 안전하게 즐기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여기, 진짜 화성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독특한 지질 구조물에 감탄했다. 바람과 파도에 의해 침식된 기묘한 바위들이 마치 외계에서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여왕머리 바위', '얼룩말 바위', '진주 바위' 등 다양한 기괴한 형상의 바위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공원 전체가 자연 속 조각 미술관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바위들이 어찌나 독특한지, 순간순간 '이게 어떻게 자연에서 만들어졌지?'라고 감탄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공원에서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은 정말 흥미로웠고,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사진으로 꼭 이 순간들을 간직하고 싶어 우리는 아름다운 해안선과 특이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셔터를 눌렀고, 바람과 파도의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는 즐거움도 만끽했다.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로운 세상에서, 마치 탐험가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하루를 보내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저녁 무렵, 우리는 '여긴 꼭 가야 해!'라는 말을 수십 번 들었던 지우펀을 향해 다시 차를 탔다. 약 1시간 정도 달리던 차는 드디어 한 고산 마을에 들어섰는데, 지우펀에 가까워질수록 도로는 점점 꼬불꼬불해지고, 우리가 마치 영화 속 풍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도착한 지우펀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고풍스럽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우리를 맞이했다. 골목길에 들어서자마자 내 배에서 또 눈치 있게 꼬르륵 소리가 났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향한 곳은 대만의 명물 소고기 국숫집! 국수 한 입을 먹자마자, 마치 여행의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육수는 짭조름하면서도 깊었고, 소고기는 입에서 살살 녹았으며, 그 모든 것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남자친구도 감동하며 손수 만든 면이 ‘신의 한 수’라고 극찬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맛있는 국수를 먹고 골목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코를 찌르는 쾌쾌한 냄새가 훅 들어왔다. '이게 뭐지?' 하고 두리번거려 보니, 바로 그 유명한 취두부였다! 비위가 약한 우리는 냄새만 맡고 급히 지나가려 했지, 맛보는 건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그때 먹어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조금 남았다. 여행에서 놓친 경험들이 아쉽긴 해도, 우리는 다음을 기약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골목길 끝쪽에 위치한 티하우스를 찾았다. 이 티하우스는 영화 '센과 치히로의 모험'의 배경이 되는 곳이었다. 티하우스에서의 우롱티 경험은 또 다른 차원의 감격스러움을 이끌어냈다. 티하우스의 분위기는 정말 한 편의 애니메이션 속 장면처럼 비현실적이었다. 몇 번씩 도기를 옮겨가며 차를 우려내고 마시는 과정이 신기했고 그 우롱티의 향이 공기 중에 퍼지며 마음까지 편안하게 해 주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온 평화와 힐링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남자친구는 원래 차를 그리 즐기지 않지만 이렇게 맛과 향이 부드러운 차는 처음이라며 이런 차라면 매일 마실 수 있겠다고 했다. 직원은 차를 우려내는 물의 온도가 중요하다며 설명해 주었고 이곳에서의 우롱티는 마치 시간의 흐름을 잠시 멈추게 하는 마법 같은 음료였다. 


그날 지우펀에서 바라본 안개가 짙게 깔린 야경은 마치 꿈속에 있는 듯한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도시의 불빛들이 안개에 감싸여 신비롭게 반짝이는 모습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그날의 진짜 서프라이즈는 우리의 기사님이 준비하신 깜짝 폭죽이었다. 여행 내내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던 기사님이 특별히 우리를 위해 스틱형 폭죽을 준비해 주셨고 전문 포토그래퍼처럼 여러 포즈를 요구하시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주셨다. 이것은 우리의 하루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고 정말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세 번째 날에는 조금 천천히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여행의 피로가 느껴졌고, 그래서 이날은 조금 여유를 부리기로 했다. 아점 메뉴를 고르는 데에는 고민이 있었는데, 둘째 날 먹었던 사천요리의 강렬한 맛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매운맛과 향신료의 조화가 그리워진 우리는 또 다른 사천요리를 먹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호텔 근처에 있는 핫팟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메뉴를 보며 우리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나 했다. 뜨거운 핫팟의 육수들과 다양한 재료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여기 이거, 저기 저거!' 하며 우리는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나는 조금 덜 매운 걸로!'를 외쳤고, 나는 '무조건 맵게!'라며 각자 다른 육수를 골랐고 고기와 해산물 그리고 야채를 포함한 다양한 재료를 선택했다. 여기 핫팟은 일인일팟이 가능해서, 각자 원하는 육수와 재료로 나만의 핫팟을 만들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과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고기를 각자의 냄비에서 따로 끓이면서 서로의 맛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핫팟이 끓기 시작하자, 식탁 위에는 금방 맛있는 냄새가 가득 퍼졌다. 음식이 불에 익어가며 우리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고, 그 뜨거운 국물과 신선한 재료들이 마음과 몸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핫팟을 먹으며 나누는 소소한 대화와 웃음이, 여행의 특별한 순간들을 만들어 주었다.  



특별했던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대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경관을 자랑한다는 단수이로 기차를 타고 향했다. 기차역에서 내려 우리는 먼저 올드스트리트를 둘러보기로 했다. 올드스트리트는 단수이의 전통적인 거리로, 다양한 간식과 기념품이 가득한 곳이었다.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긴 줄이 보였다. 바로 단수이 대왕카스테라를 파는 곳이었다. 기다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빵 중에 카스테라를 특히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그 줄로 내 발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다행히 줄이 빨리빨리 줄어들었고 카스테라를 성공적으로 살 수 있었다. 남자친구는 카스테라를 한 조각 집어 들더니, '이걸 그냥 이렇게만 먹는다고?'라며 신기해했다. 유럽에서는 카스테라가 케이크의 베이스로만 쓰일 뿐, 무조건 생크림이나 잼 또는 과일을 이용해 겹겹이 만들어야 비로소 완성된 디저트라고 여긴다는 거다. 그러면서 "이건 케이크의 반쪽짜리 같은데?"라고 농담을 하더니 한 입 먹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어? 근데 이거… 생각보다 엄청 부드럽고 촉촉하네?"라며 또 한 조각, 또 한 조각 집어먹었다. 그의 빠른 손놀림에 나 역시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팽팽한 긴장감 속에 계속 손을 뻗어 카스테라를 먹어댔다. 꼭 '카스테라 신'이 우리 입에 내려앉은 것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이 푹신한 빵덩어리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러다 결국, 우리는 그 큰 카스테라를 20분 안에 먹어 해치웠다. 남자친구는 "생크림 없어도 충분히 완벽한 디저트였어!"라고 고백했고 나는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듯 거만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카스테라로 에너지를 당충전한 우리는 단수이 곳곳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식민지 시대를 겪었던 대만의 역사적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곳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독특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고풍스러운 역사적 건물들을 탐방하고, 성곽을 바라보며 대만의 역사를 손끝으로 느끼는 듯한 경험을 했다. 당시의 건축 양식과 정취가 그대로 담겨 있는 이곳에서,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와의 교감을 경험하며 역사적인 여행을 이어갔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의 조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다니며 다리가 아플 때쯤 우리는 작은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평화롭게 수다를 떨었다. 벤치에 앉아 다리 스트레칭을 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공원의 나무들 사이로 스쳐 오는 바람과 함께 주변의 새들 소리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도 큰 재미였고 덕분에 다리의 피로도 잊을 수 있었다.



단수이 역사 탐방을 마친 후, 우리는 아름다운 강이 보이는 곳으로 내려갔다. 강가에서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여긴 꼭 다시 와야겠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여러 간식거리를 사서 손에 들고 강이 바다가 되는 지점의 한 부둣가에 앉아, 바다의 파도 소리와 함께 즐겼다. 일몰시간이 가까워지자, 해가 서서히 지면서 자연이 보여주는 장관에 우리의 마음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름답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기분이었고, 한쪽 팔에는 해양의 상쾌한 바람을, 다른 쪽 팔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따뜻한 감정을 느끼며, 몽글몽글한 기분을 만끽했다. 우리는 한동안 대화 없이 그저 멍하니 노을을 바라봤다. 각자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는지, 아니면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같은 꿈을 꾸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노을의 황금빛이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 순간만 같아라.’라고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거기엔 서로의 손을 잡고, 그저 그 아름다움에 푹 빠져 있는 우리만이 있었다.


이렇게 대만에서의 여행은 단순한 향과 맛의 여정을 넘어서, 잊지 못할 감동과 기억들을 선사해 주었다. 매일매일이 마치 새로운 페이지를 여는 것처럼, 각 순간마다 새로운 감동이 펼쳐졌다. 우리는 대만의 길거리 음식에서부터 비밀스러운 맛집까지 다양한 맛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대만의 문화와 풍경을 체험하며 진정한 모험가가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해변에서의 노을은 마치 자연이 준 최고의 보상처럼 느껴졌고, 그 순간들이 우리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다. 대만의 다채로운 음식, 독특한 풍경, 그리고 함께 나눈 특별한 시간들은 우리를 완전히 매료시켰고, 이 여행은 우리가 함께한 특별한 이야기로 변해 우리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 같았다. 




한편, 우리가 여행한 홍콩과 대만은 중국과 깊은 관계를 가진 나라들이기도 하다. 나는 홍콩 에이전시 사람들과 이야기 할 때 종종 중국인들 험담을 듣곤했다. 나는 당시 중국인이나 홍콩인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했던터라 그 말들이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조사해 보게 되었다. 사실 홍콩은 1997년에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되면서 '일국양제'라는 정책 아래에 있다. 이 정책은 홍콩이 중국의 일부이긴 하지만, 정치적 자치와 높은 수준의 자유를 보장해 주겠다는 내용을 담고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의 개입이 늘어나면서 홍콩 사람들은 자치권과 자유가 줄어들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그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었다. 특히, 2014년 우산 혁명과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처럼 큰 사회적 갈등도 발생했으니 말이다. 홍콩은 현재 중국과 경제적으로 많이 연결되어 있지만, 정치적 자유와 자치권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있다.  


대만도 마찬가지다. 1949년에 중국 내전이 끝난 뒤 중화민국 정부가 대만으로 이동하면서 중국 본토와는 정치적으로 분리된 상태가 되었다. 대만은 사실상 독립적인 정부와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는데, 중국은 대만을 자국의 일부로 주장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반해 대만 사람들은 대만을 독립된 국가로 보고,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을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대만의 젊은 세대는 대만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중국과의 통합을 반대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으니, 대만은 중국의 군사적 압박과 외교적 압박에 직면해 있으며, 이러한 긴장감이 대만 사람들의 중국에 대한 불안과 경계심을 높이고 있다.


한국인으로서 이웃국인 홍콩과 대만의 상황을 보면, 정말 애처로울 뿐이다. 식민지 시대를 겪었던 우리는 누구보다 정치적 자치와 자유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이 '일국양제' 하에서 자치권과 자유가 점점 제한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적 자유와 자치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를 상기하게 된다. 현재 대만의 독립적인 정치체제와 자치권을 지키려는 노력도 비슷한 의미를 갖지고 있다. 한국은 오랜 세월 분단된 상태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대만과 중국 간의 갈등이나 홍콩의 정치적 긴장을 우리는 더욱 공감할 수 있다. 더욱이 강대국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면 상황은 쉽지 않을 것도 안다.  


우리의 일상은 쉴새 없이 돌아가며 겉으로 보기엔 이렇게 다 평화로운 환경 속에 사는 것 같지만 이러한 정치적 비극과 갈등을 속으로 떠안고 있는 그들을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특히, 홍콩의 시위와 대만의 정치적 긴장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자유롭고 자주적인 사회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었다. 모든 국가는 각자의 역사와 배경에 따라 다양한 도전을 겪고 있지만, 서로의 고통과 갈등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중국'이 홍콩, 대만 뿐 아니라 종국에 북한 그리고 한국까지 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 우리도 이웃국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의 민주적 가치를 존중하며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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