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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미나라 Oct 26. 2024

11)독일도 시댁은 똑같을까?

예비 시부모님은 독일의 서쪽 끝자락, 네덜란드와 벨기에 국경에 위치한 아헨이라는 아름다운 도시에 살고 계셨다. 우리의 여정은 프랑크푸르트에서 환승까지 포함해 장장 16시간이 걸렸고, 마침내 아헨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쾰른 공항에 도착하니 예비 시부모님이 따뜻하게 우리를 마중 나와 계셨다. 시아버님의 인자한 미소와 시어머님의 포근한 포옹은 영상통화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차에 올라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향하는 길, 아들이 멀리 떨어져 살아서 그런지 두 분의 눈빛에서 그리움이 묻어 나왔다. 1시간 남짓 달려 드디어 도착한 집에 들어섰을 때,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어르신들이 사는 집이라기엔 너무 세련되고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깜짝 놀랐다. 심지어 예비 시아버님이 직접 그리신 그림들 덕에 집은 마치 작은 미술관 같았고, 깔끔함의 극치와 현대적인 감각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시어머님은 예술적 감각으로 집 안을 꾸미셨는데, 작은 소품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배치된 걸 보고 그분의 인테리어 센스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보통 부모님 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전혀 달라서, 잠시 당황했지만 동시에 이분들이 뭔가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분들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딱 봐도 보수적인 틀에서 벗어나, 개성과 취향이 확실한 분들 같았다.

예비 시어머님께서는 우리를 게스트룸으로 안내하시며 "요리해 줄 테니 짐 풀고 쉬고 있어"라고 하셨다. 나는 예비 시댁에서 이렇게 가만히 쉬고 있는 게 어색하고 불편해서 "혹시 주방에서 도와드릴까요?" 하고 기웃거렸지만, 예비 시어머님은 손을 절레절레 흔드시며 "아니 아니, 나 괜찮으니까 쉬어~"라고 만류하셨다. 진심이 느껴져 나는 어쩔 수 없이 짐을 풀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쉬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살짝 다른 걱정도 있었다. 바로 독일 음식에 대한 걱정이었다. 독일 출장을 다니면서 먹었던 음식들이 꽤 짰고, 한번은 너무 짜서 손도 못 댄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이번에는 어떨까?’ 하며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기다렸다.


드디어 요리가 완성되었고 우리는 식탁으로 불렸다. 눈앞에 펼쳐진 정성스러운 독일 전통요리, 린더롤라덴과 사우어크라우트, 찐 감자, 셀러리 샐러드까지. 뚝딱뚝딱 언제 이걸 다 만드셨는지 감탄만 나왔다. 감사 인사를 드리고, "구텐 아페티트!"(독일어로 "맛있게 드세요.")를 서로에게 외친 뒤 한 입 먹어보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 린더롤라덴의 부드러움과 사우어크라우트의 새콤달콤한 맛에 깜짝 놀랐다. ‘이게 내가 생각했던 독일 음식이 맞나?’ 싶을 정도로 풍미가 대단했다. 한국인 입맛에는 약간 짤 수 있었지만, 이내 모든 메뉴의 밸런스가 오히려 입맛을 돋우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아! 남편의 까다로운 입맛이 어디서 왔는지 알겠다. 이건 완전 시어머니의 요리 솜씨 때문이구나!’ 하고 속으로 깨달았다. 예비 시어머님은 나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시더니 “우리 아들도 이걸 제일 좋아해~”라며 환하게 웃으셨고, 나는 그제야 피식 웃으며, '이 가문에서 까다로운 미식가가 탄생할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예비 시아버님께서는 서투르시지만 영어로 대화를 시도해 주셔서 금세 편안해졌다. 나도 독일어 몇 마디를 겨우겨우 외워 갔는데, 그걸로 대화하려 애쓰는 내 모습을 보시고 시부모님은 마치 독일어 강연이라도 들은 것처럼 기뻐하셨다. 그러면서도 내게 “우리 아들이 결혼을 할 줄은 몰랐어요, 정말!”이라고 하시더니, 아들이 결혼에 대해 시큰둥하던 날들을 회상하셨다. 그러다 '그런 아들이 인생의 동반자를 만났다니, 세상에 이런 기적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아들만 둘이었던 예비 시부모님께서는 딸이 생긴 것 같다며 무척 기뻐하셨는데, 나도 덩달아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어 예비 시부모님께서는 남자친구의 어린 시절 사진이 가득 담긴 앨범을 꺼내며, 아들이 어릴 때 어떤 아이였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시부모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사진을 한 장씩 넘겨보다가, 남자친구의 아기 때 사진을 보고 너무 귀여워서 까무러칠 뻔했다. 포동포동한 볼에 커다란 눈망울, 지금의 남자친구 얼굴과 똑같이 닮은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순간, '이 귀여운 아기가 어떻게 자라서 내가 사랑하는 이 남자가 됐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신기하면서도 이상하게 뭉클했다. 특히, 장난기가 넘쳐 보이는 어린 남자친구의 사진들을 보며 예비 시어머니께서는 "얘가 어릴 때 얼마나 말썽을 피웠는지 몰라~ 못 말릴 정도였다니까!" 하시며 웃으셨고, 나는 그 이야기에 빵 터져서 "아, 그게 아직도 남아 있더라고요!"라고 농담을 던지며 웃음을 터뜨렸다. 시부모님과 함께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한참 웃고 떠들었고, 그 순간이 너무 따뜻하고 정겨워서, 내 가족이 될 이분들과의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환대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한국에서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드리자, 예비 시부모님은 어린아이처럼 환호하며 선물 포장지를 뜯으셨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마치 크리스마스 아침, 기대하던 선물을 받은 아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예비 시아버님은 "오, 이건 정말 한국적인 선물이구나!"라며 신기해하셨고, 예비 시어머님은 "이건 너무 아름답다!"라고 하시며 감탄을 금치 못하셨다. 그 순간, ‘좋아하셔서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뿌듯함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식사 자리가 끝난 후, 나는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라며 자연스럽게 나섰다. 하지만 예비 시어머니께서는 손사래를 치며 단호하게 “독일에선 손님에게 설거지를 시키지 않아!”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 말에 잠깐 당황했지만, 내가 도우려는 모습을 귀엽게 봐주셔서 다행이었다. 사실 나는 “한국에선 예비 며느리가 설거지를 돕는 게 당연해요!”라고 말하려다, 꾹 참았다. 대신 “그럼 다음엔 제가 꼭 도울게요!”라고 살짝 웃으며 말하니, 예비 시어머님은 "여기서는 손님이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라고 하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예비 시부모님의 따뜻한 환대와 배려 덕분에, 이 가족의 일원이 되는 기쁨을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면서도, 그들만의 가족 문화 속에 조금씩 녹아들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만남은 그저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 얼마나 더 재미있고 따뜻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 가족이 되는 길은 이미 반쯤 온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음 날, 우리는 남자친구의 형과 형수를 만나러 아헨 시내로 향했다. 예비 시부모님께서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하셨는데, 이 소식을 듣자마자 남자친구의 얼굴에 커다란 미소가 번졌다. 마치 어린아이가 디즈니랜드에 간 것처럼 신나 보였고, 그가 아헨을 나에게 보여줄 생각에 들뜬 것 같았다. 아헨 시내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그만 입이 떡 벌어졌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가득한 거리는 마치 마법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불빛이 번쩍이는 가판대마다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끝을 간질이며, 온몸의 감각을 사로잡았다. 곧 예비 아주버님과 형님을 만났고, 그들은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 주었다. 그들의 친절함에 어느새 나도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우리는 다 함께 독일 전통 음식을 이것저것 맛보았고, 특히 추운 날씨에 따뜻한 글뤼바인(따뜻한 와인)을 마시면서 몸도 마음도 사르르 녹았다. 남자친구의 이모님과 이모부님을 우연히 마켓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이분들도 예외 없이 내게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이 가족의 친절함은 도대체 어디까지인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따뜻한 말과 배려가 내 마음을 훈훈하게 덥혔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의 하루는 정말 꿈만 같았다. 예쁜 장식품들을 사며 추억을 남기고, 사진을 찍으며 우리는 마치 영원히 이 순간에 머물고 싶은 기분이었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마켓에서 우리는 서로의 문화와 가족 이야기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웠다. 가족들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고, 그들의 진심 어린 관심과 따뜻한 미소 덕분에 나는 이 가족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깊이 받았다. 


독일에서는, 오후 3시마다 케이크와 커피를 즐기는 전통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치 독일 사람들은 오후 3시에 자동으로 모두 '케이크 타임!'을 외치며 삼삼오오 모이는 듯했다. 예비 시어머님이 손수 준비해 주신 케이크는 그야말로 예술 작품이었다. 보기에도 훌륭했지만, 먹어보니 너무 달지도 않고 완전 내 취향이었다. 친척분들도 함께 초대되었고, 우리의 결혼 소식에 모두 놀라셨지만, 따뜻한 환대와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셨다. 처음에는 언어 장벽이 조금 걱정됐지만, 어르신들과의 대화가 생각보다 매끄럽게 진행되었고, 내 싹싹한 성격 덕분에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짧지만 소중했던 이 독일 여행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우고, 새로운 가족과의 유대감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이 특별한 경험 덕분에 우리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더욱 커졌고,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할 준비가 확고해졌다. 


예비 시부모님을 만나기 전, 한국에서 자주 듣던 많은 고부갈등 이야기에 살짝 긴장했었다. ‘아, 이게 내 인생의 큰 고난의 시작인가?’ 하는 걱정도 머리를 스쳤었다. 그런데 실제로 예비 시부모님과 대면해 보니, 한국과 독일의 고부 관계는 상상 이상으로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에서는 가족 중심의 문화가 뚜렷해서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마치 '가족의 법칙'처럼 중요하다. 며느리는 마치 가사와 가족 돌봄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만능 해결사처럼 취급되며, 시부모님의 간섭이 많으면 그냥 묵묵히 이겨내는 게 미덕으로 여겨지기도 하니 말이다.


반면 독일에서는 시부모님과의 관계가 훨씬 여유롭고 서로의 독립성과 개인 공간을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마치 '가족 간의 유대와 예절보다 개인적인 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런 점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독일에서는 결혼 후에도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게 기본 태도라고 하니, 시부모님이 부부 생활에 거의 간섭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듯했다. 그리고 혹시나 갈등이 생기면 솔직하고 직접적인 대화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고도 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아, 이건 딱 내 스타일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듣던 고부갈등에 대한 우려는 어느새 사라졌고, 독일의 ‘자율성 사랑’ 문화에 감사하게 되었다. 독일의 고부관계 문화와 나의 성향이 찰떡궁합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 한국의 고부문화에 대해 시부모님께 자세히 말하지 않는 나 자신이 웃기기도 했다. 어쩌면 ‘고부갈등’이란 단어는 독일에서는 그냥 웃긴 농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앞 일은 모르는 법, 항상 조심해야 하는 것이 인간관계이니 처신을 잘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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