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봉수골 길 끝자락, 국화꽃 향기가 퍼지는 골목을 지나면 햇빛에 반짝이는 정원과 고즈넉한 건물이 눈동자에 비친다. 산에서 돌아 내려오는 물길을 뜻하는 돌샘길은, 없어지는 것들이 다시 한번 숨을 내쉬는 공간이다.
내 것이 아님에도 버려지는 것들에 슬픔을 느낄 때가 있다. 아무도 모르게 우리 곁을 훌쩍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야 하는 것들. 돌샘길의 주인도 같은 마음이었다. 목재상이 철거되기로 결정되자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붕을 받쳐온 서까래와 집의 중심을 이루던 대들보를 무작정 창고로 데려왔다. 어디로 새로운 자리를 찾아줄지 고민하다가 3년이 흘렀고 벌레가 이들을 새 보금자리로 삼았다. 더는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서까래와 대들보의 본래 자리를 살리고, 툇마루로 테이블을, 새 도로가 깔리고 버려진 돌로 쌓은 돌담을 더해 공간을 구성했다. 그리고 이곳이 앞으로도 우리 곁에 머물 수 있도록 카페의 형식을 빌려 문을 열어두었다.
봉수돌샘길 101 앞에는 요즘 보기 드문 탱자나무가 줄지어 있다. 그 희귀함 때문인지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낯설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국어책 소설 속 배경에서나 등장할 법한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곳의 주민들과 손님들은 탱자나무를 보며 잊고 있던 옛 추억을 떠올리고, 나무 앞을 지나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열매가 모두 떨어진 후 남은 가시에는 한 해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의 기억이 고스란히 얹혀 있는 듯하다. 시고 떫은맛 때문에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나 먹던 탱자가 여전히 이곳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탱자를 마주한 돌샘길이 봉수돌샘길 101에 자리 잡은 이유다.
쏟아지는 공간과 무수하게 사라지는 것들, 그럼에도 우리는 고개를 들어 제자리를 지켜온 것들의 세월과 무게를 느끼고 옛것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시대는 빠르게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란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붙잡아야만 한다. 골목을 거닐다 탱자나무를 보며 웃음 짓고, 정원을 지나 문을 열고 고개를 드는 일, 그 공간에서 함께 숨을 쉬는 것으로도 가치를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