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라 각자의 삶을 꾸려가기 시작하면 집 안에는 고요함이 찾아온다. 그 고요함은 평온함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는 잔잔한 공허함을 남긴다. 그 적막을 깨는 작은 존재가 있다. 하얀 솜뭉치 같은 강아지다. 까만 눈은 동그랗게 반짝이고, 작은 코는 윤기가 나 얼굴에 귀여운 점 하나를 찍어 놓은 듯하다.
처음엔 강아지를 키우는 일이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밥을 주고 산책을 시키며, 털과 발톱을 정리하는 일은 번거롭고 시간도 필요했다. 게다가 건강이 좋지 않았던 강아지를 돌봐야 한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강아지는 건강을 되찾았고, 지금은 그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내 일상에 따뜻한 웃음을 선사한다. 꼬리를 흔들며 내 곁으로 다가오는 모습은 마치 막내 아이를 보는 듯하다. 그 순수한 눈빛 속에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이 작은 존재와의 교감이 나를 바꾸고 있다는 것을.
강아지를 돌보며 느끼는 작은 행복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산책길에서 함께 마주하는 맑은 공기와 따스한 햇살,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옆에서 기분 좋게 걸어가는 강아지의 모습을 보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매일 밥을 챙기고, 털을 정리해 주고, 발톱을 다듬는 일은 단순한 일상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작은 보살핌의 기쁨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보살핌이 내 삶을 더 깊고 충만하게 채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돌봄은 사랑의 본질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사랑이 단순한 감정적 유대감을 넘어 돌봄이라는 행동을 통해 완성된다고 보았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쏟는 돌봄은 타인을 향한 배려를 넘어, 돌보는 사람 자신을 더욱 생기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또한 프롬은 돌봄을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으로 보았다. 그는 타인의 성장과 행복을 돕는 과정에서 돌보는 사람 또한 내면적으로 성장하며,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관계는 한층 더 깊고 진실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고 강조하였다.
처음에는 이 돌봄이 의무처럼 느껴졌다. 반복되는 일이 때로는 귀찮게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강아지가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과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이 작은 생명체를 돌보면서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돌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봄은 내 내면에 깊은 변화를 가져왔다. 강아지를 돌보며 나는 나 자신의 내면을 더 들여다보게 되었고, 무엇이 내게 진정으로 소중한지를 다시금 느꼈다. 강아지를 돌보는 과정은 마치 내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았다. 그를 위한 행동 속에서 내가 얼마나 사랑을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나의 삶에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다. 그래서 돌봄은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실천이자, 삶 속에서 사랑과 연결로부터 우러나는 행복을 발견하는 과정인 것이다.
성숙기에 접어들면 삶의 우선순위는 변한다. 자녀들이 성장해 부모의 품을 떠나고, 사회적 역할이 줄어드는 이 시기에는 돌봄이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강아지일 수도 있고, 작은 화분일 수도 있으며, 혹은 자신을 돌보는 명상과 독서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돌봄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내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삶은 작은 행복의 조각들로 완성된다. 나의 강아지는 그 조각 중 하나지만 그가 주는 따뜻함은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꼬리를 흔들며 내 옆으로 다가오는 모습은 작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성숙기의 삶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작은 행복을 찾아보자. 그것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